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까지 교토 서부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연재했으니,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교토 동부 이야기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렇게나 열심히 다니며 찍은 사진이 내게는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774 기요미즈데라(淸水寺)를 비롯한 동부의 사찰들, 그리고 교토 시내의 모습과 먹거리... 등을 담은 사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하여 오늘부터는 운좋게 남아 있는 몇 장의 사진을 가지고 교토 동부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를 "교토의 '철학의 길' 위에서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해야겠다.
에이칸도(永観堂)를 지나 히가시야마 문화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긴카쿠지(銀閣寺) - 발음때문에 교토 서부에 있는 킨카쿠지(金閣寺)와 혼동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 로 가는 도중에, '철학의 길(哲学の道)'이란 이름이 붙은 좁은 길이 있다. 일본 말로는 '데쓰가쿠노미치' 정도로 발음되는 것 같다.
인근의 교토 대학 교수이자 철학자였던 니시다 키다로(西田 幾多郎)가 이 길을 따라 산책을 즐겼던 것에 착안하여 '철학의 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2km 정도의 좁은 길을 따라 나 있는 수로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더욱이 길 옆으로 자그마한 카페, 공방 등이 들어서 있어 구경하며, 쉬어가기에 좋다.
이곳에 와 보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철학의 길'이란 이름이 붙은 길과 마주치니 저절로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생각났다. 넥카(Necker)강변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로, 헤겔이나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이 거닐었다고 하는 그 길 말이다. 아, 아래 사진은 사진을 오픈해 놓은 블로그에서 퍼왔다. 30년전에 내가 찍은 사진은 이미 색이 바랠대로 바래서 옮겨 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주변 경치로 치면 넥카강과 그 위에 걸린 칼 테오도르(Karl Theodor) 다리,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철학자의 길이 단연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름만 놓고 보면 철학'자'의 길 보다는 '철학의 길'이 깆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된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I. Kant)가 남긴 말 중에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웬지 '철학의 길'이 이 말과도 훨씬 잘 어울리는 듯하다.
철학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고, 앱으로 장난을 쳐봤다. 역시 맘에 안든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차차 원본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내 핸디에는 이 사진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