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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Feb 12. 2024

독일에서의 버스킹(Busking) 풍경은 이렇습니다.

드레스덴과 바이마르,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 만났던 버스커들입니다

1. 드레스덴의 프라우엔키르헤 앞에서의 그랜드 피아노 연주



독일에서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버스킹(Busking)을 하고 있는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버스킹의 수단이 우리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우리네 버스커(Busker)들이 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가요나 춤사위를 그 수단으로 삼는다면, 독일의 경우 (꼭은 아니지만) 클래식을 주된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바이올린은 물론이고, 플루트나 트럼펫 등과 같은 관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그랜드피아노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아, 아래 사진은 내가 직접 찍은 것이 아니고 후배의 SNS에 올라있는 사진을 갖고 온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드레스덴(Dresden)이란 도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후배는 "어제 예배를 마치고 시내에 나갔다가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을 보았지요. 날씨도 좋고, 음악도 좋고... ^^"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이 사진을 올려놓았었다. 너무도 멋진 풍취에 햇살 비끼는 모습까지도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사진 한 장을 보는 순간 "독일로 내달려 엘베 강 테라스에서 후배 놈과(이크, 목사님이신데) 커피라도 한 잔 나누고 싶다"라는 꿈을 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위 사진 속의 버스커는 프라우엔 키르헤 앞에서 그라운드 피아노를 놓고  아름다운 소리를 뿜어 내고 있는데, 주변 정황을 보면 전문 음악인이 아니라 생계형 음악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멋진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아, 후배 목사님의 글 중에 나오는 프라우엔키르헤는 2차 대전 중에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엄격한 고증을 거쳐 그야말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오랜 시간에 걸쳐 복구를 해서 이제는 과거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았다. 혹시 그 프라우엔키르헤의 모습을 보고 싶은 분이 계실지도 몰라서 한 장의 사진을 더 첨부한다. 교회 앞의 동상은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렸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동상이다.


참고로 프라우엔키르헤(Frauenkirche)는 Frauen(聖母) + Kirche(교회)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프라우엔키르헤를 '프라우엔 교회' 또는 독일어의 의미를 살려 '성모교회'라고 부르고 있다.





2. 바이마르에서 마주친 그랜드 피아노 + 트럼펫


내가 길거리 버스킹에 그랜드 피아노가 등장한 장면과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은 바이마르(Weimar)의 국민극장(National Therter) 앞 광장에서였다. 바이마르의 국민극장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Faust)와 쉴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빌헬름 텔(Wilhelm Tell)이 초연된 곳이다. 또한 리스트, 바그너, 멘델스존 등과 같이 당대에 유명했던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올렸던 곳이다. 그렇다면 이런 국민극장 앞 광장에 음악의 선율이 빠져서는 많이 섭섭하지 않을까?


이런 내 걱정을 잠재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거리의 악사가 그랜드 피아노를 들고 나와 연주를 시작했어, 국민긍장 앞 광장에서 기러의 악사가 직접 뿜어내는 피아노 소리라니... 일순 오랜 여행의 피로가 사라진다. 그런데 말이다. 피아노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데, 이번에는 노익장을 과시라도 하는 듯, 충분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연주자가 트럼펫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피아노와 협연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의 레파토리는 팝과 클래식을 넘나 든다. 너무도 친숙한 곡들을. 이건 주머니를 열 밖에 없는 구조이다.

한동안 음악에 취해 있다가 광장을 떠난다. 오늘의 여정이 그리 녹록지 않아서 말이다. 못내 아쉬워 고개를 돌리니 광장, 연주자, 벤치에 앉아 음악을 즐기는 자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민극장은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1919년에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국민극장은 말 그대로 역사가 숨 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법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언제나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1997년에 이곳 국민극장을 찾았었다. 그런데 아뿔싸. 당시 바이마르가 유럽문화도시로 지정된 때문인지 국민극장은 전면 보수 중이어 완전히 포장된(?) 상태였고, 그 때문에 나는 바이마르를 찾았건만 국민극장의 모습은 전혀 보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그때의 황망함이라니...


그리고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11년에 다시 이곳을 찾았고, 그때야 비로소 바이마르 국민극장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아래 사진과 같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아마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있을까? 그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는데, 글쎄 설렘이나 흥분, 감동 등등의 단어는 당시의 내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자, 문제의 국민극장 사진이다. 두 장의 사진 속의 모습, 특히 날씨가 다른 것이 보일 것이다. 그 이유는 오른쪽의 사진은 그로부터 바이마르 국민극장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던 2011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뒤인 2016년에 다시 바이마르를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이다. 아, 위에서 보여준 사진 속의 버스킹 장면과 마주했던 것 또한 2016년이었음을 밝혀 둔다.

국민극장 앞에는 바이마르를 빛낸 2명의 문호, 바로 괴테와 쉴러가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이 사진은 바이마르를 소개할 때 거의 예외 없이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유명한 사진인데, 괴테와 쉴러만 클로즈업하여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3.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 앞에서의 플루트 연주


유럽여행 중에 자주 만나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돈을 벌어가며 여행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버스킹을 하는 장면이다. 아래 사진 속의 2명의 연주자 또한 그러한 예에 속하는데, 이들이 연주하고 있는 곳은 라이프치히(Leipzig)의 토마스교회(Thomaskirche) 앞 광장이다. 감미로운 플루트 연주에 본인들도 몰두해 있고 나 또한 그에 빠져 들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들의 연주에 돈으로 답례를 하는 것에 생각보다 인색하더라는 것. 그나저나 조금 전까지 연주를 함께 듣던 그 많던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죽을 때까지 칸토르(Kantor)로 재직했던  곳인데,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Thomaskirche)

교회 앞에는 바흐의 동상이 이렇게 세워져 있다.

그리고 교회의 제단 앞에는 바흐가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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