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꿈은 언젠가 기회가 되어 찾아온다.

사랑과 동경의 힘이란,

by Marin

요즘 글을 적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타자기로든, 펜으로든 계속해서 내 생각을 적고 있으면 쇼츠를 볼 때와는 다르게 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고, 바보가 되는 느낌도 안 들고, 내 말을 계속해서 들어주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언젠가 글을 읽는 것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국어 과목을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다. 학창 시절 내내 모의고사를 보면 잘하지는 못하는, 내가 참 애증하는 과목이었다.


당장 점수가 잘 나오지 않으니 빨리 대학에 가야 했던 나는 진로를 체육으로 틀었다. 물론 체육에 재능이 없는데 그 분야로 길을 튼 것은 아니다. 체육에도 정말 관심이 많았고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체육 분야에서 만큼은 왠지 자랑도 하고 싶고 못한다는 말을 내 입으로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로 체대입시 학원에서도 단기간에 한 것 치고는 기록이 좋다고 칭찬했다. 실기장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실기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체육으로 진로를 튼 지, 7개월이 됐을 때 나는 서울에 위치한 체육학과에 합격했다.


나는 대학교에 가면 체육에만 미쳐 살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생각했다. 근데 올해 들어온 학번부터 복수전공이나 심화전공을 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대체 무슨 전공을 선택해야 하나, 나는 고민했다. 원하는 과가 별로 없었다. 그러자 눈에 띄는 '국어국문학과'가 있었다.


'국어도 못하는데 무슨 국어국문이야..'


나는 한 달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체대입시를 시작하기 전과 비슷했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제일 빠른 것이었다. 6월 모의고사를 보고 나서 그 시기를 잡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입시에 목이 졸려 깜깜해지는 시야에 곧 잠식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신기하게도 체육학과에 입학해서 국어국문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민을 할 때쯤, 어느 날 글쓰기 교수님이 내게 말했다.


"체육 이미지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 가끔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국어 같은 인문학 쪽을 지망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나는 순간 머리를 맞은 듯했다. 전공자의 눈에는 내가 과거에 국어를 좋아했던 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그 교수님의 논문을 읽고 논문의 중심이 된 책을 빌려 읽었다. 교수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너무 음침하고 무섭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날 알아봐 주신 그 교수님이 너무 신기했고 롤모델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님의 생각과 글쓰기 방식을 따라 하고 싶어서 논문을 읽고 분석했다.


이렇게 나와 국어가 필연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15살 때부터 5년 동안 다져진 그(=국어)와의 친밀감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15살에 재밌는 국어선생님을 만나 국어에 흥미를 느낀 것들이 모두 다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멀리해도 다시 만나고야마는, 사랑하면서도 진득한 친구들과의 우정처럼, 국어라는 꿈이 길을 찾아오듯이 때가 되어 다시 내게 찾아온 것이다. (날 어떻게든 공부시키겠다는 그 집념이 참 대단하다.) 나는 그렇다면 요즘 한국 사회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인 것도 같다. 취업이 안되기로 유명한 '문사철'을 지망하질 않나, '믿거체'로 유명한 체육을 지망하질 않나. 그렇지만 어떡해. 지금은 너무 좋아하는걸.


나는 중2 때부터 이어져온 국어진로에 대한 생각을 작년 6월부터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한계에 가둬놓고 국어진로는 뒷전이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국어는 재미없고 무거운 족쇠같은 과목이 되었다. 어쩌면 국어와의 더럽고 끈적한 인연을 그때부터 깨달아야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선 놓지를 않았다. 애정이 가면서도 잘하지 못해서 고통스러웠다. '조금 더 해보라고,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국어는 내 옷깃을 잡고 늘어졌던 건가' 하는 헛웃음 나는 상상도 해본다. 이것이 참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서 대학교 와서까지 날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 요소였다. 이 정도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국어를 따라가는 건지, 내가 가는 곳에 국어가 늘 있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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