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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다 Aug 03. 2021

피아노

잊을 수 없는 꿈

“너, 이루지 못한 꿈 있어?” 저녁 식탁에서 작은 애에게 물었다. 아이는 군복무 중이었다. 외박을 나와서 같이하는 밥상이라 여느 때보다 정겨웠다. 아이는 식탁에 붙였던 몸을 떼며 말했다. “글쎄......내가 뭐 그렇게 오래 산 게 아니라서.......” 하긴 이제 스물 두 살 청년에게 알맞은 질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있다고 했다. “그게 뭐냐면......” 피아노였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꿈은 중1때 생겼다. 그 해 봄, 반별 전교 합창대회로 방과후에 합창 연습을 할 때 피아노 반주하는 애를 보고 피아노에 처음 눈을 떴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건반 악기는 풍금이 다였다. 그걸 치는 이도 담임 선생님뿐이었다. 또 그 때만 해도 한 반에 피아노 치는 애가 한 명이거나 없거나 했다. 나는 나랑 같은 교복을 입고 피아노 치는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애는 내가 사는 세상에 사는 애 같지 않았다. 그걸 나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한테도 그 마음을 알리지 않았다. 부모는 내 소원을 이뤄 줄 힘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친구들은 내 소원을 애잔히 여기지 않을 테니 말해 봤자 나만 외로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원이 이뤄지는 데는 17년이 걸렸다. 서른 한 살, 결혼하고 4년 만에 시이모님이 빌려 주신 중곡동 집에 피아노를 들였다. 영창 피아노였다. 까맣고 윤이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여닫을 때마다 중1 소녀의 허했던 마음이 돌봐지는 듯했다. 피아노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고덕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면서 수업 없는 빈 시간에 교감 눈치를 봐 가며 학교 건너편 삼익아파트에 가서 레슨을 받고 왔다. 남들이 다 퇴근한 뒤에도 음악실에 남아서 연습을 했다. 바이엘 상(上)을 떼고 바이엘 하(下)를 떼고 체르니 100번을 들어갔다. 하농, 부르크뮐러, 소나티네, 소곡집에 바를 정(正) 자를 써 가며 연습했다. 집에 가서는 저녁밥을 대충 만들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토요일 오후에는 친정으로 시댁으로 두 애들을 데리러 가는 것도 미루면서 베토벤의 ‘월광’을 연습했다. 피아노 선생님 앞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틀리지 않고 완주하고 싶어서 집에 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어느 날 선생님이 말했다. 정말 열심히 하신다고.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체르니 30번을 들어갈 수 있겠다고.

 

 꿈은 거기까지만 이뤄졌다. 엄마가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학교에서 퇴근하면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찾아 아산 병원 암병동에 누워 있는 엄마한테 들렀다 집에 가는 시간이 이어졌다. 피아노 칠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그간 배운 게 아까워서였고, 품은 기간이 오랜 꿈이었던 만큼 선뜻 포기가 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가 떠올라서 손가락이 엉켰다. 엄마는 아픈데 음악이라니. 죄를 짓는 거 같았다. 미리 사 놓은 체르니 30번은 펼치지 못했다. 속상했다. 어려서는 돈 없는 부모로서 꿈을 못 이뤄주더니 내 힘으로 꿈 좀 이뤄 보겠다는데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아야 하느냐고 아픈 엄마를 원망했다. 가던 길이 끊기니 무논리의 극치를 달렸던 것이다.

 

 엄마가 투병 일 년 만에 돌아가시고 9개월 후에는 남편 사업이 부도가 났다. 엄마보다 피아노였느냐는 자책감으로 피아노 뚜껑을 못 열었고 채권자들한테 피아노를 뺏기느니 시누이가 가져가길 바라 시누이에게 피아노를 넘겼다. 10년이 지나 안정이 되니 그 피아노를 되사고 싶었다. 시누이한테 물으니 진작에 중고점에 팔았다고 했다.

 

 “흠.......” 아이는 꿈을 이루지 못한 내가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따뜻한 시선을 받으니 뜻밖의 말이 나왔다. “근데, 그 때, 내가 학교에서 늦게까지 남아서 피아노 연습할 때 말야.......너 한 살 땐데..... 연습하는 게 너무 좋아서 할머니 집에다 널 재울 때가 많았어.......연습하다 보니 너무 늦어져서 할머니한테 죄송하다고 하고 내일 내일 하다가 주말에만 널 데리고 왔어.......미안해......” 나는 22년 만에 사과를 하고 있었다. “에이. 주말에도 데리러 오지 말고 연습하지......” 한 돌도 안 되었던 아이가 스물 두 살 청년이 되어서 나한테 말했다. 청년은 용서가 넘쳐서 제 일처럼 아쉬워하고 있었다. 나는 더 미안해졌다. “아니야.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야 했어.......” 탐욕스러웠던 서른 한 살 엄마. 그 꿈이 뭐라고 아이보다 앞세웠을까. 슬픔이 천천히 올라왔다. 꿈은 이루지 못해서만 슬픈 게 아니구나. 이룬 만큼의 슬픔도 돌려주는 게 꿈이구나. 꿈은, 그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애처로워하고 어루만지게 하는 모양이었다. 한때 제 꿈의 성취를 방해한다고 부모를 원망했던 자식이 부모가 되어서는 제 꿈을 이루느라 어린 자식에게 소홀했다. 그 자식이 커서 꿈을 이루지 못한 부모를 연민하는 일. 이것이 꿈이 아닐진대 가능할까. 저녁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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