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 trainer May 12. 2024

나를 눈 뜨게 한 선생님의 선행

늦은 밤 아버지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여 급히 병원에 갔는데 응급조치를 받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전쟁터 같던 응급실이 차츰 안정을 찾고 고요해져 나도 긴장을 풀고 쉬려는데 갑자기 구급대에 젊은 여자가 실려 들어왔다. 일하다 사고를 당했는데 의료진은 오른팔을 빨리 절단해야 한다며 보호자에게 연락 요청을 했다.

조용한 새벽이라 알게 된 내용인데, 잠시 후 보호자로 온 사람은 21살 젊은 남자로 둘 다 고아로 외롭게 자라고 만나 막 살림을 차린 신혼의 남편이었다. 담당자로부터 아내의 팔을 절단해야 된다는 말과 함께 보증금 2백만 원을 입금하고 각종 동의서에 싸인하란 말을 들은 그는 한참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사고도 큰 충격이지만 당장 보증금으로 낼 돈이 없었던 것이다.

바라보던 내가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그때, 어젯밤 노모를 모시고 와 간호하던 우리 옆자리의 아저씨가 자리를 비웠다가 담당자에게 가더니 보증금 전액을 결제했다. 그사이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 우리 일을 본 후 상황을 파악하니, 여자는 수술 절차에 들어갔고 아저씨는 노모를 모시고 조금 전에 퇴원했단다.

안내석에 가 아저씨에 대해 알고 싶다고 물으니, 당사자에게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해서 알려줄 수 없단다. 거듭 사정하여 유 씨 성을 가진 분이란 것만 겨우 알아냈다. 수술하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나오는 아침, 그 아저씨에게 내가 선물을 받은 듯한 기쁨이 넘쳐난다. 하늘도 거리도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다. -1998.5.12-
  


윗글은 이사할 때 발견했던 메모 3편 중 두 번째 글이다. 병원에서 우연히 스쳤한 번의 짧은 인연이지만 그날 유 선생님의 말없는 선행은 내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날 일은 이제껏 내 것만 중요시하며 살던 내가 선행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분을 통해 '선행은 적시에,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임을 몸으로 배웠. 그 후 나도 현금을 따로 준비해 가지고 다니며 작은 선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할 때는 철저히 감춘다.


그 일이 있은지 몇 달이 지나, 그분들 소식이 몹시 궁금하여 병원에 찾아가 물어보았다. 하지만 수술했던 여자 상태가 좋아져 2달 만에 퇴원했단 사실을 들었을 뿐 그 외의 소식은  수 없었다. 어느새 25년이 흘러 지났다. 그 젊은 부부는 어떻게 되었고 유 선생님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두 가정 모두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며,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 되겠다던 그때 내 다짐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조용히 점검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