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가레산스이 정원의 백미, 료안지의 "이시니와(石庭)"
# 첫째 마당: 개 관
교토역이나 교토 시내(서부) 어디에서도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금각사(킨카쿠지)까지는 버스로도 40여분을 달려가야 할 만큼 킨카쿠지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아래 지도를 보면 킨카쿠지에서 왼쪽 아래로 2개의 절이 연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료안지(龍安寺)와 닌나지(仁和寺)가 그것인데, 이들은 버스로 5분 남짓이면 도달할 수 있을 만큼 가깝다. 그러니 교토 서부, 특히 킨카쿠지를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시간을 미리 잘 배분해서 이들 2개의 절을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들 2개의 절을 보기 위해 교토, 그것도 서부를 다시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Tip: 교토(京都)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는 고도(古都) 교토는 볼거리가 정말 많은데, 이들 볼거리들이 교토의 동쪽과 서쪽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교토를 제대로 보려면 교토를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각 하루씩은 둘러보아야 어느 정도 교토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일치기로 돌아보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어느 쪽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나 같은 경우 동부와 서부를 각각 하루씩 배정을 해서 아침부터 돌아다녔는데, 양쪽 모두 시간에 쫓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 하루에 두 곳을 다 돌아보는 것을 곤란케 하는 요소 중 하나는 교토 동부의 키요미즈테라(淸水寺)에서 서부로 넘어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글쎄, 내가 직접 키요미즈테라(淸水寺)가 있는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다만, 아마 무조건 1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 둘째 마당: 료안지(龍安寺)
료안지는 원래는 도쿠 다이지(德大寺) 가문의 별장이었다고 하는데, 1450년 호소카와 카츠모토(细川勝元)에 의해 임제종 묘신지파(妙心寺派)의 선종 사찰로 탈바꿈을 한다. 여기가 료안지의 정문(입구)인데, 료안지의 정문은 버스 정류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료안지의 전체 모습은 아래 지도를 보면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는데, 시간과 거리 손실 없이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료안지를 둘러보는 방법은 아래 지도 속의 붉은색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될 것이다.
즉, 료안지의 정문을 들어와서 일단 쿄요치(鏡容池)라는 연못(호수?)을 왼쪽에 두고, 이 절의 주지 스님이 거처하시며 집무를 보던 방장(方丈)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순로(順路)인 것이다.
위 사진 속의 길을 조금만 더 걸으면 쿄요치(아래 사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일본 사람들... 정원을 꾸미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킨카쿠지나 료안지처럼 사찰의 경우에도 정원을 잘 만들어 놓기도 한다. 아, - 이건 전적으로 내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 어쩌면 이들 사찰이 처음에는 힘 있는 쇼군의 별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멋진 연못과 정원이 사찰에 들어서게 되었을 것 같기는 하다. 실제로 다른 사찰의 경우에는 이렇게 커다란 정원, 특히 연못을 갖고 있지는 않다.
교요치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방장이 나오는데, 방장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은 계단이다. 별로 계단의 수가 많지도 않은데, 내가 관문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가 이미 오늘 교토서부에서도 니조성 - 소바집 - 도시샤 대학 - 킨카쿠지를 돌아보며 2만 보 이상을 걸었기 때문이다. - 교토 동부를 둘러보았던 날의 3만 5천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 닌나지를 거쳐 오사카의 숙소로 돌아가는 여정을 생각하면, 오늘도 거의 3만보에 가까운 걸음은 걷게 될 것이 틀림없다. 내가 교토를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각 하루씩을 둘러보아도 부족하기만 할 것이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단을 오르면... 이렇게 방장 입구가 보인다.
입구 왼쪽에 우산을 놓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던데, 이 지역에 비가 자주 와서 그런 건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 사찰의 방장은 거의 예외 없이 목조와 다다미로 되어 있고, 따라서 신발을 벗고 올라서게 되어 있다. 그러니 사찰을 위주로 관광이 진행되는 교토, 특히 서부를 보러 가는 길에는 신고 벗기 편한 슈즈가 필수이다.
아, 방장은 그 입구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겠다만, 막상 방장 안에 들어서면 안은 상당히 넓고 화려하다.
이 언저리에 아래 사진 속의 8폭 병풍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불행히도 그 위치는 자신이 없다.
병풍의 글씨를 나중에 읽어보겠다고 사진은 찍어서 나왔는데, 글씨가 작아 안 보이기도 하지만 내 한문실력으로는 택도 없는 이야기.
드디어 방장(方丈)의 핵심인 주지 스님이 계시던 곳에 다다랐다. 절에 따라서는 방장을 공개하지 않거나, 공개하더라도 사진촬영이 금지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료안지의 경우는 그런 제한이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앞뒤, 좌우를 완전히 열어 놓아서 방장의 구조와 모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 주면... 료안지의 방장의 모습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 사진 속의 방들마다 훌륭한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그림이...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은 아래 사진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건물이 게이쵸(慶長) 11년(1606년)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인 오다 노부카네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이야기며, 카노파(狩野派)의 화원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전해진다는 이야기 등이 적혀 있다 - 이설이 있기는 하단다 -. 아, 제목은 바쇼우즈(파초도, 芭蕉圖)
그런가 하면 이런 그림도 있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 역시 아래의 사진을 참조하면 되는데, 위 사진 속의 그립에 대한 설명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그림의 내용이야 다른데, 군센즈(군선도, 群仙圖)의 일부와 킨키쇼우가즈(금기서화도, 琴棋書畵圖)의 일부라고. 영어로 된 설명도 있다.
일본의 사찰 관람에 있어서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방장이다. 특히 그림/불상 등이 공개되어 있는 경우라면 그런 것들에 사람들의 이목이 온통 쏠리기 마련이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료안지의 경우는 방장을 전면 개방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그림이나 병풍 등에는 그저 눈길 한 번만 던지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는 방장 정원에만 온통 신경을 쏟는다.
그것은 이곳 료안지의 방장 정원이 이른바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의 정수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 가레산스이 정원은 오직 돌과 (하얀) 모래만을 사용하여 꾸며진 정원을 말하는바, 료안지의 "이시니와(石庭)"는 동서 방향으로 25미터, 남북 방향으로 10미터의 크기로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 하얀 모래는 바다를, 돌은 산이나 섬을 의미한다. 이처럼 돌과 모래만을 사용하여 꾸며진 이런 정원을 이시니와(石庭)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이곳의 석정을 보아도 그리 큰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정도로 유명하고 의미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입장권을 들고 인증샷을 남겨야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함께 여행을 한 딸아이의 몫이다. 글쎄, 여기서 딸아이가 인증샷을 남겨 놓지 않았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쓰면서 안내서와 입장권을 사진으로 남겨 둔다.
료안지의 석정에 관하여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앉아서 공부하는 자세로 이시니와(石庭)를 바라본다는 것인데, 아예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2층으로 복도를 만들어 놓았을 정도이다. 이 사람들의 등 뒤쪽으로, 그러니까 아래 사진 속의 오른쪽(물론 사진에는 안 나왔다)이 방장이다.
여기서 도대체 사람들은 방장을 뒤로한 채 저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드는데, 그건 말이다. 료안지의 석정에는 총 15개의 돌이 있는데, 어느 곳에서 바라 보아도 1~2개의 돌은 안 보이게 설계했다는 것과 관련 있다. 그러니까 저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확인해 보겠다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15개의 돌이 빠짐없이 보이는 지점을 한 번 찾아보겠다고 저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친구들의 블로그에 아래 사진 같은 것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답이 있기는 있나 보다. 말할 것도 없이 사진 오른쪽의 붉은 타원 부분이 15개의 돌이 보이는 부분이란 의미겠지?
방장의 뒤쪽인데, 이곳에도 사진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글쎄 굳이 말하자면 방장의 후원(後園)쯤 되겠다. 일본에서 이미 여러 개의 사찰을 보았지만, 료안지의 방장을 보기 전까지는 방장의 구조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구중궁궐 속의 미로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고, 그래서 그냥 방장을 스쳐 지나가곤 했는데, 료안지에서 비로소 방장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쪽에 물을 받는 것인지, 손 등을 씻는 곳인지 그 정체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 얼핏 보면 옛날의 화폐(엽전) 모양을 하고 있는 이것의 4면에 무언가가 쓰여 있다.
아쉽게도 내가 찍은 위의 사진은 이곳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를 잘 보여주지 못한다. 해서 안내서에 있는 사진을 갖고 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글씨가 또렷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한자 같아 보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글자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무엇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 이게 생각보다 재밌는데, 핵심은 가운데의 네모를 한자의 입 구(口) 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입 구자가 들어가야 할 위치도 딱 맞게끔 만들어 놓았는데, 이런 생각을 갖고 바라보면... 결국 엽전 위에 쓰여 있는 글은 오(吾) 유(唯) 지(知) 족(足), 즉 “나는 오직 족함을 알 뿐이다.”가 된다. 아등바등 무엇인가를 더 가지려고 하면 오히려 계속 불만만 쌓여 가는 것, 지금까지 살면서 많이 느껴 보았다. 만족하고 살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데 말이다.
여기까지 봤으면 료안지에서 봐야 될 핵심은 둘러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할 일은 안내지도에 따라 쿄요치(鏡容池)를 한 바퀴 돌면서 연못(호수)과 정원의 경치를 즐기는 것인데, 하여 지금부터는 별다른 이야기도 필요 없다.
이것은 연못(호수) 위에 떠 있는 섬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다리.
이제 오늘의 마지막 여정인 닌나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료안지 입구를 벗어나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인데,
도로변에 이런 것이 서 있다. 들어갈 때는 못 보았던 것인데, "명승 용안사(료안지) 정원"이라고 쓰여 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서 이 지방 특선 사케를 일본 옷을 입혀 팔고 있는 기념품점을 만났다.
오늘은 가는 곳마다 관람시간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없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침 8시에 관광을 시작했는데도, 오후 5시가 넘어가는 시간에야 간신히 료안지까지 보았다. 이제 닌나지를 보면, 아무리 건성건성으로 보아도 얼추 6시가 다 되어야 닌나지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임제종 묘신지파의 선종 사찰인 료안지는 보면서, 아쉽게도 막상 임제종 묘신지파의 총본산인 묘신지(妙心寺)는 지나치게 되고 만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