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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Jan 26. 2024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Chapter 10. 리투아니아 최고의 여름휴양지 팔랑가(Palanga)

# 첫째 마당: 팔랑가(Palanga), 어떤 곳인가?



리투아니아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 책자는 팔랑가(Palanga)를 기껏해야 2-3 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관광객들 가운데 팔랑가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고, 여행 후기 또한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막상 리투아니아 현지에서 느끼는 팔랑가의 관광지로서의 지명도는 앞에서 소개한 클라이페다나 니다보다 훨씬 더 높으며, 유럽에서 발간된 여행 안내책자들은 예외 없이 팔랑가를 리투아니아 제1의, 그리고  최대의 '여름' 휴양지로  꼽고 있다.


그리고 이 점에 관한 한 나 또한 유럽 친구들의 평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리투아니아 여행에 나선 이상 팔랑가를 반드시 들러 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특히 클라이페다와 니다를 둘러볼 계획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클라이페다에서 자동차로 불과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팔랑가는 Must-See이다.     

팔랑가가 리투아니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로 손꼽히는 이유는 팔랑가의 바다가 갖는 특별한 매력 때문이다. 팔랑가의 바다는 팔랑가의 도심으로부터의  접근이 용이하고, 물이 깨끗하며, 특히 수심이 아주 낮다는 점에서 조금은 특별하다. 이런 까닭에 여름이면 팔랑가의 바다를 즐기려는 휴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데, 그 결과 우리는 여름의 팔랑가해변에서 아래 사진과 같은 풍경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팔랑가가 여름 휴양지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백사장이다. 팔랑가의 해변은 백사장이 18km에 걸쳐 길게 펼쳐져 있고, 백사장의 폭 또한 상당히 넓으며, 이에 더하여 모래의 질 또한 나무랄 데 없이 좋다. 이처럼 팔랑가는 여름 휴양지로서의 천혜의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데, 일단 무려 18km에 이르는 백사장이 보여주는 장관을 구경 한번 해 보자.

팔랑가, 특히 볼거리가 몰려 있는 중심지는 너무나도 뻔해서 팔랑가 관광에 나서는 경우 지도는 사실 별로 필요 없지만, 일단 지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 보겠다. 우선 지도 왼쪽에 발트해(Baltic Sea)가 보일 텐데, 그 발트해를 따라 길게 노란색과 회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18km씩이나 이어지는 팔랑가의 해변이다.   


다음으로  지도의 중앙을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는 짙은 노란색 도로가 보일 터인데, 이 길이 팔랑가의 메인 도로인 "비타우타스 대로(Vytautas Gatve)"이다.  그리고  비타우타스 대로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지도의 중앙 부분에 동그라미와 별표시가 있는 것이 보일터인데, 그  옆으로 비타우타스 대로와 직각으로 만나면서 해변 쪽으로 곧게 뻗은  길이 이 도시의 최대 번화가인 "바사나비츄스(Basanaviciaus)" 거리이다. 마지막으로 지도의 왼쪽 맨 아래 부분에 역시 동그라미와 별표시가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호박박물관과 팔랑가 식물공원이 있다.



## 둘째 마당: 팔랑가의 해변



팔랑가가 관광지로서 유명해진 것은 볼 것도 없이 바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팔랑가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팔랑가 관광의 핵심 축인 바사나비츄스(Basanaviciaus) ) 거리가 끝나는 곳이다. 번잡하기 그지없고, 인간으로 넘쳐나는 바사나비츄스 거리가 끝나는 곳에서 이렇게 멋진 바다가 시작되다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특히 하늘과 바다가 황금빛으로, 이어서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시점의 바다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 풍광을 즐기라고 이렇게 벤치를 만들어 놓았겠으며, 그리고 저 많은 사람들은 또 왜 아무 생각 없이 벤치에 앉아서 물끄러미 바다를 쳐다보고 있겠는가? 나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벤치에 앉아 팔랑가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은 지금도 또렷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바다 위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역설적으로 더욱더 그런 꿈을 꾸게 되기도 하고. 한편 이런 인간의 욕망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 주고자 근래 들어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는 데크(Dech)를  많이 만들고 있는데, 내 경험으로만 이야기하면 그런 구조물 중에 단연 최고의 것을 팔랑가 해변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다 가운데로 뻗어 있는 데크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는 했지만, 바다의 경치에 취하는 바람에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보다 훨씬 더 빨리 그런 생각을 잊어버렸다. 결론적으로 데크의 길이는 측정을 못해 보았고, 아쉽게도 그에 대한 정보 또한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바닷속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 만큼  데크의 길이는 상당히 길다.

마침내 데크의 끝에 이르러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이제 내 시야에는 온전히 바다와 하늘만 가득할 뿐, 거칠 것이 전혀 없다. 아, 아침에 눈 비벼가며 힘겹게 떠올라서는 낮동안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이 땅을 비추던 해가 하늘과 바다 중간에 남아 있구나. 기나긴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해가...   

데크를 따라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데크의 오른쪽(북쪽 방향)과 왼쪽(남쪽 방향)의 바다 사진을 남겨 두었다.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더니 어찌 바닷속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도, 해변에서 모래 장난을 즐기는 사람도 없냐고?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지만, 그것은 촬영 당시 시각이 이미 밤 8시를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유럽이라는 지리적 조건에 썸머타임이 겹치면 밤 10시에도 여전히 이렇게 밝다.   



### 셋째 마당: 호박 박물관과 팔랑가 식물공원(Palanga Botanic Park)



1. 들어가며


바닷가에서의 수영과 백사장에서의 놀이가 여름 휴양의 최대 포인트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이것만으로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는 없다. 태양과 바다를 벗 삼아 충분히 바다에서의 놀이를 즐겼다면 심신을 달래며 편안히 쉬는 것 또한 필요하다. 팔랑가에는 그런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훌륭한 휴식 공간이 있는데, 푸르름으로 뒤덮여 있는 데다가 한나절을 보내기에 충분할 만큼 넓은  면적을 가진 '팔랑가 식물공원(Palanga Botanic Park)'이 바로 그곳이다.

이에 더하여 우리의 문화적 허영심을 채워 줄 만한 구경거리, 그러니까 꽤 괜찮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이 곁들여진다면 휴양지로서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게 되는데, 팔랑가는 이러한 부분조차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바로 리투아니아 최대의 '호박 박물관(Amber Museum)'이 이곳 팔랑가 식물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데, 우선 호박 박물관과 팔랑가 식물공원의 전경(의 일부)을 보여주기로 한다.   


2. 호박 박물관과 팔랑가 식물공원


국내에서 발간된 리투아니아 관광안내 책자는 '호박 박물관'에 대하여 단 몇 줄의 기본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지만, '리투아니아 최대'라는 말에 이끌려 네비게이션에 의존해 '호박 박물관'을 찾았다. 그런데 문제는 네비게이션이 인도한 곳에 내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박물관으로 생각되는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여 "아래 사진 속의 문을 지나면 곧 호박 박물관이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착각이었다. 왜냐하면 이 문은 팔랑가 식물공원(Palanga Botanic Park)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 뿐이고, 여기서부터 숲길을 한도 끝도 없이 걸어 들어가야만 비로소 호박 박물관이 나타나니까 말이다. 결국 호박 박물관은 넓디넓은 팔랑가 식물공원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셈이다. 얼마나 넓기에  "넓디넓은"이란 말을 쓰냐고? 놀랍게도 이 공원의 총면적은 무려 100ha, 즉 1,000,000제곱미터(약 30만 평)에 이른다.    

팔랑가 식물공원은 공원 전체의 구조는 물론 공원 내의 건물 하나 하나와 조경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을 만큼 훌륭하며, 이에 더하여 그들 간의 조화 또한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이런 환상적 공간의 탄생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던 대가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의 조경건축가이자 식물학자인 앙드레(E. F. Andre)와 역시 건축가인 그의 아들  R. E.  Andre, 세계 가드닝계를 주름잡았던 벨기에의 B. de Couton이 힘을  합치고,  그에 더하여 F. Tyszkiewicz 백작이 전폭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지원한 결과의 산물이 바로 팔랑가 식물공원인 것이다. 아, 여기까지 읽고  팔랑가 식물공원, 특히 그의 조성과정과 1,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복구작업 등에 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아래 사진 속의 설명을 읽어 보기를...

팔랑가 식물공원은 100ha에 이를 만큼 넓고, 따라서 이 공원에서 제대로 천천히 놀기 시작하면 하루도 한없이 짧기만 하다. 따라서 팔랑가 전체에 대한 관광에 '겨우' 하루를 할애하면서 그 시간 안에 바사나비츄스 거리를 걸어 해변가의 석양을 즐길 계획까지 세워 놓은 나로서는 이곳을 제대로 둘러볼 수는 없었다.

팔랑가 식물공원 개관

팔랑가 식물 공원 입구(위의 지도 오른쪽 끝 중앙)에서 호박 박물관(지도 중앙의 연못 옆)까지의 거리만도 실로 엄청나다. 한참을 걷고 또 걸은 후에 아래 사진과 같은 역동성이 돋보이는 멋진 조각상을 만난다면, 이제 절반은 걸어온 셈이다. 조각상의 주인공? 확실하지는 않지만 리투아니아 전설 속의 여신 유라테(Yurate)처럼 보인다.  

도대체 내가 제대로 호박 박물관을 찾아는 가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질 때쯤, 이번에는  연못과 숲길이 내 앞을 가로막고 나타난다. 그를 벗어나니 또 다른 연못이 나타나고. 도대체 이리로 가면 호박 박물관이 있기는 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넘어서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위의 연못과 숲을 지나치니 저 멀리 희미하게나마 건물이 하나 보인다. 설마 거의 숲 속에 숨어 있는 영주의 성과 같은 느낌이 강한 저 멋들어진 백색의 성이 내가 찾는 호박 박물관이란 말인가?   

어쨌거나 새로운 건물을 본 순간부터 목표 의식이 생겨나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쳐있던 몸에서 다시 활력이 솟는다. 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한 지 수 분이 흘렀을 때쯤 이런 광경이 갑자기 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는데, 그건 안내 책자에 글줄 하나 없던 공원 안에서 이렇게 정원과 건물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공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내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팔랑가 식물공원 안의 이 공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럽의 유명한 성이나 정원 어떤 곳에 견주어 보아도 전혀 뒤질 것이 없다. 특히 규모보다 조화라는 측면에 방점을 두고 바라보면 그런 점은 더욱더 두드러지는데, 적당한 크기의 백색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의 앙상블은 정말 압권이다. 물론 정원으로 유명한 프랑스빌랑드리성(Château de Villandry)의 정원에는 (일단 규모 면에서) 미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절경을 만날 때 흔히들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익히  알고 있고, 실제로 입으로도 많이 해 본 그 말은 바로 "카메라를 어디에 들이대어도 그대로 엽서"라는 것인데, 이곳 정원이 딱 그렇다. 박물관 정면에 서서 입구를 바라보며 찍어도 좋고(왼쪽 사진),  박물관의 입구를 찾아 우측으로 돌아 서면서 찍어도  좋다(오른쪽 사진).

진행 방향에서 보아 건물의 오른쪽을 끼고 돌아서면 이 건물이 호박 박물관임을 알려주는 입간판을 만나게 되는데, 그 바로 앞이 박물관의 입구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호박 박물관 앞에 서서 호박 박물관을 보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워낙 부실해서 이곳을 찾아 나선 시간 자체가 너무 늦었는 데다가, 팔랑가 식물공원이 워낙 넓어서 호박 박물관에 앞에 이르렀을 때에는 폐관시간(하절기 18시)이 지나 버렸기 때문이다.

호박 박물관은 건물 자체만 놓고 보아도 깔끔하며 관리 또한 잘 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호박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지은 건물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들어가 보지 못한 관계로 호박 박물관 안의 전시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다만 Trip Advisor 등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니 확실히 다른 곳의 호박 박물관보다는 볼 만하다는 느낌은 든다.

앞에서 보여 주었던 정원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박물관 뒤쪽에도 자그맣기는 하지만 나름 잘 정비된 정원이 들어서 있다. 규모가 작을 뿐 꽃과 숲, 그리고 조각 작품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박물관 앞에 있는 정원과 마찬가지이다.

호박 박물관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보게 된 정원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고, 그 때문에 이런 곳을 이렇게 휘익~ 지나쳐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가 그지없었다.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건 혹여 팔랑가를 찾을 기회가 있다면 적어도 하루를 온전히 이곳에서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원 - 해변 - 거리와 교회도 즐길 거리로 가득하지만, 팔랑가 식물공원과 호박 박물관 또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니 말이다.



#### 넷째 마당: 바사나비츄스(Basanaviciaus) 거리



낯선 여행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삶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길거리 자체가 최고의 관광상품이 되곤 하는데, 팔랑가의 경우 도시 한복판에 있는 보행자전용 거리인 바사나비츄스(Basanaviciaus) 거리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사나비츄스 거리는 1km가 훨씬 넘도록 계속되지만, 즐비하게 늘어선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실로 잡다한 가게(노점)들이 시선을 잡아끌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겨를은 전혀 없다.

바사나비츄스 거리

바사나비츄스 거리가 시작하는 맞은편 도로변에  이 길의 이름을 낳게 만든 바사나비츄스(Basanaviciaus, 1851~1927)의 흉상이 있다. 아, 바사나비츄스는 19세기말에  리투아니아 최초의 신문인 아우슈라(Ausra) 창간에 일조하는 등 민족문화의 기틀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기도 한 인물인데,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그를 리투아니아의 아버지(國父,  Patriarch of  Lithuania)라고 부르고 있다. 때문에 바사나비츄스란 이름의 거리는 비타우타스 대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 어느 도시를 가도 만날 수 있다.

흉상이 있는 곳에서 길(비타우타스 대로)을 건너면 바사나비츄스 거리가 시작되는데, 거리의 초입에 버스킹(Busking)이 한창이다. 내가 바사나비츄스 거리에서 마주쳤던 팀은 5대의 관악기와 드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따로 앰프가 없어도 그 소리의 울림이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구경꾼들은 모여들었지만 막상 바닥의 돈통에 돈을 던지는 인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곳부터 시작되는 보행자 전용 거리인 바사나비츄스 거리는 해변까지 이어지는데, 거리는 현지인들과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댄다. 그리고 이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레스토랑과 바 및 기념품 가게들이 거리 양옆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다. 또한 거리의 한복판에는 3성급 호텔도 있는데, 이곳을 거처로 삼으면 팔랑가 시내 관광은 정말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사나비츄스 거리에는 실로 별별 것들이 다 있다. 따라서 그들 모두에 일일이 시선을 던져가며 관심을 보이다가는 해변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걸을 때 주변의 명품점을 기웃거리다가는 끝내 개선문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그러하니 제발 적당히, 요령껏 관심을 보이기를 바란다.  


내가 이 거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준 것은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옥수수를 쪄서 파는 노점들이었다. 순간적으로 옥수수가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농작물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는데, 기억의 저장창고를 아무리 헤집어 보아도 리투아니아의 다른 도시들에서 이런 장면과 마주친 적은 없었다. 심지어 팔랑가의 경우도 다른 거리에서는 이런 장면과 마주친 일이 없었는데,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옥수수 노점상들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선 이유는 역시 여기가 바사나비츄스 거리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옥수수 가게인데 이런 사진은 또 뭣하러 찍었나 싶겠지만, 옥수수를 찌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면 아마 누구라도 사진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앳된 여자 아이가 너무도 열심히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이 아무 이유 없이 많이 안쓰러워 보여서 말이다.

바사나비츄스거리에 들어서 있는 것들 중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으로 다음의 두 곳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하나는 BUDDAH BAR라는 곳이다. 내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아 모르겠다만, 저곳이 BAR가 갖는 일반적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다면 부처님께서 뒤로 넘어 자빠지시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손금을 봐주는 곳인데, 근처에 이렇다 할 영업장은 안 보이고 전화번호만 달랑 하나 적혀 있다. 그렇다면 영업은 무언가 은밀하게 진행한다는 이야기인가?

요즘 우리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조금은 촌스럽다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잔뜩 들어서 있다. 보통 때 같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을 것이지만 여행객의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보니 나름 재미있었는데, 그 가운데 인형 뽑기와 범퍼카에 내 시선이 꽤 오래 머물렀다.     

바사나비츄스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넓은 광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보다시피 시민들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져 이곳을 즐기고 있다.

사진상으로 자전거가 많이 눈에 띄는데, 그러고 보니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이 광장의 한편에 (광장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는 중앙이라고 볼 수 있는 곳에) 분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는데, 분수 중앙에 꽤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 작품 이 보인다.  이 분수의 이름이 '유라테(Yurate)와 카스티티스(Kastitis) 분수'인 것을 보면, 조각 작품 속의 남녀는 바로 유라테와 카스티티스로 추정된다.   

유라테와 카스티티스 조각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물이 뿜어져 나온다.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유라테와 카스티티스의 모습을 보니 건강한 생명력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듯하고, 아울러 전설 속의 이야기가 내 앞에서 펼쳐질 것 같은 느낌도 든다.   


Tip: 유라테(Yurate)와 카스티티스(Kastitis)의 전설


유라테와 카스티티스는 리투아니아의 전설 중 가장 유명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데, 이들의 이야기는 오페라나 연극 등의 주요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전설의 내용은 여러 버전으로 전해오는데, 공통적인 골격은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발트해에 있는 호박성에 유라테란 여신이 바다를 다스리면서 편히 살고 있었는데, 카스티티스라는 젊은 어부가 물고기를 혼자서 싹쓸이 해가는 바람에 바다의 평화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하여 유라테는 그를 벌하여 바다의 평화를 회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카스티티스의 인물이 워낙 뛰어나서 그만 유라테는 카스티티스와의 사랑에 빠지고 말았고,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만끽하게 되었다. 이에 천둥의 신 페르쿠나스는 여신이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호박성을 향해 벼락을 내리고, 유라테를 해저 바위에 묶어버렸다".




##### 다섯째 마당:  성모승천교회



유럽 관광의 핵심, 즉 유럽의 도시들을  돌아볼 때 빼먹으면 안 되는 것은 교회나 성당과 같은 종교 건축물들인데,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 건축물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예술이 집약된 최고의 볼거리이다. 팔랑가만 해도 불과 인구 18,000명 수준의 작은 도시이지만, 그러한 종교 건축물이 있는데, '성모승천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가 그것이다.

성모승천교회

성모승천교회는  팔랑가 시내를 관통하는 메인도로인 비타우타스 대로와 바사나비츄스거리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교회의 높은 첨탑은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잘 보여 팔랑가 관광의 랜드마크로 삼을만하다. 이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모습을 보면 일단 성모승천교회는 고딕(Gothic)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축조시기(100여 년 전)도 그렇고, 첨탑의 모양 또한 초기 고딕양식의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이 교회는 이른바 네오고딕(Neo-Gothic)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모승천교회의 첨탑의 높이에 관한 자료는 얻지를 못해 이야기해 줄 수가 없다. 다만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첨탑의 높이는 대충 가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의 교회들 가운데 상당수는 교회의 외곽에 벽을 두르고는 아래 사진과 같은 문을 통해서만  본당에 들어가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 교회들의 경우 본당 문을 걸어 잠그는 때에도, 겉으로나마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이 문은 열어 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팔랑가의 성모승천교회는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문까지 굳게 닫아걸고 있어서 더 이상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Tip: '성모승천교회'에 관하여


(1) 성모승천교회라는 이름

이 교회의 정식명칭은 '성모승천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이다.  Assumption은 보통 가정이라고 번역되지만,  Assumption이란 단어가 지금의 경우처럼 교회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경우는 '승천'을 의미한다. 아, 유럽의 종교 건축물을 보러 다닐 때 '성모(聖母)'를 나타내는 표현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성모를 불어권에서는 Notre-Dame(단어 자체는 귀부인이란 뜻. 프랑스 여행 중에 수많은 도시에서 노트르담 성당을 만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독일어권에서는 Frauen(단어자체는 그냥 부인이란 뜻), 이태리에서는 Santa Maria (성스러운 마리아를 의미한다), 그리고 영어로는 Virgin Mary 또는 Our Lady를 사용한다.


(2) 성모승천교회의 성격

Church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지만, 성모(聖母,  Virgin Mary)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보면 개신교회가 아니라 가톨릭 성당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다만 딱 잡아서 얘기하기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왜냐하면 비록 리투니아의 종교 분포에 있어 로마 가톨릭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리투아니아가 예부터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관계로 루터파 신교 교회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찾아낸 내부 사진을 보니 왠지 가톨릭 성당의 모습이 느껴진다.  



여섯째 마당: Epilogue


 

팔랑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던 관계로 나는 팔랑가를 그저 클라이페다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들려보는 도시 정도로 생각했다. 그 때문에 여행 일정에 있어 팔랑가에 할애한 시간은 겨우 한나절에 불과했고,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이 정도가 전부이다. 다만 여행에서 돌아와 Trip Advisor 등을 검색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내가 이곳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팔랑가의 핵심 관광지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결국 이 정도를 축으로 삼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볼거리와 먹거리를 덧붙이면 팔랑가에서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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