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달음의 샘물 Jan 12. 2024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Chapter 8. 독일인이 건설한 도시, "클라이페다(Klaipeda)

# 첫째 마당: 클라이페다 관광을 시작하기에 앞서...



클라이페다(Klaipeda)는 발트해에 접한 항구도시로서 인구 20만 명을 헤아리는 리투아니아 제3의 도시인데, 빌뉴스 및 카우나스와 함께 리투아니아의 핵심도로인 E85번 도로상에 위치하고 있다(아래 지도 참조). 


클라이페다의 가장 큰 특징은 독일, 정확히 말하면 프로이센(Preußen)에 의해 건설된 도시라는 것인데, 이 때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일식 이름인 메멜(Memel)로 불리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해 클라이페다에 들어서면서부터 리투아니아에서 처음으로 전형적인 서유럽풍의 도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클라이페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런 기대는 연기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클라이페다 신시가지의 첫인상이 공장지대의 뒷골목처럼 한없이 삭막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클라이페다의 볼거리? 솔직히 리투아니아 제3의 도시란 말이 무색할 만큼 클라이페다에는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데, 일단 지도를 보면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우선 지도 아래쪽으로 물줄기가 하나 보일 텐데 그것이 클라이페다를 관통하는 데인(Dane) 강이고, 그 아래쪽이 구시가지(Old Town)이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구시가지에 이런저런 볼거리가 있기 마련인데, 클라이페다의 구시가지의 경우 볼거리라곤  지도 오른쪽의 "요한의 언덕(Jonas Hill)"과 지도 왼쪽의 "극장 광장" 정도가 전부이다. 강 위쪽의 신시가지는 더 황량한데, 그나마 넓게 자리 잡은 조각공원 하나가 그 허망함을 달래준다.  



## 둘째 마당: 마즈비다스(Mazvydas) 조각공원



클라이페다 신시가지의 분위기는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데, 이런 황망스러움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마즈비다스(Mazvydas) 조각공원이다. 상당히 넓은 공간에 푸르름이 가득하며, 곳곳에 크고 작은 수많은 조각 작품이 넘쳐나는 마즈비다스 조각공원은 클라이페다 신시가지의 허파 같은 존재로, 현지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연일 계속되는 여행으로 지친 여행객에게도 소중한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마즈비다스(Mazvydas) 조각공원, 그 1.

마즈비다스 조각공원은 예전에 공동묘지였던 곳을 조각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하는데,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각공원으로서는 조금 어설픈 느낌이 든다. 그러나 클라이페다를 대표하는 휴식공간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으며, 개인적으로는 클라이페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이다. 

마즈비다스(Mazvydas) 조각공원, 그 2.

조각공원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곳이니만큼 전시작품에 대한 소개가 이야기의 주를 이루어야 하겠지만, 넓은 공간에 워낙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저 내가 보기에 좋았던 작품들 몇 점만을 보여 주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기 바란다. 먼저 이것은 K. Jorocevante란 작가의 1978년작 "Gulinti Motens"라는 작품인데, 미술작품을 만날 때면 습관적으로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을 찍어 놓는 버릇이 있어서 리투아니아를 다녀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마즈비다스 조각공원 안의 작품들은 작가의 이름도, 또한 작품의 제목도 모두 리투아니아어로만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을 찍어 두는 것이 의미가 없단 생각이 들었고, 그 결과 아래 작품부터는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을 찍어 놓는 일을 생략해서 최소한의 작품 소개도 불가능하다.   

한편 마즈비다스 조각공원 내에는 조각 작품의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해 놓아서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어 놓은 것들도 있었는데,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작품 주변을 형형색색의 꽃들로 꾸며 놓아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정도가 단연 강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즈비다스 조각공원 안에 전시되어 있는 상당수의 작품들은 - 위에 소개한 작품들과 같은  독자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  아래 사진에서 보듯 보행로를 따라서 서로 인접하여 전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는 암만해도 작품 하나하나에의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조각공원이란 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단 한 점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지 않은 공간, 즉 우리가 흔히 만나는 전형적인 공원의 형태를 띠고 있는 공간도 꽤 자주 나타난다.  조각작품 등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그것을 보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나고,  때로는 그를 넘어서서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 등과 같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강요받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공간은 그럴 필요가 없이 내 멋대로 공간을 즐기면 될 일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사란 것, 생각하기 나름이다. 조각 작품이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그 또한 좋고!!  

공원을 돌아보고 나오다가 '거대한' 기념비(?)를 만났다. 내가 이 기념비에 대하여 '거대하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기념비 하단의 잔디밭에 누워 있는 젊은 남녀를 보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기념비의 정면은 위사진의 반대쪽인데, 양옆으로 높이 솟아있는 구조물 사이에 있는 것의 정체는 '칼'로 생각된다. 기념비 하단에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중간중간에 헌화도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전쟁(또는 전투)에서 죽어간 분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인 것 같다.      

기념비의 좌측에 아래 사진과 같은 동상이 서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위인들의 동상의 경우에는 그 주변 어딘가에 최소한 그의 이름과 생몰(生沒) 연대 등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동상의 경우에는 동상 주변으로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동상 속 사람들이 하나같이 군복을 입고 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기념비는 어느 전투(또는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도 스러져간 무명(無名) 용사를 기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념비와 동상의 사진을 3컷으로 나누어 보여 주었는데, 혹 장님 문고리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 여기서 '장님' 운운한 것은 그냥 관용구처럼 쓰이는 표현의 일부일 뿐, 이런 글을 통하여 눈이 불편하신 분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어찌 되었든 간에 기념비와 동상을 한컷에 담아 보여줄 터이니, 전체적인 구도는 스스로 가늠해 보기를 바란다. 



### 셋째 마당: 극장광장(Teatro Platz)



유럽의 도시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도시 한 복판에 멋진 광장을 갖고 있으며, 이들 광장은 그네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도시에서 가장 그럴싸한 문화공간인 극장이나 시장도 이곳에 들어서기 마련이며, 이에 더하여 광장 주위를 둘러싸고 카페와 레스토랑까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한마디로 광장이야말로 유럽 도시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구시가지로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극장 광장을 찾아들었는데, 한 마디로 무언가 많이 허전하다. 광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남김없이 갖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다만 이런 허전함의 실체를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수준 이하라고 할까?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다지 고풍스럽지도 않고. 그냥 문자 그대로 광장, 그래 넓은 공터일 뿐이다. 아,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일뿐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와 달리 이곳 극장광장을 구시가지에서 반드시 찾아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극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 둔다. 

일단 이 광장의 이름이 '극장'광장이라고 하니, 먼저 극장 전체를 바라보면서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인구 20만에 이르는 대도시의 Drama Theater 치고는 외형이 약간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Neo-Classic 양식이 적용된 의미 있는 건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런 느낌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해 클라이페다 시민들에게는 매우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극장 건물 자체에는 그다지 호기심이 생겨나지 않는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극장을 바라보았다. 극장 건물에 별로 관심도 없다면서 극장 앞으로 다가간 이유는, 비록 건물은 별로지만 이곳이 역사의 현장으로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 그렇다. 바로 이 극장 2층의 발코니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온 세계를 전쟁터로 몰고 갔던 히틀러(A. Hitler, 1889~1945)가 연설을 했던 곳이다. 극장 광장이 볼 품은 별로 없지만 넓기는 하던데, 혹시 히틀러를 맞이하기 위해 급하게 조성된 것인가? 

광장의 모습을 앵글을 달리하여 바라보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광장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특별히 카메라를 들이 대고 싶은 곳은 별로 없다. 그나마 광장을 둘러싸고 꽃들로 장식해 놓은 이곳이 좀 특이해 보여서 이들 꽃무덩이를 찍어 두었을 뿐이다.

극장 앞에는 자그마한 분수대와  동상이 있는데, 먼저 동상 기단부에 보이는 시몬 다흐(Simon Dach, 1605~1659)라는 사람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시몬 다흐는  클라이페다 출신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에 의해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 그라드) 대학의 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Naver 등에는 시몬 다흐가 독일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당신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클라이페다를 독일(기사단)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국민 시인이라고 칭송하는 시몬 다흐를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독일인이라고 알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 동상 이야기를 해보자. 이 동상은 시몬 다흐의 작품 속 주인공으로 그녀의 이름은  Äennchen von Tharau이다. 아, 독일 사람의 이름을 보면 이름 뒤에  "von +지명(地名)"이 붙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것은 원래는 von 이하에 붙는 지역의 귀족 집안 출신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동상의 주인공을 부를 때는 "Tharau의  Äennchen"라고 하는 것이 제일 정확한 것이 될  수 있다.   



#### 넷째 마당:  데인(Dane) 강 주변 



클라이페다 북쪽의 신시가지와 남쪽의 구시가지는 데인(Dane) 강을 자연적 경계로 하여 구분되는데, 우리의 한강이 그러하듯이 데인 강 위에는 많은 다리가 걸려 있다. 그들 다리 가운데 중심이 되는 것은 북쪽의 메인 도로인 H. Manto 대로와 남쪽의 메인도로인 Titty 대로를 연결하는 다리인데(아래 사진 참조), 유럽의 다른 도시들의 강 위에 걸린 다리들과는 달리 오직 다리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히 봉사할 뿐 미적인 배려는 전무한 것이 많이 아쉽다. 

비록 데인 강이 한강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물줄기에 불과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물줄기가 있으니 나름 괜찮은 풍광이 펼쳐진다. 그리고 아마도 클라이페다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데인 강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강 양쪽으로 잘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한가로이 걷다가, 적당히 지치면 그늘가에 몸을 의지했다가,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강변의 카페에서 동행들과 수다를 떨어대는 것... 뭐 이런 것 말이다.

알량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물줄기라고, 데인 강 위에는 배들도 떠있다. 그래 보았자 자그마한 놀잇배 수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강의 크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형 범선과도 마주치게 되는데, 처음에 이를 보고 나는 "아, 이곳이 바다로 나가는 크루즈의 출항지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는 데인강이 발틱해로 흘러들어 가고, 클라이페다가 이곳의 중심도시인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론이 된다. 그러나 사진 속 범선의 실체는 Meridianas라는 이름의 카페 겸 레스토랑이니, 바다로의 항해 뭐 이런 꿈은 이쯤에서 접어두기를...   

클라이페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광경 중 하나는 아마도 범선카페와 데인강 주변의 풍경일 것이다. 여행안내 책자들이 앵글을 조금씩 달리할 뿐 거의 예외 없이 이곳 사진을 클라이페다에 관한 글의 첫 장에 올려놓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 또한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 다섯째 마당:  요한의 언덕, 그리고 요한 교회



1. 요한의 언덕



범선 카페가 있는 곳에서 데인 강을 따라 동쪽으로  2-300m쯤 내려가면 직선으로  곧게 뻗어 흘러가는 데인 강의 지류에 해당하는 자그마한 물줄기가 폭이 좁아지면서 오른쪽으로 졸졸졸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류가 흘러 들어가는 곳에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요한의 언덕(Jonas Hill)이다.   

요한에 해당하는 리투아니아어는 Jonas인데, Jonas는 독일어로는 Johannes, 영어로는 John에 해당한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요한의 언덕'은 녹지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클라이페다 구시가지에서 꽤 괜찮은 휴식공간으로 클라이페다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2. 요한 교회


요한의 언덕을 찾아왔는데, 지도상에 요한의 언덕 바로 옆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던 요한교회(Šv. JONO BAŽNYČIA,  St. John Basilica)는 보이지 않았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모른다"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시추에이션에 굴하지 않고 매의 눈으로 주변을 주의 깊게 돌아보던 내 눈에 이런 안내판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안내판에는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그를 더 볼 수 없게 된 이유 등이 잘 설명되어 있다.  

예전의 교회사진 밑으로 요한 교회의 역사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4개 국어로 쓰여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에 "2차 세계대전 때 클라이페다를 둘러싸고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요한 교회는 심각하게 손상을 입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아예 철거해 버렸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또 한마디의 말이 있는데,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그 말은... "요한 교회의 재축을 계획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안내판이 서 있는 곳 근처 어딘가에 요한 교회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이곳은 정확히 말하면 요한 교회 '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요한 교회 '지(址)'쯤 되는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이곳이 갖는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안내판 옆에 서있는 이 돌은 옛 요한 교회의 주춧돌 중 일부분이다. 

요한 교회 '터' 앞쪽에 흔하디 흔한 이름인 영빈루(迎宾楼)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 레스토랑이 있는데, 바쁘게 시내를 돌아다녀 피곤도 하고 시장기도 느껴서 이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맛? 냉정히 말해 "엄지 척"을 할 수준은 못되고, 그렇다고 갓뎀을 연발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리투아니아 여행 도중 '밥'이 생각날 때, 그냥저냥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곳은 된다.   



###### 여섯째 마당: 그 밖의 볼거리들



1. 침례교회



호텔에서 건네받은 클라이페다 지도에 "침례교회(Baptist Church)"라고 명시된 곳이 있어 찾아 나서 봤다. 잘 알다시피 유럽 북부의 경우 개신교는 루터파 교회가 압도적으로 우세한데, 미국에 기원을 두고 있는 침례교회라니. 유럽여행 중 처음 만나는 침례교회라는 이름에 반갑고(내가 침례교회를 50년 넘게 출석해 왔다), 또 놀라워서 찾아간 침례교회의 모습이다. 

위의 사진만 가지고는 교회의 느낌이 잘 전해 오지 않는데, 위 사진 속 앞쪽 건물 끝부분에 이 건물이 교회건물임을 보여주는 표지가 있고,  

뒷 건물을 돌아서면 교회의 느낌이 완연하다.


2. Radisson 호텔



클라이페다에서  머물렀던 Radisson 호텔은 가격에 비해 룸 컨디션이나 주차여건 등이 괜찮았고, 위치 또한 마즈비다스(Mazvydas) 조각공원 근처에 있어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난데없이 Radisson 호텔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며, 이 호텔에서 있었던 특별한 '사건', 즉 Check-Out을 담당하는 여직원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과 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Check-Out을 하러 내려간 프론트. 난데없이 여직원 중 한 명이 자신이 "대한민국을 잘 알고 있으며, 대한민국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갑다"라고 말을 걸어와서는 "스탈린에 의해 자신의 할아버지가 블라디보스톡으로 강제이주(Deportations)를 당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주변에서 우리네 선조(고려인들)들을 많이 보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를 시작으로 생면부지의 리투아니아 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다. 무엇보다도 빌뉴스의 리투아니아 집단학살 박물관을 찾았을 때부터 받았던 막연한 느낌, 즉 우리나라와 리투아니아가 공통의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클라이페다에서 이런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리투아니아란 나라, 우리나라와 인연이 참 깊다. 혹시 알고들 있으려나? 상해 임시정부를 세계에서 최초로 공식 승인한 나라가 바로 리투아니아란 것을 말이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독립을 꿈꾸었던 리투아니아야말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던 우리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       


3. 리투아니아 해양 박물관


Trip Advisor를 보니 클라이페다의 볼거리의 하나로 '리투아니아 해양 박물관(Lithuanian Sea Museum )'이 소개되어 있던데, 아쉽게도 난 이곳을 찾아가 보지는 못했다. 니다와 그단스크를 거쳐 다시 한번 바르샤바 등을 거쳐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내 기나긴 여행 일정상 이곳을 들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양박물관은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 사진만으로 보면 꽤 그럴싸해 보인다. 다만 후기에 "돌고래가 영리하다"라든가 "어린애들과 함께 하면 좋다"라는 등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순수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바다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인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다. 

















이전 07화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