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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Jan 18. 2024

역사와 풍광의 콜라보레이션 "서천(舒川)" 주유기

chapter 7. 마량리(麻梁里) 그 1,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 첫째 마당: 개 관



이번 글부터 이어지는 3개의 글들은 모두 서천군 서북쪽의 작은 마을 '마량리'라는 곳 이야기로 채워 보려고 한다. 마량리는 아래의 서천군 지도상에 돋보기로 확대되어 있는 곳인데, 지도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듯이 서해 바다 쪽으로 가장 많이 돌출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지형적 이유 때문에 이곳은 조선 수군(水軍)의 전략적 요충지이었고, 그래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있던 군영인 마량진(馬梁鎭)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마량리는 외국과의 접촉 또한 다른 곳에 비해 빨랐다. 공식적인 역사기록에 남은 조선(인)과 영국(인)의 최초의 만남 또한 바로 마량진 앞바다에서 이루어졌는데, 역사는 이를 "1816년에 조선의 서해안 탐사에 나섰던 영국의 군함 알세스트(Alceste)호와 리라(Lyra)호가 마량진 앞바다에 표류하고 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이 이끄는 조선의 함대와 마주쳤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인과 영국인의 첫 만남이라고는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두나라 사람들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말이 오갔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량진 첨사의 두 번에 걸친 리라호 방문이 우호적으로 이루어졌고, 영국 군인들이 마량진 육지에도 다녀온 다음에 이 함대의 최고 책임자인 맥스웰(Murray Maxwell) 대령이 있는 알세스트호에 다시 마량진 첨사 일행이 오르게 되었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어쨌거나  항해도중 표류하다가 (어쩌면 자신들을 해할 수도 있고, 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그곳 바다를 관장하는 사람(조대복)이 우호적으로 대해 주며 자신의 배에 올랐는데, (맥스웰 대령 입장에서) 그를 맨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해서 알세스트호의 함장 맥스웰(이하의 사진 참조)은 자신들에게는 꽤나 의미 있는 물건인 성경을 선물로 주기로 결정했다.

이때 맥스웰이 가져다준 성경은 "킹 제임스 성경"이었는데, 이 성경에 대하여는 아래의 사진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사실 성경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의 전래에 관하여 마량진 앞바다에 있었던 1816년의 일만큼 명확하게 사료로 남아 있는 것은 없으며, 이 때문에 오늘날은 마량진을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전래지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이설(異說)이 없는 듯하다. 편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경이 전해졌던 1816년(조선 순조 16년) 당시의 조선의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다만 전시물에 대하여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마량리 앞바다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1816년의 일인데, 그렇다면 재위기간(1800~1834)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은 당연히 조선의 제23대 임금인 순조(純祖) 때의 일이다. 그런데 벽면에는 순종대왕실록(純宗大王實錄)이라고 크게 쓰여 있다. 순종(純宗)은 조선의 제27대 임금(재위기간: 1907~1910)으로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무지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둘째 마당: 2.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마량진 앞바다에서 있었던 조선인과 영국인의 첫 만남,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건네졌던 킹 제임스 성경...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마량리에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이 들어섰는데, 위치는 아래 사진을 참조하면 된다. 지도상에는 뒤에 이야기할 "마량리 동백나무 숲"도 보인다.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은 이런 모습을 띠고 있는데,

기념관의 개관 및 폐관시간, 그리고 기념관의 구조(4개 층의 내용)에 대해서는 벽면에 이렇게 안내를 하고 있다.

기념관 입구는 위 사진 속의 승합차 뒤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한층 올라간 곳에 있다. 이렇게 말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기념관"이란 글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조형미는 있어 보이지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조금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본격적으로 전시물 관람에 앞서 인증샷을 한 장 남긴다. 이제 찬찬히 기념관 안을 둘러보는 일만 남은 건가?

배 한 척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당시 우리나라 수군의 판옥선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영국군 배 두척 가운데, 한 척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기념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전시물 중에는 '한글성경번역사'라는 것도 있던데, 관심 있어 유심히 전시물을 관람하다 보니 막상 전시물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진을 못 남겼다.

앞에서 맥스웰 함장이 건네주었던 성경이 "킹 제임스 성경"이란 이야기, 그리고 킹 제임스 성경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지만 명색이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인데, 성경에 대한 전시물이 그것에 그치는 것은 무언가 많이 허전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역시 킹 제임스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킹 제임스 성경의 존재와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이제 몇 가지 궁금증 내지 바람 같은 것이 생겨나게 된다. 그 하나는 1816년에 건네진 킹 제임스 성격의 원본은 존재하는가? 에 관한 것인데, 불행히도 원본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시각을 전 세계적으로 돌려서, 1611년에 처음으로 출간되었다는 킹 제임스 성경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기는 한가? 남아 있다면 어디에서 그를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의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아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그를 볼 수는 없을까?라는 바람이 절로 일어난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킹 제임스 성경은 오늘날에도  몇 권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그를 보고 싶은 바람은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측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기념관이 킹 제임스 성경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구매작업에 들어가 어렵사리 구매를 한 것이다. 그 험난했던 과정은 아래 사진을 참조하기를...

위 사진 속에 나와 있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렇게 우리 눈앞에 킹 제임스 성경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킹 제임스 성경의 모습만 한 장 더 사진을 남겼다. 외국의 박물관에는 이런 책들을 전시할 때 책을 펼쳐 놓기도 하던데, 이곳에서는 책표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나 같은 출판쟁이들한테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기는 한데, 어찌 보면 지금처럼 묵직한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이 당신의 시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이 이야기를 언급해 놓은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 정약용 선생 또한 이러한 사건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념관은 - 성경에 관한 전시를 빼면 - 거의 대부분을 조선인과 영국인의 만남을 주제로 한 전시물들로 채워져 있는데, 먼저 이것은 서로의 모습에 대한 두나라 측의 기록이다.

내용을 보고자 그 부분만을 확대해 보았는데, 먼저 이것은 알세스트호와 함께 했던 리라호의 함장이었던 바실 홀(Basil Hall)의 "10일간의 조선항해기"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바실 홀은 '모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모자는 갓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서술을 보면 양반과 중인의 갓이 크기와 모양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리고 이것은 순조실록 권 19에 실려 있는 우리 눈에 비친 영국인의 모습에 관한 기록이다. 아, 내용 중 동로구(銅爐臼)는 구리솥을 의미하고, 흑전(黑氈)은 검은색 모직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로의 언어에 대해 서로가 무지하였을 터인데 과연 어떻게 이야기가 이루어졌을까? 이에 대하여는 아래 사진과 같은 전시물이 답해주고 있다. 어쨌거나 양측이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그리고 영국의 언어에 대한 조선인의 반응과 조선의 언어에 대한 영국인의 반응을 내용으로 하는 전시물이 있어. 사진을 찍어 놓고 천천히 내용을 훑어 보려고 하였는데, 사진이 흐려 읽어 볼 수가 없다. ㅠㅠ    

만약에 맥스웰 함장과 조대복 첨사가 독대를 하였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다.

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기념관 측은 그런 이들을 위해 이렇게 포토존을 마련해 놓고 있다.

1816년 마량리 앞바다에서 벌어졌던 이 사건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먼저 영국 측의 기록으론 알세스트호의 군의관이었던 맥레오드(McLeod)와 리라호의 함장이었던 바실 홀의 한국 서해안 항해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못 찾았는지는 몰라도, 전시관에는 맥레오드의 항해기인 "조선해역 및 유구 열도 항해기"에 대한 전시물만 있다.

이것이 "조선해역 및 유구 열도 항해기" 제2판(1818)의 모습인데(속표지로 생각된다),

이 책에는 서양인(영국인)과 조선인이 만남 장면이 이렇게 삽화로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 국보 제153호인 일성록(日省錄)에 이 사건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아, 일성록은 1760년(영조 37년부터)과 1910년(순종 4년)까지 150년간 조선시대 임금들의 언동을 날마다 기록한 책을 말하는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성경전래와 직접적 관련은 없는 것이지만) 조선과 영국을 비교하는 전시물도 있는데, 먼저 두 나라의 음악과 악기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음악 중에서도 두나라의 행진곡을 비교하고 있는데, 글쎄 "두 나라의 음악 전반에 걸친 비교는 좁은 공간에서 하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그렇다고 하면 첫 대면이 두나라의 군인들의 만남이었으니 행진곡을 비교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두 나라의 행진곡에 관한 설명은 아래의 사진들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한편 영국인들의 귀에 들린 조선의 음악, 그리고 그중에서  영국인들이 바라본 조선의 악기에 관하여는 아래의 사진을 참조하기를.

두나라의 배를 비교하는 전시물도 꽤 있었는데, 서로의 눈에 비친 다른 나라 배의 모습에 관한 전시물 중 내 사진기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달랑 이것 하나뿐이다.

지금부터는 이것들 이외에 단편적인 전시물 중 내가 관심 있게 바라본 것, 몇 가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것은 앞에서 보여 주었던 것인데, 배의 마스트를 통해 영상물을 제공하고 있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향하여 대포를 발사하는 장면을 시연해 볼 수 있도록 해 놓아서 눈길을 끌었고.

한편 이것은 당시의 영국 함대의 조선 서해안 탐사가 미친 파급효과에 관한 전시물인데, 사진상으로는 그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 마량진 동백꽃 전설에 대한 설명도 있던데, 이 전설에 대하여는 마량리 동백숲에 대해 다음번에 별도로  포스팅 때 한꺼번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성경전래지 기념관에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있는 작업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바로 나만의 성경책을 만들어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컴퓨터가 그것이다. 복잡한 작업은 필요 없고, 그저 컴퓨터 화면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문구를 작성하고, 표지칼라를 지정해서 멜로 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의 전부이다.

이렇게 메일을 보내면,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이름으로 내 계정에 메일이 들어오고

첨부파일을 클릭하면 이렇게 품위 있는 나만의 성경이 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이 말씀.

서천군 일대를 워낙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데다가, 기념관의 전시물을 꼼꼼히 챙겨보다 보니 체력은 완전히 바닥이 나 버렸다. 그야말로 급히 당땡기는 상황인데, 다행히 기념관 3층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카페로 가는 계단을 올라 카페 입구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마량포구쯤 되는 건가?

카페. 널찍널찍하게 자리를 배치해 놓았고, 기념품 샵도 있다. 그에 더하여 음료 또한 (좀 심플하긴 하지만) 저렴해서 지친 몸 쉬어가기에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딱이다.

카페 한쪽에 있는 기념품 샵인데, 다른 곳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기념품들로 가득하다. 의미를 담아 구입해 두면 그야말로 이곳을 다녀간 기념이 될 듯하다.

마지막으로 기념관 4층에는 자그마한 예배당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예배당 전면의 십자가가 맞은 편의 창에 비치는데, 이때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면... 영국함대와 우리 측 군선이 처음으로 만났던 바다 위에 십자가가 드리워져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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