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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Feb 09. 2024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Chapter 12. 고대 발트인의 주거지, 케르나베(Kernavė)

# 첫째 마당: 케르나베, 어떤 곳인가?



1. 케르나베의 어제와 오늘


케르나베(Kernavė)는 트라카이와 빌뉴스보다 앞서 리투아니아 공국의 첫 번째 수도였던 곳으로, 역사 속에서 케르나베가 그 모습을 처음으로 나타낸 것은 트라이데니스(Traidenis, ?~1282) 대공이 영역을 확대하고 요새를 구축했던 1279년이다. 트라이데니스 대공은 리투아니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연사한 대공인데, 트라이데니스 대공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투아니아를 소개하는 책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케르나베에 관하여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1365년과 1390년, 두 차례에 걸쳐 튜턴 기사단(Teutonic Order)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조차 완전히 잊혀 버렸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실제로 케르나베에 가보면 요새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언덕 5개(아래 사진 참조)를 제외하면  당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서, 과연 이곳이 옛 리투아니아 공국의 도읍지였기는 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케르나베는 어떤 곳일까? 위키페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케르나베는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35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고, 2011년 기준으로 인구는 272명이다. 글쎄, 아무리 2011년 기준이라고는 해도 인구수가 고작 272명에 그친다면 오늘날의 케르나베는 마을 자체가 독자적 의미를 갖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작은 마을이다. 그렇다면 이런 리투아니아의 작은 마을을 내가 찾아 들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이 작은 마을 케르나베에 유네스코가 2004년도에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한 "케르나베 고고유적(Kernavė Archaeologocal Site)"이 있기 때문이었다.  


2. 케르나베 고고유적


유네스코가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굴작업을 통해  이곳이 구석기시대 이래 고대 발트인들의 집단 주거지였음을 증명하는 각종 유물들이 출토되고, 고대 성곽도시의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베일을 벗고 드디어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곳이 고대 발트인들의 거주지였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근래에는 매년 7월 6일에 '살아있는 고고학의 날'이란 이름의 행사가 열리는데, 7월 6일은 리투아니아 왕국을 수립했던 민다우가스(Mindaugas) 왕의 대관식 기념일이기도 하다. 행사의 주된 내용은 구석기시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불을 피워보기도 하고, 동물뼈를 가지고 연주도 하는 등 한마디로 말해 선사시대의 삶을 재현해 보는 것인데, 이런 행사에 관한 소개 및 관련 동영상에 관하여는 다음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blog.chojus.com/1973.



Tip: 리투아니아의 세계문화유산


케르나베 고고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기회에 리투아니아가 갖고 있는 세계 문화유산을 한번 짚어보고 넘어가려고 한다. 리투아니아는 다음과 같이 모두 4개의 세계문화유산을 갖고 있는데, 이들 4개의 문화유산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다음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unesco114/221123664515.


1. 스트루베 측지 아크


리투아니아의 세게 문화유산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 빌뉴스 역사지구(Vilnius Historic Centre), ② 케르나베 고고유적(Kernavė Archaeologocal Site), ③ 쿠르슈 사주(Kursih Nerija), ④ 그리고 스트루베 측지 아크(Struve Geodetic Arc). 한편 이들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①~③의 3곳은 이 책을 통하여 관련된 부분에서 이미 간단하게나마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므로, 여기서는 그에 관해 따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스트루베 측지 아크(Struve Geodetic Arc)'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스트루베 측지 아크

스트루베 측지 아크는 지구의 정확한 모양과 크기를 측량하기 위하여 설치한 일련의 거점들을 연결해 놓은 총길이 2,820km의 아크(Arc)를 말하는데, 스트루베 측지 아크에 대해서는 다음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Hammerfest)에서 흑해까지 벨라루스·에스토니아·핀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몰도바·노르웨이·러시아·스웨덴·우크라이나의 10개 나라에 걸쳐 34개의 주요 거점을 포함하고 있는 스트루베 측지 아크는 1816년부터 1855년까지 무려 40년의 시간에 걸쳐 국제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는데, 현재 리투아니아에는 3개의 거점이 있다.

이러한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추진한 이는 독일계 러시아 과학자인 스트루베(Friedrich Georg Wilhelm von Struve, 1793~1864)이다. 스트루베 측지 아크 최초의 거점은 스트루베가 근무했던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Tartu) 천문대인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작고 초라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스트루베가 근무할 당시엔 유럽 최고의 천문대였다.  

고백하건대, 타르투 천문대를 방문할 당시만 해도 난 스트루베가 이 정도로 유명한 천문학자인 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스트루베 극지 아크라는 것도 전혀 몰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투 천문대 앞에 있는 스트루베 기념비의 사진은 남겨 놓았던데, 그건 전적으로 이 기념비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3. 케르나베, 어떻게 다닐 것인가?


케르나베는 크게 두 영역 즉, (1) Kernavė라는 글씨 밑에 있는 지도의 위쪽에 하얀 부분인 오늘날의 케르나베 마을과, (2) 그 아래쪽에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인 케르나베 고고유적으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케르나베 관광 역시 이렇게 두 파트로 나누어 진행하면 될 것이다.



## 둘째 마당: 케르나베 마을



300명도 안 되는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니 케르나베 마을 자체에 빼어난 볼거리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케르나베의 중심이 되는 거리도  보다시피 보행자 전용거리이고, 그나마 변변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한 곳 없다.

그러나 기대 수준을 조금 낮추면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한 곳도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Svc. Mergeles Marijos Skaplierines Banzycia"이다.  Svc.는 영어의 St.에, Banzycia는 영어의 Basilica에 해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교회는 Mergeles Marijos Skaplierines라는 이름을 가진 성자를 기리는 교회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교회 앞에 동상이 하나 있는데, 누구의 동상인지는 알 길이 전혀 없다. 단지 동상의 기단부에 MOZE라는 글씨가 보이고, 손에는 무엇인가가 적혀있는 문서를 들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모세와 십계명이 떠올랐다(아, 이것은 전적으로 내 추측일 뿐이다).

리투아니아의 많은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이 교회 또한 본당 앞에 교회의 입구에 해당하는 문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케르나베 고고유적지를 돌아보고 다시 이 교회를 찾았을 때에는 그만 이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때문에 아쉽게도 교회의 내부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Trip Advisor에 이 교회의 내부 모습을 올려놓으신 분이 계셔서 이미지를 하나 가져왔다. 마을 인구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교회의 규모가 큰 편인데, 최근에 한번 내진(內陣) 전문가가 손을 본 흔적이 역력하다. 아, 핑크 톤의 기둥이 좀 낯설 수도 있는데, 유럽의 경우 근래 들어 교회나 성당의 내부를 핑크 톤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케르나베 고고유적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촬영한 교회의 뒷모습인데, 앞모습도 훌륭했지만 뒤에서 바라보니 교회로서의 짜임새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이 교회 역시 - 리투아니아의 많은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 교회의 외곽에 담을 쌓아 바깥 세계와 교회의 영역을 확연히 구분하고 있고, 교회를 개방하지 않는 시간에는 교회 입구를 봉쇄해 버려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케르나베에 관한 정보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미처 챙겨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조사해 본 결과 케르나베에서 보아야 할 곳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어 소개하기로 한다. 그 하나는 리투아니안인들이 영웅으로 떠받드는 비타우타스(Vytautas) 동상인데, 동상 뒤편의 건물 또한 예사스럽지는 않다. 다만 이 건물에 대한 설명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공공건물(특히, 교회)로 생각된다. 개인이 단순히 자신의 주거용 건물에 저렇게 많은 창문을 만들어 놓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곳은 "케르나베 고고유적 박물관"인데, 케르나베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은 이곳을 거치게 되면 케르나베 고고유적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셋째 마당: 케르나베 고고유적(Kernavė Archaeologocal Site)



1. 들어가며


케르나베의 고고유적지 입구에 케르나베 고고유적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에 꼭 필요한 안내판이 서 있는데, (물론 사전에 충분한 기초지식을 갖고 있거나 훌륭한 가이드를 동반하고 방문을 하는 경우라면 skip해도 무방하다) 일단 이 안내판을 통해 이곳의 전체 모습을 간단히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1) 안내지도의 맨 아래쪽 중앙에 보이는 붉은색 동그라미가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쯤에 해당하는 곳인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안내판이 이곳에 서 있다.


(2) 붉은색 동그라미 오른쪽에 보이는 교회가 앞에서 언급한 교회이고, 교회 앞으로 보이는 공터가 '구 교회의 마당( Churchyard of Old Church)'이었던 곳이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 두 개의 집 모양을 한 것이 보일 텐데, 앞의 것이 석조 예배당(The Stone Chaple)이고, 뒤의 것이 목조 예배당(The Wooden Chaple)이다.


(3) 그 앞쪽으로 4개의 언덕이 보이고 왼쪽 멀리 또 하나의 언덕이 보이는데, 이들을 묶어서 5개의 언덕 요새(Hill Forts)라고 부른다. 그리고 언덕 요새 사이를 뚫고 나오면 광대한 평원이 펼쳐지고, 그 평원이 끝나는 곳에서 하늘색으로 굽이쳐 흐르는 네리스(Neris) 강을 만날 수 있다.  


2. 구 교회 마당, 석조예배당 그리고 목조예배당


케르나베 최초의 교회는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의 지원하에 목조로 축조된 성 니콜라우스 교회(St. Nicolaus)인데,  이 교회는 1420년 경에 완성된 후 수차례에 걸쳐 개축과 복원이 행해져 오다 1935년에 완전 해체하여 다른 지방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교회의 마당이었던 곳을 구 교회의 마당(Churchyard of 'Old' Church)이라고 부르는데, 15세기 초부터 19세기까지 이곳은 케르나베 주민들의 묘지로 사용되었다.


이  Churchyard of 'Old' Church의 왼쪽 조금 앞에 19세기에 로메리스(Romeris, 1823~1876)에 의해 축조된 후기 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예배당(The Stone Chaple)이 있다. Romeris는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가문으로, 리투아니아 헌법을 기초한 사람도 이 집안의 Mykolas Pijus Paskalis Romeris 교수이다. 아, 리투아니아에서 Romeris 집안과 견줄 만큼 유명한 집안으로는 리투아니아 대공이었으며 폴란드의 마지막 왕의 대신을 지낸 Stanislovas Puzina를 배출한 Puzina 집안이 있다. 내가 갑자기 리투아니아의 유명한 집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예배당이 현재는 저 두 집안의 가족묘(Mausoleum)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조 예배당 앞쪽의 커다란 나무 오른쪽으로 집 한 채가 보이는데, 이것이 18세기말에 민속양식에 따라 지어진 목조 예배당(The Wooden Chaple)이다. 케르나베로부터 4km 떨어진 곳에 있던 이 예배당을 케르나베 교구 목사였던 Petras Cibobicius의 주도하에 1822년에 사들여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반대쪽에서 바라본 예배당의 모습도 한 장 더 남겨둔다.   


3. 언덕 요새(Hill Forts)


케르나베 고고유적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언덕 요새이다. 이들 언덕요새는 청동기시대 말부터 14세기까지 존속하였던 리투아니아 요새의 전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인간이 쌓은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 준 언덕을 방어 목적에 맞게끔 사용하였다는 것에서 특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언덕 요새들은 각기 그 이름을 갖고 있다. 즉, 목조 예배당 왼쪽에 있는 것이 Mindaugas Throne, 오른쪽에 있는 것이 Castle Hill 요새, 그리고 그 두 언덕 요새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가면 만나는 것이  Altar Hill 요새이다. 그리고 Altar Hill 요새 왼쪽에 있는 것이 Lizdeika Hill 요새, 그리고 마지막으로 왼쪽으로 멀리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것이 Kriveikiskis Hill 요새 되겠다. 따로 떨어져 있는  Kriveikiskis Hill 요새를 제외하면 이들 4개의 언덕 요새는 연이어져서 하나의 방어 콤플렉스를 형성하고 있다.

위의 사진만 놓고 보면 겨우 저 정도 높이의 언덕 4개를 요새라고 부르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앵글을 달리하여 언덕 요새를 바라보면 요새의 높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더러 이들 요새의 배열을 보면 적들이 설사 하나의 요새를 넘어 들어왔다고 하여도 오히려 다른 요새들 위에 있는 리투아니아 군의 협공을 받게끔 되어 있는데, 이는 방어시스템으로서는 나름 완벽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니 루이 14세 시대의 축성 전문가인 보방(Vauban, 1633~1707)이 축조한 벨포르(Belfort) 성이 절로 떠오른다.  

이들 5개의 언덕 요새를 모두 올라 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냉정히 말해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요새의 모습을 느껴보고, 요새 위에서 케르나베 고고유적지 전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틀림없이 의미 있는 일이란 점을 생각하면 그들 요새 중 하나 정도는 올라보는 것이 좋다. 이 경우 5개 요새 가운데 위치상으로 가장 중앙에 있으며,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Altar Hill 요새를 오르는 것이 제일 좋다. 아, Altar Hill 요새는 그 기원이 B.C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등 연혁적으로 보아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Altar Hill 요새를 어떻게 찾지?라는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목조 예배당을 지나 언덕 요새들을 향해 발을 떼면 다른 언덕 요새들과 달리 올라가기 편하게끔 계단을 만들어 놓은 언덕 요새가 보일 텐데, 그것이 바로  Altar Hill 요새이니 말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렇게  Altar Hill 요새만을 오르고 있는데(왼쪽 사진), 언덕을 오르다 계단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꽃이 아름다워 사진 한 장을 남긴다(오른쪽 사진).

Altar Hill 요새로 오르는 계단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계단의 수도 상당해서 Altar Hill  요새의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를 감수해야 된다. 그렇지만 정상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은 이곳에 오르기 위해 들인 노력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환상적이다.


4. 평원과 네리스 강변


Altar Hill 요새 앞쪽으로 초지(草地) 내지 평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그것이 끝나는 곳에 네리스(Neris) 강이 흐르고 있다. Altar Hill 요새에 올라 평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기까지 온 이상 네리스 강변까지는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데, 이 경우  Altar Hill 요새에서 직진하는 루트가 강변에 이르는 최단거리 루트이다.

평원 한쪽으로 짙은 숲이 보이는데,  이 숲을 보고 있노라면  - 숲이 너무 우거져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색으로 보일 정도이기 때문에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라 불리는 - 독일 남서쪽의 삼림지대가 생각난다. 아, Schwarzwald라는 독일어는 말 그대로 검다는 뜻의 Schwarz와 숲이라는 뜻의 Wald의 합성어이다.

저 검은 숲 아래에  네리스 강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다. 워낙 짙은 숲으로 뒤덮인 곳에 있어 햇볕이 부서지는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선선하다.

먼 길을 달려 흘러 온 네리스 강이 내가 앉아 있는 벤치로 굽이쳐 밀려 들어오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품 안에 강물을 안고 있기라도 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는 강물은 마치 칭얼대는 아이처럼  멈추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는 이윽고는 아쉬운 듯 내 앞을 떠나 유유히 사라져 간다.   

단순히 이런 경치를 한번 바라보기 위해 1시간 반여를 꼬박 걸어 오가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약간 의문이 있다. 사실 이곳에서 B.C 9000년 경부터 사람들이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을 증명해 주는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판을 읽어 보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덕요새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그대로 돌아서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곳엔 그저 언덕과 넓은 초지 그리고 강이 있을 뿐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옛사람들의 거주 흔적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이곳에 구석기시대부터 발트인들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그냥 지어낸 것은 아니며, 유네스코 홈페이지를 가 보면 이곳에서 실제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어떻게 B.C 9000년 전의 유물들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가 출토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네리스 강이 상류에서 가져온 토사가 계속해서 일만년에 걸쳐 퇴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1979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 발굴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개인이 발굴작업을 한다는 것은 꿈꿀 수도 없었다.          



#### 넷째 마당: Epilogue



여행지로서 케르나베는 틀림없이 매력이 넘치는 곳이지만, 리투아니아를 찾으면 반드시 케르나베를 둘러보아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하기는 좀 그렇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이곳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함이나 눈앞에 보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케르나베는 정말로 볼품없는 시골마을에 불과할 것이고, 그에 반해 지금의 황량함에서 옛 것을 더듬어보며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케르나베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 될 수 있다.



Tip: 케르나베 관광의 소요시간


케르나베를 둘러보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의 문제에 관하여는 일률적으로 답하기가 어렵다. 일단 케르나베 마을의 경우, 교회와 박물관을 포함해도 1시간이면 충분히 모두 돌아볼 수 있다. 반면 케르나베 고고유적은 자체 면적만도 194ha에 이르고, 주변의 보호완충지역까지 포함하면 전체규모는 대략 2,600ha에 이르니 이 모두를 둘러본다면 몇 날 며칠도 부족하다. 또한 5개의 언덕요새를 모두 오르락내리락하고, 강가에 몰려 있는 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까지의 집단거주지들까지만 돌아보려 해도 하루가 오히려 빠듯하다.


그렇지만 고고학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케르나베 고고유적을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둘러볼 필요는 없다. 입구의 교회를 간단히 보고, 초입에 있는 언덕요새 중 대표적인 것 하나(Altar Hill)를 택하여 올라 보고, 고고유적지를 흐르는 네리스 강가까지 걸어가서 강변의 경치를 즐기는 정도면 대충 이 곳을 둘러보았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것이 내가 택했던 루트인데, 소요시간은 3시간 남짓. 다만 한여름의 태양이 내려 쬐는 벌판에서 2시간 가까이 걸음을 옮기는 것은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만일 이것조차 것이 두려운 경우라면 교회 - 안내판 - 언덕요새로 이어지는 루트를 택해도 좋은데, 이러한 루트를 택하면 소요시간은 1시간 반 내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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