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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Feb 02. 2024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Chapter 11. 수상 스포츠 천국으로 떠오른 옛 도읍지, 트라카이

# 첫째 마당:  Prologue



1. 트라카이(Trakai), 어떤 도시인가?


트라카이는 케르나베(Kernave)가 독일 기사단의 공격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에 꽤 오랫동안 리투아니아의 수도로서 번창했던 도시였지만, 게디미나스(Gediminas, 1275?~1341)가 수도를 빌뉴스로  옮긴 이후 수도로서의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서부터 점차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세인의 관심사에서도 멀어지게 되어, 이제는 그저 옛 영화(榮華)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는 6000여 명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도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트라카이 주민들은 여전히 트라카이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리투아니아 역사에서 마지막 승리로 기록될 그룬발드(Grunwald) 전투를  이끌었던 비타우타스(Vytautas, 1350~1430)가 이곳 트라카이 출신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트라카이의 문장(紋章)이 - 다른 도시들의 문장이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용맹한 동물을 담고 있는 것과 달리 - 비타우타스의 얼굴을 담고 있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트라카이는 지금의 리투아니아 수도인 빌뉴스(Vilnius)에서 남서쪽으로 불과 28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두 도시를 연결하는 A4와 A16 고속도로의 포장상태가 양호해서 빌뉴스에서 자동차로 불과 30분이면 트라카이 성이 바라다 보이는 호숫가에 다다를 수 있다. 이처럼 트라카이는 빌뉴스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가 그득한 매력적인 관광지이니 리투아니아 관광에 나서는 경우 반드시 트라카이를 찾을 수 있게끔 여행 일정을 짤 것을 권한다. 리투아니아를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들 가운데 빌뉴스를 본 후 트라카이를 skip 하고 바로 카우나스(Kaunas)로 넘어가는 분들이 가끔 계시던데, 단언컨대 그러한 여정은 정말 바람직하지 못하다.  


2. 트라카이, 어떻게 다닐까?


트라카이를 어떻게 둘러볼 것인가의 문제는 아래 지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다.

(1)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트라카이를 찾는 경우 지도 맨 아래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내리게 되는데, 그로부터  지도상의 붉은 점을 따라 이동하면서 넘버링이 되어 있는 곳 위주로 관광을 하면 된다. 그러고 나서 트라카이 여행의 백미인 트라카이 성과 갈베 호수를 보면 된다.  

(2) 자동차를 가지고 트라카이를 찾는 경우라면, 먼저 호수가의  ⓘ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라카이 성을 보고 나온 후에, 각자의 사정에 맞게 트라카이 시가지나 인근 섬 관광 등을 즐기면 될 일이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dlwodus92/221691250698).



## 둘째 마당:  트라카이 성, 그리고 3개의 호수



1. 들어가며


매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트라카이를 찾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3개의 호수, 그들 호수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수십 개의 작은 섬, 그리고  붉은빛이 감도는 트라카이 성이 빚어내는 트라카이의 빼어난 경관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트라카이에서 만나는 3개의 호수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갈베(Galve) 호수와 갈베 호수 속의 베바르데(Bevarde) 섬에 자리 잡은 트라카이 성이 빚어내는 풍경이 압권인데, 맑고 투명한 호숫물에 비친 모습과 함께 바라보는 붉은 빛깔의 성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한편 하늘에서 바라본 트라카이 성과 갈베 호수의 모습은  차원을 달리하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만 아래와 같은 사진을 얻으려면 열기구 등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야 할 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풍경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성능을 갖춘 카메라가 있어야만 한다.    


2. 트라카이 성


(1) 트라카이 성에 대한 기본 이해

고깔 모양의 둥근 대형탑과 외벽을 가진 붉은색의 트라카이 성은 원래 독일 기사단 등의 외침(外侵)으로부터 섬을 방어하기 위하여 14세기에 축조되었다. 이후 무너지고 보수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는데, 17세기에 모스크바 공국과의 전쟁으로 보수조차 여의치 않을 만큼 완전히 파괴된 후에는 오랫동안 방치된다. 그리고 1955년부터 전면보수 공사가 행해져서 오늘날과 같은 성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편 트라카이 성은 서쪽으로는 발틱해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비타우타스 대공이 태어나고, 자신의 삶을 마감한 의미 있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트라카이 성은 유럽의 대부분의 성들이 그러하듯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의 이중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고깔 모양의 둥근 탑들로 이루어진 성이 외성이고, 그 안쪽에 짙은 빛깔을 띠고 마치 탑처럼 조금 더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내성이다. 현재 내성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Tip: 트라카이 성, 어떻게 들어갈까?


트라카이 성은 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베바르데 섬에 있으니, 성으로 들어가려면 일단 물을 건너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는 어떻게 건너야 하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사실상 다음과 같은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다. 즉,  

(1) 먼저 호숫가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는다.  

(2) ⓘ앞에 서면 트라카이 성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카르비네(Karvine) 섬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호수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서 카르비네 섬으로 들어간다.  

트라카이성과 호수가 빚어내는 경치에 빠져 수없이 많은 사진을 남겼는데,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 다리 위가 트라카이 성의 View Point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트라카이 성의 입구, 외성과 내성이 한눈에 온전히 들어올 뿐만 아니라, 호수 위에 드리워진 성의 그림자까지.... 한마디로 완벽하다.  

카르비네섬에 오르고 나서 트라카이 성을 행해  몇 발자국을 떼면 1994란 숫자 외에는 기단부의 글을  읽을 수 없는 나무 조각상을 만나게 되는데,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트라카이 성에서 출생하고, 이곳에서 삶을 마감한 리투아니아의 국민적 영웅 비타우타스이다.    

(3) 마지막으로 카르비네 섬과 트라카이 성이 있는 베바르데 섬을 연결하는 긴 다리를 건너면, 이제 트라카이 성의 정문 앞에 서게 된다.  


(2) 트라카이 성안으로 들어가기

트라카이 성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구입하여야 하는데, 최근에 다녀오신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입장권의 가격은 8유로(10,500원)씩이나 한다. 아, 학생 신분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성인 요금의 반값에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데,  20살을 훌쩍 넘긴 내 딸아이 또한 국제학생증을 제시하고 반값에 입장권을 구입했다. 딸아이를 위한 입장권, 너무 귀엽다. 

여행지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에티켓 중의 하나는 사진촬영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보고 있는 멋진 장면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 두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사진촬영이 금지되는 곳에서는 제발 눈과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바란다. 트라카이 성은 원칙적으로 촬영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티켓을 구매하면 공식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나저나 딸아이 입장권이나 사진촬영권을 보면, 리투아니아 친구들이 만화성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   


(3) 트라카이 성, 어떻게 둘러볼까?

트라카이 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둘러보려면 지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우선 맨 아래쪽 G라고 쓰여 있는 곳이 성의 입구이고, 이곳을 통과해 왼쪽으로 접어드는 곳에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 왼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곳이 호숫가에서 트라카이 성을 바라볼 때 정면으로 보이는 외성의 성벽인데, 외성은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입구와 성벽으로 이어지는 "ㄴ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원형 내지 사각형으로 굵게 둘러 싸여 있는 세 곳은 고깔 모양의 둥근 탑이다. 지도 속의 화살표는 볼 것도 없이 입장 후 어느 곳을 어떤 순서로 보아야 하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고. 

평면으로 보는 지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성 전체를 일정 비율로 축소한 입체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 입체모형과 지도를 조합해 보면 조금 더 쉽게 트라카이 성의 구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남기다 보니 입체모형과 안내지도의 사진 방향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입구를 통과하면 마주치게 되는 트라카이 성의 모습. 밖에서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기는 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렇다 할 볼거리는 별로 없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트라카이를 다녀오신 분들 가운데 "성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라고 써놓으신 분들도 있던데, 솔직히 여기까지 와서 성밖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 방식의 관광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평생 다시 한번 오기 힘든 트라카이를 그렇게 지나치지 말고 1만 원 남짓한 입장료 + 30분 정도의 관람시간을 투자하여 성안의 모습도 눈에 담아 두기를 바란다.  

이 성의 성주쯤 되는 인물이 살았고, 집무를 보던 내성(內城)은 오른쪽 전면에 있는 그럴싸한 건물인데, 현재는 리투아니아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안을 바라보며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정면에 보이는 기다란 건물 중앙에 깃발이 휘날리는 고깔 모양의 탑이 보이는데, 그 아래쪽의 아치형 입구가 이 성의 유일한 출입구이다. 오른쪽에 있는 고깔 모양의 둥근 탑은 감옥이 있던 곳이다.  

(4) 드디어... 내성(內城) 안으로

내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다시 이곳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좁은 폭을 가진 다리 아래쪽은 그야말로 낭떠러지이니, 다리와 연결된 체인을 잡아당겨 다리를 거두어들이면 내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러니까 트라카이 성 역시 우리가 보았던 외성과, 해자 안에 숨겨져 있는 내성으로 이루어진 이중구조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성 안의 모습인데, 아래 사진에서는 그리 특징적인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래 사진에는 내성의 특징적 구조가 잘 나타나는데, 그건 건물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좁다란 난간을 통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게끔 축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위쪽에 있는 부분에의 접근은 극단적으로 좁아진 다리와 난간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이는 결국 어렵사리 내성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손쉽게 이 성의 주인을 굴복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단을 통하여 올라서면 복도를 따라 수없이 많은 방들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1962년부터 리투아니아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시품들은 17~18세기 이후의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특별히 내 관심을 끄는 것이 없어 사진을 두어 장 남기는 것으로 관람을 마감했다. 


3. 트라카이의 호수 즐기기 


빌뉴스에서 A16번 고속도로를 타고 트라카이 근처에 이르러 220번 국도로 접어들면 트라카이 시내로 들어서게 되는데, 보다시피 트라카이시는 3개의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트라카이 시내로 들어서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호수가 타타르(Tatar, 리투아니아어로는 Totoriškių)이고, 오른쪽의 호수가 루카(Luka, 리투아니아어로는  Bernardinų) 호수이다. 그리고 트라카이 성을 품고 있는 위쪽의 호수가 갈베 호수다. 이들 호수 가운데 전체적인 풍경은 21개의 섬이 떠 있는  갈베 호수가 단연 뛰어난데,  갈베 호수의 수심은 50m에 이를 정도로 깊다.    

이 가운데 루카 호수는 하늘에서 바라보면 한반도 지형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상당히 친숙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는데 아래 사진이 바로 하늘에서 바라본 루카 호수의 모습이다. 아, 트라카이에서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오르는 것이 관광 스타일의 하나로 자리한 지 이미 오래되어 도처에 열기구 업체가 성업 중인데, 시간이 허락하면 이런 호사를 누려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사진출처: https://blog.chojus.com/4985

트라카이에 왔다면, 특히 갈베 호수와 트라카이 성이 보이는 곳에 왔다면 카메라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멋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자신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곳에서, 또는 걸으면서 찍기 편한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어도 당신들의 카메라에 들어 있는 사진은 하나같이 그림엽서 같은 사진들로 가득할 터이니 말이다.  



### 셋째 마당: 수상 스포츠의 천국, 트라카이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리투아니아 안내 책자들은  트라카이를 그저 호수와 성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트라카이의 숨겨진 매력, 아니 어쩌면 트라카이의 진정한 매력은 수상 스포츠의 천국이라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실제로 트라카이에 있는 호수들은 수상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언제나 넘쳐나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감탄하는 것은 호수의 수질(水質)이다.  특히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이런 수질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트라카이가 이런 곳인지를 내가 미리 알았다면,  수상스포츠를 즐길 시간까지 고려해서 여행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트라카이에 있는 동안 내내 몰디브에서 배웠던 윈드서핑을 다시 한번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말레이시아의 콴탄 해변에서 어렵사리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로 끝나 버린 1인승 카약에도 재도전해 보고도 싶었고. 딸아이도 나와 비슷한 생각에 빠졌는지, 말없이 호수만 바라보고 있다. 

요트라는 것, 우리네 어린 시절에는 영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단어에 불과했다. 그를 직접 접하고, 내가 그것을 몰아 본다는 것은 꿈속에서조차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나에게는 있어 요트가 갖는 의미는 그 옛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트라카이를 둘러싸고 있는 호수 위에는 그 요트가 이렇게나 많이 떠 있다. 고백하건대, 물 위에 떠있는 많은 요트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가 떨어져 어둠이 내린다고 하여 맑은 물 위에서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욕망 또한 함께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호수에서의 수상 스포츠는 저녁이 되어도 계속되는데,  어찌 보면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깊은 밤에 호수에서 즐기는 수상 스포츠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Trip Advisor.

본격적인 수상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을 보트를 타고 호수 위에 떠 있는 것으로 달래 보기로 급거 결정했다. 다만 내 체력으로는 직접 보트의 노를 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운전자가 있는 전기 보트에 올라탔다. 비록 경제적 출혈은 있었지만 다른 신경 쓸 일 없이 호수의 풍광을 즐기는 것에 전념할 수 있고, 강렬한 태양도 피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져서 좋다.  

보트를 타고 호수 위를 떠다니고 있자니 호수와 트라카이 성이 뭍에서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서 재미가 꽤 쏠쏠하다.  트라카이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건넜던 다리는 단순히 호수 위의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기능 이외에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트라카이 성의 모습 또한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보니 무척이나 낯설고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호수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갈베 호수의 숨은 비경을 만끽할 수도 있었는데, 특히 트라카이 성이 있는 베바르데 섬과 그 뒤쪽의 이름 모를 섬들 사이의 좁은 물길은 정말 압권이다. 어쩐 연유인지는 몰라도 이곳은 햇볕도 사라지고  어둠이 지배한다.  

운전자가 있는 전기 보트를 타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뱃머리에 앉아 호숫물에 발을 담그고 아쉬운 대로 호수를 직접 느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넷째 마당:  트라카이 시가지 



냉정히 말해 인구 6,000명을 간신히 헤아리는 작은 도시 트라카이에  트라카이 성과 갈베 호수에 버금갈 만큼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은 없다. 그렇지만 트라카이가 명색이 한 때 리투아니아의 수도였던 만큼 트라카이 시내에도 그냥 눈길 한 번 던져줄 정도의 소소한 볼거리는 많으니, 시간만 허락한다면 선택관광을 하는 느낌으로 트라카이 시가지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1. 트라카이 정교회


버스 터미널에서 트라카이 성을 향해 가다 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그럴싸한 건물이 바로 트라카이 정교회(Trakai Orthodox Church)이다(트라카이 시가지도상의 ①). 트라카이 정교회는 러시아 황제와 사업가들이 기부한 금전을 가지고 1863년에 축조한 것이라고 하는데, 건물의 내외를 가리지 않고 늘상 여기저기 보수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2. 성모 탄생교회 


트라카이 정교회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가장 축복받은 성모 탄생 교회(Church of Nativity of Most Holy Mother of God)'라는 긴 이름을 가진 교회를 만나게 되는데(트라카이 시가지도상의 ②),  이는 리투아니아의 국교인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1409년에 비타우타스의 후원을 받아 고딕 양식으로 건립되었는데, 그 후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모습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놀랍게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곳도 '어김없이' 방문하셨다.

'가장 축복받은 성모 탄생 교회'는 호수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호수 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은 뷰가 된다. 아, '가장 축복받은 성모 탄생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이 교회가 가톨릭 성당인 것을 고려하면 '성모 마리아 성당' 정도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3.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


트라카이 중심을 관통하는 카라이무(Karaimu) 거리 초입에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The Chaple of St. John Nepomuk)'이 있다(트라카이 시가지도상의 ③).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은 그를 못 보고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찾기 쉬운 곳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못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예배당'이라는 이름이 주는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 속 화단 옆의 하얀색 기둥 맨 꼭대기에 네포묵 성자의 동상이 저리도 또렷하게 보이건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한 채 '기둥'에만 포인트를 두어 이를 기념비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 결과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 바로 앞에서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을 찾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성 요한 네포묵(St. John Nepomuk, 1345?~1393)이 누구인지는 유럽 여행깨나 했다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지만, 주의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말해 두면 성 요한 네포묵(체코식 이름으로는 얀 네포묵)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민 성자이다. 프라하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양쪽으로 15개씩 성자들의 동상이 줄지어 서있는 카를 교(橋) 한가운데 청동으로 제작된 동상을 기억할 것이다. 그 주변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사진 한 장 편하게 찍을 수 없던 동상, 그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성 요한 네포묵이다. 


성 요한 네포묵 성자는 고해성사를 통해 왕비의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그 내용을 밝히라는 왕(바츨라프 4세)의 명령을 거부하고 교회법을 지키신 분인데, 교회법에 따르는 네포묵 성자의 행동에 격분한 왕은 네포묵 성자의 혀를 뽑고 죽여서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5개 별의 호위를 받으면서 당신의 시신이 강 위로 떠올랐는데, 이러한 기적을 바탕으로 성자의 반열에 오르시게 되었다.


Tip:  트라카이에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이 들어서게 된 이유 


트라카이에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이 들어서게 된 이유에 관하여는 이렇다 할 설명을 찾지 못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리투아니아 역시 체코와 마찬가지로 한때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해 있었고, 그 결과 체코의 국민 성자인 성 요한 네포묵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편입된 모든 곳에서 성인으로 존경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성 요한 네포묵이 '물의 수호신'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거의 모든 나라의 물가에서 네포묵 성자의 동상이 발견된다. 트라카이가 호수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곳에 네포묵 성자의 예배당이 들어 설 이유는 너무도 충분하다.        



4. 옛 우체국 건물


트라카이 성으로 이어지는 카라이무(Karaimu) 거리의 성 요한 네포묵 예배당 바로 앞에 옛날 러시아제국 시절에 우체국(Russian Imperial Post Office)이었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트라카이 시가지도상의 ④). 그러나 아쉽게도 내부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전부이다.     


5. 카라임(Karaim) 人의 전통가옥


리투아니아의 마지막 황금기를 장식했던 비타우타스 대공시절 리투아니아의 세력범위는 흑해에 까지 이르렀다고 하는데, 흑해는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발칸 반도 동쪽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접하고 있다. 그러니 요즘의 국경선으로 이야기하면 비타우타스 대공시절에 리투아니아의 영향력은 벨라루스를 넘어 우크라이나 남쪽에까지 미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것을 보면 비타우타스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 의해 그토록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을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당시 비타우타스 대공은  크림반도에 살고 있던 수백 명의 타타르(Tatar) 人과  카라임(Karaim) 人을 트라카이로 데려와 살게 했는데, 트라카이에는 이들 카라임 人들의 전통 목조가옥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집들은 도로변에 접한 창문의 개수가 3개라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는데, 이들 3개의 창문은 하나님, 비타우타스, 그리고 주인을 뜻한다고 한다.  


Tip: 카라임(Karaim) 人에 관하여 


카라임 人은 크림 반도에 살던 투르크계 민족인데, 특이하게도 예나 지금이나 유대교를 믿고 있다. 이들이 유대교를 믿게 된 배경이나, 그들이 믿는 유대교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유대교와의 관계 등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Naver 등에 상세히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거나 트라카이에는 이들 카라임 인의 흔적이 여전히 깊게 남어 있는데, 이에 반하여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같은 시기에  함께 넘어온 타타르인들의 흔적은 트라카이에 별로 남아 있지 않는 듯하다.  아, 트라카이를 감싸고 있는 3개의 호수 중에 타타르(Tatar) 호수가 있던데, 혹시 이러한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 이곳에 살았던 타타르인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다만 이것은 내 추측일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 다섯째 마당:  먹거리.



트라카이에 왔다면 트라카이 성과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격조 있는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이곳의 전통 음식을 맛보아야 하는데,  실제로 호숫가의 목 좋은 자리들에는 예외 없이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들어서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 가운데 View가 제일 좋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섰고, 더위와 햇볕에 굴복하여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문인지 내 테이블에 앉아서 찍은 사진은 조금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 

트라카이에 왔다면 맛의 유무를 떠나 먹어보아야만 하는 것이 있는데, 키비나이(Kibinai) 또는 키비나스(Kibinas)라고 불리는 음식이 그것이다. 뭐, 대단히 특별한 것은 아니고 (양)고기 등을 넣은 빵을 기름에 튀긴 것으로, 굳이 우리나라의 음식과 비교하면 만두와 가장 유사하다.  그러나 맛은 솔직히 우리네 만두가 훨씬 낫다. 우리네 만두 속이 고기와 야채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키비나이는 고기 위주로 되어 있어 조금 밋밋하다. 뿐만 아니라 키비나이는 속이 익을 정도로 기름에 튀기다 보니 겉은 한없이 푸석푸석하기만 해서 쫀득쫀득한 우리네 만두피와는 비교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수준이다. 


한편 키비나이는 트라카이 외에는 리투아니아의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트라카이의 토속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던데, 굳이 원류를 찾는다고 하면 키비나이는 카라임(Karaim)人들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이다.   

글을 맺을 때쯤에 키비나이의 맛에 대한 내 평가를 조금 유보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겼는데, 그건 전적으로 키비나이의 원조쯤에 해당하는 맛집을 소개하고 있는 블로그 글 때문이다(아래 사진 속 블로그 주소 참조). 원래 음식이라는 것이 들어가는 재료나 기본적인 조리방법 외에 손맛이 좌우하는 측면이 워낙 강한 것임을 고려하면, 이곳의 키비나이를 맛보지 못한 이상 키비나이에 대해서 내가 무엇이라 말하기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 여섯째 마당: Epilogue



만일에 내 연재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나에게 리투아니아를 찾았을 때 결코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을 딱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곳 트라카이를 추천하겠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던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트라카이를 보지 않고는 리투아니아에 왔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하니 만일에 리투아니아행을 결정했다면 여행 일정을 수립할 때 트라카이를 건너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또한 트라카이를 둘러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면서 구체적 계획을 세워두어야 한다. 즉, 

첫째, 트라카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수상 스포츠가 주는 재미를 만끽하기 위한 준비물(수영복 등등)을 챙겨 둔다.   

셋째,  경제적 여유가 허락한다면 열기구를 타는 것에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를 사전에 확인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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