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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Feb 16. 2024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Chapter 13. 샤울레이(Šiauliai)의 "십자가의 언덕"

# 첫째 마당: 샤울레이, 어떤 곳인가?



리투아니아 북부에 리투아니아어로 Šiauliai(독일어로는 Schaulen)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는데, 관광안내 책자나 각종 사이트에서 이 도시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은 정말 제각각이다. 다만 이글에서는 상대적으로 사용 빈도수가 제일 높은 '샤울레이'라는 이름으로 이 도시를 소개하기로 한다. 샤울레이는  빌뉴스(Vilnius), 카우나스(Kaunas), 클라이페다(Klaipeda) 다음으로 큰 리투아니아의 제4의 도시로서, 현재 주민수는 약 14만 명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연합군이 독일의 검기사단과의 전쟁 끝에  승리를 이끌어냈던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아, 참고로 리투아니아의 제5의 도시는 아래 리투아니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파네베지스(Panevėžys)라는 곳인데, 파네베지스는 워낙 정보가 없는 데다가 여행 일정상의 문제로 찾아가 보지 못해 아쉽게도 이번 연재 글에서 소개하지는 못한다. 


샤울레이가 리투아니아 제4의 도시라고 하지만 도시 자체가 관광객을 잡아 끄는 강한 매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며, 안내 책자에서도 샤울레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리투아니아를 찾은 관광객 치고 샤울레이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건 전적으로 샤울레이 외곽에 있는 '십자가의 언덕(kryžių kalnas, The Hill of Crosses)'이라 불리는 곳 때문이다. 



## 둘째 마당: 샤울레이 시가지



'십자가의 언덕'이 워낙 유명세를 타면서 막상 샤울레이라는 도시 자체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뒷전으로 멀어져 있는데, 나 역시 십자가의 언덕만 보고 샤울레이를 떠나 바로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로 넘어가 버렸다. 다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샤울레이에서 다음의 두 곳은 들러 볼만하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이 자리를 빌려 간단히 그곳을 소개하기로 한다.  


그중 하나는 샤울레이의 상징인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Siauliai Saint Disciple Peter and Paul Cathedral)'인데,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성당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면  샤울레이의 상징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쉽게 이해가 된다.  

사진 출처:  Tripadvisor

유럽의 커다란 성당들은 그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하는데, 그건 샤울레이의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 또한 마찬가지다. 아래 사진은 성당의 입구가 있는 정면에서 바라본 성당의 모습인데, 높은 첨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하나는 샤울레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고 소개되는 곳인데(왼쪽 사진), 솔직히 우리 눈에는 조금 어설프기만 하다. 한편 이 거리에서 샤울레이의 대표적 분수인 펠리칸 분수를 만날 수 있는데(오른쪽 사진), 이 분수는 1978년 만들어졌던 것을 2003년에 새롭게 단장한 것이라고 한다. 

위 두 장의 사진은 아래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인데, 샤울레이의 모습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 셋째 마당: 십자가의 언덕



1. 십자가의 언덕, 어떻게 찾아갈까?


샤울레이를 찾는 사람들의 첫 번째, 아니 어쩌면 유일한 목적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의 언덕(kryžių kalnas, The Hill of Crosses)'이다. 문제는 십자가의 언덕을 찾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인데, 이 문제를 교통수단을 기준으로 나누어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1)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

십자가의 언덕은 정확히 말하면 샤울레이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12km이면 군인들이 정숙 보행으로 이동해도 무려 3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이니, 관광객이 많은 시간을 들여 이곳까지 걸어서 오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샤울레이에서 버스를 이용해 십자가의 언덕을 찾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문제는 배차간격이 근 1시간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돌아올 때에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십자가의 언덕을 찾으려고 한다면 사전에 반드시 버스의 배차시간을 잘 확인해 두어야만 하는데, 참고로 십자가의 언덕에서 샤울레이로 돌아가는 버스 편의 배차시간은 다음과 같다. 

위 사진을 포함하여 샤울레이를 오가는 교통편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2)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

자동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경우라면, 일단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에 신경 써야 할 배차시간 등의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우며, Navi나 지도를 이용하여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리투아니아의 도로를 달리다가 십자가의 언덕으로 접어들면 될 일이다.  

십자가의 언덕이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러시아(내지 소련)의 눈을 피해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십자가의 언덕은 대로 바로 옆,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지는 않다. 따라서 대로를 달리다 '십자가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도로상의 표지판에는 영어 표기 없이 언덕을 의미하는 리투아니아어인 kryžių kalnas라고만 쓰여 있다.   


2. 십자가의 언덕, 어떻게 돌아볼까? 


어렵사리 십자가의 언덕이 있는 언저리에 도달한 경우에도, 막상 십자가의 언덕을 보려면 다시 저 멀리 보이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입장료 명목으로 적은 금액(0.5유로)을 내고, 사진 속의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언덕에 이르는 공식루트이다. 



알려는 주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은 Tip: 십자가의 언덕에 이르는 지름길(?)


자신의 자동차로 십자가의 언덕을 찾는 경우라면 공식적인 입구를 지나쳐 조금 더 차를 몰고 올라오는 방법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면 위 사진 속의 길을 걷지 않고 십자가의 언덕에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주차를 시킨 후 십자가의 언덕에 오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입장료 또한 한 푼 낼 필요가 없다. 심지어 아예 십자가의 언덕 뒤편으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곳에 주차를 하는 것도 가능한데, 문득 잉글랜드의 솔즈베리(Salisbury) 외곽의 스톤헨지(Stone Henge)의 경우도 그러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가톨릭 성지가 되어 버린 십자가의 언덕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것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공식적인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입장료를 떳떳하게 지불하고 접근하기를 바란다. 러시아 및 소련의 박해 속에서 믿음을 지켜낸 리투아니아인들의 성지를 그런 편법을 이용하여 접근한다는 것은 - 종교적 입장을 떠나 - 관광객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공식루트를 통해서 십자가의 언덕에 들어오는 경우 인포메이션 센터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데, 사진이 없어져서 아쉽게도 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다만 아래 사진 속의 상점들 옆에 그들과 거의 90도에 가깝게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단층 건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십자가의 언덕을 찾는 분들 가운데 종교적 열정을 갖고 계신 분들은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이곳에 세워 놓고 갈 자신만의 십자가를 마련해서 갖고 오신다. 물론 이와 달리 이곳에 당도해서야 비로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십자가나 하나 꽂아 놓고 갈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분들도 계신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분들을 위해 각양각종의 십자가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오는 사람들의 주문 편의를 위해서 십자가에 번호를 붙여 놓았다. 


3. 십자가의 언덕


(1) 십자가의 언덕의 생성배경

십자가의 언덕에 언제부터 십자가가 세워지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십자가의 언덕은 러시아 및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지배하던 때 생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 및 소련 점령기 시절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이나 아무런 소식 없이 실종된 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 '십자가의 언덕'이 생성되게 된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했던 곳을 소련은 군대를 동원해 몇 번씩이나 밀어버리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갈아엎으면 엎을수록 오히려 십자가는 늘어만 가더니, 그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십자가의 언덕이 생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십자가의 언덕은 억압 속에도 신앙심을 잃지 않았던 리투아니아인의 종교적 열정을 대변하는 가톨릭의 성지가 되어 버렸다. 


(2) 십자가의 언덕

십자가의 언덕은  말 그대로 야트막한 언덕 하나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십자가가 촘촘히 아니 그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빽빽하게 박혀 있는 언덕인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십자가의 언덕,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이 십자가의 언덕이 시작하는 지점인데, 예수님이 달리신 대형십자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예수님이 달리신 대형  십자가 뒤쪽으로 사람들이 올라가는 계단이 보일 터인데, 저 길을 따라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 말 그대로 "셀 수없이 많은" 십자가들을 만나게 된다. 십자가의 수가 몇 개나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시는 분이 계시던데, 미안하지만 이 질문에는 답하기가 곤란하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십자가가 세워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최소한 400,000개 이상이라는 것이 중론이기는 하다. 

언덕을 다 올라가면, 당연한 얘기지만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에도, 또 다 내려가서도 모양과 크기를 전혀 달리하는 십자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 가운데는 사람 키 보다도 훨씬 더 큰 십자가들도 많이 보이는데, 도대체 저런 십자가들을 어떻게 이곳까지 가져왔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대형 십자가 밑으로 자잘한 십자가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들은 인포메이션 앞의 상점에서 산 것으로 추정된다.  

십자가의 언덕을 돌아 나오는 길이라고 하여 빈 공간이 있지는 않아서, 이곳에도 또 엄청난 수의 십자가가 박혀 있다. 언덕 위의 십자가가 포화상태를 이루면서, 이곳에도 십자가의 수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언덕을 모두 둘러보고 나서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넓은 벌판  한가운데 경당(經堂,  Oratorium)이 보인다. 아, 경당이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으로 봉헌된 집을 일컫는 가톨릭 용어인데, 나는 제5대 조선교구장을 지내신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5명의 신부와 신자가 순교한 당진의 신리성지에서 이러한 경당을 처음 만났었다.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Ⅱ, 1920~2005)는 1978년에 교황에 오르신 지 무려  27년을 교황직을 수행하셨는데, 이 분만큼 세계 각국의 성지나 성당(교회)을 많이 다니신 교황은 없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내 예상대로 이미 1993년에 가톨릭의 성지인 이곳을  다녀가셨는데, 1993년 9월 7일 경당 앞에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교황님은 "십자가의 언덕은 축복의 근원이자 위로의 상징으로 삼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내용의 강론을 행하신 바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경당의 모습. 교황님께서 강론을 하셨던 곳이어서 그런지 보통의 가톨릭 성지에서 만나는 경당에 비해서는 훨씬 제대로 된 격식을 갖추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강론을 행했던 사실에 대한 기록과 사진인데, 경당 오른쪽에 사람들이 서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곳에 붙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경당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스러운 곳이어서 사진촬영이 금지되니, 만일 이 사진이 경당 내부에 있었다면 내가 이런 사진을 갖고 있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제 십자가의 언덕은 물론이고, 그를 돌아 나오는 길에도 더 이상 십자가를 세울 곳은 거의 없다. 문제는 그렇다고 하여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십자가를 십자가의 언덕 어느 곳엔가 세우고 싶은 열망을 접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 그렇다면 십자가의 언덕 주변의 허허벌판 어딘가에 십자가를 박아댈 것 같은데, 역시... 벌써 도로변까지 십자가가 많이 들어서 있다. 

이것으로 십자가의 언덕 순례를 마친다. 돌아 나오는 길가의 가로수가 크고 멋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여기에 리투아니아인들의 한숨이 배어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짠해졌다. 리투아니아인들이 러시아와 소련의 눈을 피해 이런 십자가의 언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곳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대로에서 이 만큼이나 깊이 들어왔어야 했다는 것이 생각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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