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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다 Aug 03. 2021

흐느낌

잊을 수 없는 노래

1991년 11월 초순. 만삭인 나는 방 안을 서성였다. 반지하방의 창으로 내다보이는 바깥은 흐렸다. 주인집 여자의 하반신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마당에 묻어둔 장독대를 오가나 보았다. 출산예정일을 스무 날 남겨 두고 들어간 산전휴가. 학교는 2교시를 마치고 3교시에 들어갔겠지. 내 몸시계는 8개월간 출퇴근한 학교 시간표에 맞춰져 있었다. 스물 일곱 12월에, 오래 사귄 사람과 부부가 되고, 신혼여행지에서 아기가 생기고 다음 해 3월부터 발령 받은 학교로 출퇴근을 하고 입덧을 하고 뱃속 아이가 커가고. 일 년여를 한달음에 달려온 기분이었다.


  이제는 숨을 고르며 출산만 기다리면 되었다. 집에서 맞을 자유의 시간이 버거울까 봐 일본어 학습 테이프도 사 놓았다.

그런데 나는 마음을 못 잡고 있었다. 남편이 출근한 뒤 혼자가 된 뒤에 가라앉는 기분을 들어올리려고 일본어 테이프를 밀어넣어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듣기도 따라 하기도 싫었다. 일본어는 무슨. 시부모가 얻어 준 신혼집. 하남시 서부면의 반지하방,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이었던 그 방에서 나는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슬픈 눈을 하고 방 안을 왔다갔다했다. 그 때였다. 테이프를 빼내고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왔다. 또 그 때였다. 내 이마 높이로 난, 그 반지하 특유의 폭 좁고 긴 창이 새하얘지고 있었다. 그 해의 첫눈이었다.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독일어 가곡인가 싶더니 천천히 한국말이 그 뒤를 이었다. 밖은 눈으로 채워지고 방은 노래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눈은 밖에 주고 귀는 노래에 준 채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나는 어떤 노래에 단번에 마음을 뺏긴 적이 없었다. 듣다 보니 시나브로 좋아지거나 남들한테 꼭 한 번 들어보라는 말을 듣고 들으면서 ‘과연 좋네.’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설사 들으면서 마음이 얼룽지기는 했어도 그 날처럼 노래가 눈물 흡착기 역할을 한 경험은 없었다. 알고 보니 그 노래는 나한테만 강렬히 다가온 노래가 아니었다. 이제 와서 네이버에 검색어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넣어 보니 이 노래에 붙는 훈장이 화려하다. ‘가요 최초로 클래식 크로스 오버를 차용하여 발라드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붙게 한 노래이자 신승훈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곡, 슬픈 노랫말과 호소력 짙은 음색, 애절한 선율이 돋보이는 노래로 현재까지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명곡으로 158만장이 팔림, 1991년도 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로 한국기네스북에 등재, 당시 방송 3사가요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 차지,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쾌주 음반판매- 방송-음악다방 1위 독차지 (동아일보 1992년 2월 29일자).......’

 

 대중가요를 독차지하려고 드는 건 어쩐지 유치하다. 그렇건만 ‘어쩐지 유치한’ 그 일이 벌어졌다. 그 노래를 듣고 며칠 있다 출산을 하고 해를 넘겨 3월이 되자 학교를 나갔고 두어 달 뒤 봄 소풍을 갔을 때였다. 점심을 먹은 뒤 전교생을 앉혀 놓고 장기 자랑을 하는데 나이가 제법 든 여선생님 한 분이 노래를 한다고 앞으로 나오셨다. 평소에 말 한 자락 나눠 본 일 없는 분이셨다. 그 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런, ‘보이지 않는 사랑’인 것이다. 잘 부르는 노래도 아니었다. 아무려면 누가 부른들 원곡을 따를까마는 그 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내 노래를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노래는, 나이 드신 분이, 듣기도 민망하게 부르면서, 뭇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기어코 부르고야 말겠달 만큼 만인의 가슴을 할퀴고 후벼파는 노래였던 것이다.  나는 그 노래가 나만 은밀히 만나준 노래가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 날 내가 노래에서 받은 건 위안이었다. 사랑해선 안 될 게 너무 많으니 슬픈 건 당연한 거라고. 배 부른 새댁이 산달에 슬픈 기색을 보이는 게 그렇게 쉬쉬할 일은 아니라고. 행여 배 안의 아이한테 죄스러워할 일도 아니라고. 사랑의 끝으로 당연시한 결혼이었지만 원가족을 떠난 삶이 그렇게 낯설 줄은 몰랐다. 공간도 시댁 식구도 얼른 내 게 안 되었다. 그런 데다가 임신이라니. 이후에 닥칠 삶의 모양새가 가늠이 안 되었다. 등지고 떠나온 삶이 순식간에 아득히 멀어졌다. 이젠 그것들을 사랑해선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들과 잘 이별할 자신이 없었다. 노래는 그런 날 위로했다. 그리고 진단도 해 줬다. 내가 슬프게 우는 건 ‘내일이면 찾아올 그리움 때문일 거’라고. 하필 눈은 소복소복 내려 쌓이고. 방은 또 하필 하늘도 안 보이는 방이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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