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가, 운명인가.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
오늘은 대학교 1교시 수업 하나를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집을 나왔다. 1교시는 9시부터인데 왜 5시에 일어나냐고 한다면 눈물을 삼키며 대답할 것이다.
"편도로만 1시간 40분이니까..... "
그렇다. 내가 5시에 일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통학시간이 편도로만 1시간 40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인서울이라고 해서 기대를 품고 다녔는데 정작 거리는 인서울이 아니었던 것이다. 1시간 40분만 아니었어도 학교와 거리가 40분이었더라면! 나는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다.
두 번째로, 지하철은 무조건 6시 30분 전에 타야 한다. 6시 50분에 갔을 때는 이미 부지런한 개미들이 백팩, 메신저백 등을 메고 지하철 앞에 쪼르르 서있었다. 6시 30분 전에 가면 그나마 사람이 없다. 그러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까지 모든 세팅을 마쳐야만 한다... 누가 출근시간이 7시부터 9시라고 했나. 사람 많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설정한 출근시간은 6시 30분부터 9시 30분이다.
세 번째로, 나의 성격 영향도 있다. 나는 지각과 결석에 예민해서 수업시간보다 최소 1시간 전에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수업 시작이 9시라면, 8시 전에는 도착하는 것이 내 목표다.
편도로 1시간 40분을 견디는 것, 6시 30분 전에 지하철에 타는 것, 수업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 이 3가지를 모두 지키고 나면 월요일 해야 할 일의 70퍼센트는 끝난 것이다. 그때 나는 '혼을 쏙 빼놓는 술자리를 끝내고, 내일 있을 주말을 상상하며 집에 가는 사회초년생'처럼 안도의 한숨을 쉬면 된다. 이제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내 할 일을 끝냈으니까.
나는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나는 요즘 글에 관심이 많아서 좋아하는 교수님의 논문을 읽고 있었는데, 내 옆자리가 빈 것이다. 마침 어깨가 한껏 안 쪽으로 휘어있는 노인이 발을 질질 끌며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 노인은 내 오른쪽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자리에 착석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노인들의 성추행인가. 나는 순간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팔꿈치로 그 노인의 손을 가격했다. 노인이 놀란 듯 외마디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당황함이 앞서 나도 모르게 사과하듯 고개를 까딱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그 노인에게 고개를 까닥거렸나.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곳에서 소리를 질렀어야 했나, 그때 글 읽는 것에 집중하지 말걸... 같은 자책이 밀려오는 것이다. '나는 숏패딩에 검은색 밴딩 슬랙스를 입고 있었는데..' 하면서 순간적으로 그 노인의 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일을 아빠한테 이야기했다. 아빠는 그렇게 사람들이 부대끼는 곳엔 그런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까딱거리지도, 자책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드는 생각은 있다. 살면서 나는 전혀 사과할 필요 없는 일에 무의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
-먹구름 뒤엔 푸른 하늘이 있다-
그렇게 나는 목욕을 하면서 오른쪽 허벅지에 비누를 빡빡 문질러댔다. 목욕 후에, 나는 집에 올 때 기분전환용으로 사 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참 이상하게 샌드위치도 평소보다 맛이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메일 알람이 왔다.
또 쿠팡이나 쇼핑 어플알람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저번주 금요일에 넣었던 신청서가 합격이 된 것이다. 사실 별 기대 없이 넣은 신청서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글을 잘 쓰는데 내가 잘 될 리가..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넣은 거였는데 좋은 소식이 왔다. 사실 신청한 후에 많은 사람들의 브런치 작가 신청 실패담을 봤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건 이렇게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질렀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근데 걱정한 것의 99%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진짜였다. 내가 작가님이라니. 작가라는 직업으로 나를 불러주는 것이, 날 존중하는 것 같으면서도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필이 받은 나는 이때다 싶어 마음에 두고 있던 우리 학교 문학동아리에 가입 문자를 넣었다. 별다른 면접이나 질문 없이 바로 들어갔다. 동아리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마치 울창한 숲 속을 한참 걷자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고 있는.. 그런 비슷한 만화들 있지 않은가. 그런 만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글이란 건 참 신기하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글에 관심이 많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처음 쓴 소설이 '한솔이의 강아지 키우기'였다. 7살 때 만든 그림 동화인데 아직도 제목과 내용이 기억이 난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글이라는 건, 인생에 약간의 변수만 생겨도 소홀히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몰입감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필이면...-
내가 하필 2 지망이던 이 대학에 합격한 것, 하필 이 교수님의 글쓰기 교양 수업을 들은 것, 하필 글쓰기 교수님께 칭찬을 들은 것, 하필 브런치라는 글쓰기 사이트를 알게 된 것, 하필 한 번에 브런치의 작가가 된 것, 하필 글쓰기 동아리를 발견하게 된 이 모든 것이 나는 운명이라고 믿는다. 왠지 세상이 '삶이 팍팍하고 지루했던 나'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