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료안지(龍安寺) 서쪽에 교토 서부 관광에 나선 이상 놓쳐서는 안 될 절이 또 하나 있다. 진언종(眞言宗) 오무로(御室)파의 총본산인 "닌나지(仁和寺)"라는 절이 바로 그것인데, 닌나지는 료안지에서 버스로 불과 5분 남짓만 가면 되니 료안지와 묶어 함께 둘러볼 것을 적극 권한다. 닌나지는 888년에 우타(宇多) 천황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절의 역사가 1000년을 훌쩍 넘기는 고찰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 걸맞게 경내에 의미 있는 건물들을 수없이 많이 갖고 있는데, 부지 또한 매우 넓어서 뒤에 소개하는 남쪽의 정문인 니오우문(二王門) 이외에도 동문과 서문을 별도로 갖고 있을 정도이다. 때문에 닌나지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 꼭 벚꽃이 만개한 봄이 아니더라도 - 적어도 2시간 정도는 할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닌나지에 왔으면 그 핵심을 이루는 시로쇼인(白書院)과 쿠로쇼인(黑書院), 닌나지의 본당인 콘도우(金堂), 경전을 보관하고 있는 쿄우죠(經藏)는 꼭 보아야 한다. 물론 칸논도우(觀音堂)와 고쥬노토우(五重塔)도 놓치면 많이 섭섭하다. 아, 그리고 닌나지는 '오무로사쿠라(御室桜)'라고 불리는 벚꽃이 유명하니 혹시 벚꽃 철에 이곳을 찾았다면 그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아래 사진은 닌나지의 경내지도인데, 이하에서 닌나지에 관한 이야기, 특히 그 위치를 이야기를 할 때는 이 지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한편 닌나지는 황실과의 인연이 매우 깊은 절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우타 천황은 퇴위 후 닌나지의 주지로 30여 년을 수행에 정진하였으며, 그 후에도 메이지 유신 때까지 닌나지의 주지는 황태자나 황손이 이어받았다. 이 때문에 닌나지는 '오무로고쇼(御室御所)'라고 불리기도 하며, 사적으로도 지정되어 있다(아래 사진 참조). 아, 오무로고쇼는 왕(천황)이 머물렀던 장소를 의미한다. 의미이다. 닌나지는 199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에 이르는데, 그러고 보면 교토 서부의 3개 사찰(킨카쿠지, 료안지, 닌나지)이 모두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 둘째 마당: 닌나지 둘러보기
닌나지의 정문은 아래 사진 속의 니오우몬(二王門)인데, 정문만 놓고 보면 교토 서부의 3개 사찰의 정문 중 단연 최고이다(경내지도 1번). 특히 세월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한 모습이 맘에 들었는데, 번쩍 거리는 색깔로 어설프게 보수를 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 사람들이 그래도 뭘 좀 알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가 핸펀으로 찍은 아래 사진은 단언컨대 니오우몬의 제 모습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역시 아무리 짧은 여행을 가더래도 제대로 된 카메라는 하나 들고 가야 하는 것 같다.
아, 내가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안내책자에는 이 문을 '인왕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던데, 현지에서 받은 안내서에는 이를 니오우몬(이왕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여 이글에서는 일단 이를 니오우몬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니오우문은 교토에서는 보기 드물게 도로에 면하고 있는데, 니오우문의 크기는 사람이나 차들과 비교해 보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니오우몬으로 들어가는 양 옆으로 닌나지를 지키는 동상이 서 있는데,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사천왕상(四天王像)쯤 되겠다. 다만 일본에서는 이러한 동상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내 알지 못한다.
니오우몬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닌나지 고텐(仁和寺 御殿)으로 들어서는 문이 또 하나 나온다. 이곳을 고텐, 즉 우리말로 "어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우타 천황이 퇴위 후 닌나지의 주지로 수행한 이래 황태자나 황손이 닌나지의 주지 자리를 이어받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경내지도를 보면 문안으로 고텐(御殿)의 중심건물들인 신텐(宸殿. 경내지도 5번), 시로쇼인(白書院. 경내지도 4번), 쿠로쇼인(黑書院. 경내지도 7번) 등이 이어지는데 내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내부를 본 것은 아래 사진 속에 보이는 출입구를 통해 들어간 건물 하나뿐이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다른 건물들로 들어가는 별도의 출입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나 말고 다른 관광객들도 전부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물로만 들어갔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본 사이트를 둘러보니 위에 열거한 건물들은 모두 건물들을 잇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하니 아래 사진 속에 보이는 출입구, 즉 오겐칸(大玄關, 대현관)으로 들어서면 그들 건물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아,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를 일본말로는 와타리로카(渡り廊下)라고 부른다. 그리고 닌나지의 대현관 같은 형식의 문은 천황(일왕)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나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료안지(龍安寺)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우산을 놓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대현관 앞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이곳에 사진을 남겨 둔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텐(宸殿), 시로쇼인(白書院, 백서원), 쿠로쇼인(黑書院, 흑서원)은 복도를 통해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 시로쇼인은 (옻) 칠을 하지 않은 노송나무로 꾸민 서원을 말한다고 하는데, 쿠로쇼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해 놓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복도를 원근감을 강조하여 찍으면 이런 느낌.
이렇게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이들 건물 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내 사진기 속에 있는 몇 장의 사진을 가지고 기억의 퍼즐을 맞추어 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확실한 것은 다다미방이 이어지고, 그 방들의 벽(창호?)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미닫이 문 등이 있었다는 것인데... 아, 다다미방에 그려진 이런 그림들을 후스마에(ふすまえ, 襖絵)라고 한다는데, 후스마에는 후스마(맹장지)에 그려진 그림들을 말한다. 여기서 맹장지란 가느다란 나무를 짠 것에 종이 천을 붙이고 4 변에 틀을 붙인 창호를 말한다.
이처럼 후스마에가 계속 이어지는데, 유독 일본 관광객들이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대던 그림이 있었다. 하여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 또한 사진을 남겨 두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이곳이 시로쇼인(白書院)의 내부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건물 안에서 뜬금없이 곳곳에 꽃꽂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닌나지가 꽃꽂이의 한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닌나지가 꽃꽂이의 한 유파를 형성하고 있는 이유는 내 알지 못한다. 다만 황실과 관련된 사람들이 계속하여 주지로 있었으니 의전등이 문제 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꽃꽂이가 행해졌지 않았을까?라고 혼자 추측해 볼 뿐이다.
건물 안에서 바라본 정원(경내지도 6번). 오른쪽으로 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가레산스이'의 느낌이 조금은 나려고 한다.
건물을 나서기 전에 액자 속의 글씨가 맘에 들어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물론 글씨라는 것이 그 의미를 전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지만, 때론 글씨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이 돋보이기도 한다. 아래 사진은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찍은 것으로, 내 한문 실력으로는 간신히 화장계회(華藏界會)라고 읽는 것까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그러하니 원하건대 나에게 저 글의 의미를 가르쳐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인증서
교토 서부를 아침 일찍부터 나름 열심히 돌아다닌다고 돌아다녔는데, 닌나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시간은 오후 5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여 고텐을 찬찬히 둘러볼 시간이 너무도 부족해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고텐을 잘 소개해 놓은 글을 발견했다. 정말 꼼꼼하게 둘러보고 난 후 많은 사진과 상세한 설명을 통해 고텐의 모습을 잘 전해주는데, 관심 있으면 둘러보기를
고텐을 보고 나오면 저절로 시선은 왼쪽 위의 츄몬(中門, 중문. 경내사진 14번)을 바라보게 되는데, 츄몬은 사찰 내의 구조물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핑크 빛을 띠고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36.18m에 이르는 높이를 자랑하는 고쥬노토우(五重塔, 5중탑. 경내지도 18번)가 보인다. 고쥬노토우는 칸에이(寬永) 21년(1644년)에 건립된 것인데, 각층의 폭이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 못 하는 분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통상적으로 '몇 층 석탑'이란 이름을 가진 것들을 보면 - 안정성을 고려한 것인지는 몰라도 - 맨 아래층의 기단이 넓고,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좁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닌나지의 고쥬노토우는 1층이나 5층이나 넓이에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고쥬노토우의 정면 중앙에는 다이니치 뇨라이(大日如來, 대일여래)를 의미하는 현판이 있고, 그 밑으로 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내부엔 본존(本尊)인 다이니치 뇨라이를 비롯한 많은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고.
내가 고쥬노토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원천은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고쥬노토우 안내판을 사진에 담아 두었기 때문이다.
고쥬노토우와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은 칸논도우(觀音堂, 관음당. 경내지도 19번)로, 현재의 건물은 칸에이(寬永) 18년(1641년)에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천수관음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로 후도묘우오우(不動明王, 부동명왕)와 고우잔제묘오우(降三世明王, 강삼세명왕)를 모시고 있다. 다만 내가 찾았던 2019년 1월에는 대대적인 보수작업으로 아예 발걸음을 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지금은 당연히 보수작업을 마치고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사진을 참조하면 된다. 아, 이 건물을 '칸논도'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일본말에서 ㅗ와 ㅜ가 겹치는 경우 'ㅗㅜ'라고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현재는 'ㅗ'를 조금 길게 발음하는 것이 더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닌나지의 공식 설명서에는 이 건물을 칸논도우(Kannondou)로 표시하고 있는데, 막상 이 건물 앞의 설명에는 칸논도(Kannondo)로 되어 있다.
이제 닌나지의 본당인 콘도우(金堂, 금당. 경내지도 15번)를 보러 가야자. 콘도우는 닌나지의 가장 안쪽,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계단을 조금 올라가는 수고를 해주어야만 콘도우에 이를 수 있다. 계단 끝 정면에 보이는 것이 금당이고, 그 오른쪽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은 매표소쯤 되는 곳이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콘도우. 이곳에서 붉은색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쿄우죠(경장, 經藏)인데, 평소에는 콘도우와 교우죠는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특별히 일정한 기간 동안 날짜를 정하여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내가 이곳을 찾은 때가 바로 그때였다. 그런데도 내부를 들여다보지는 않아서 두 건물의 내부 모습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물론 입장료(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입장을 망설이게 할 정도로 고가였던 것은 기억이 난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 날 며칠째 일본의 사찰을 돌아다니다보다 이젠 불상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좀 사라졌기도 해서 그렇다.
콘도우
쿄우죠 쪽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콘도우.
콘도우에 대해서는 아래 사진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콘도우 안내판의 한글 부부만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글씨가 잘 보일 것이고, 이것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할 능력은 내게 없으니 말이다.
아 건물은 불교의 경전을 소장하고 있는 쿄우죠(經藏, 경장)이다.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면서 성경도 제대로 안 읽는 내가 불교의 경전을 소장하고 있는 곳을 기웃거릴 일은 없어서 이 또한 skip했다.
쿄우죠에 대하여 자세한 것 역시 아래 사진을 참조하기를...
콘도우의 왼쪽, 닌나지의 서북쪽 가장 후미진 곳에 고보 대사, 우다 천황 등의 상이 보존되어 있다는 미에도(御影堂, 어영당)가 있다.
여기까지 둘러보고 나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 퇴장을 서둘러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정문인 니오우문과 츄몬(中門), 그리고 칸도우는 일직선상에 있다. 아래 사진은 칸도우에서 내려오다가 츄몬과 니오우문을 한 컷에 담아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