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Johann Sebastian Bach, 1685 ~1750)를 보면 그의 일생에 걸쳐 참으로 많은 곳을 거쳐갔는데, 바하가 잠시라도 머물렀던 도시들은 예외없이 도시 어딘가에 "바하기념상(Bach-Denkmal)"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도시에 바하가 살았음을 추억하고 있다. 이는 쾨텐또한 마찬가지인데, 이제 쾨텐에 있는 바하기념상을 만나러 가보려고 한다.
바하기념상은 성 야곱교회(St. Jakobskirche) 됫쪽으로 나있는 슐스트라세(Schulstraße, 슐거리)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아래 사진이 슐스트라세의 모습인데, 이 거리의 끝에 바하기념상이 있다. 아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저 멀리 슐스트라세가 끝나는 지점에 바하기념상이 보일 것이다.
슐스트라세를 조금 더 걸어가면 자그마한 분수(?) 뒤로 하얀색 흉상이 하나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바하기념상이다. 바하기념상이 쾨텐 성이나 시청사 부근에 있지 않고, 이 곳에 서있는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 점이 궁금해서 독일의 여러 사이트를 뒤지고 다녔지만, 독일의 경우에도 명확한 설명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얼마전에 우연히 만난 사이트에서, 그 이유를 추단해 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를 기초로 추측해 보면 바하기념상 뒤쪽에 보이는 집 어딘가에서 바하가 살았던 것같은데, 그 이야기는 아래에서 다시 하도록 하겠다.
바하기념상. 기단 부분에 바하가 1717년에서 1723까지 쾨텐에서 궁정악장(Hofkapellmeister)으로 활약했다고 적혀 있다.
바하기념상 in: 쾨텐
바하가 쾨텐에서 살았던 때가 그의 나이 32세에서 38세까지라서 그런지, 기념상의 모습 또한 아른슈타트(Arnstadt)나 뮐하우젠(Mühlhausen)에서 우리가 만났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허긴 바하가 아른슈타트에서 살았던 것은 그의 나이 18세에서 22세까지였고, 뮐하우젠에서 살았던 것은 22세에서 23세까지였으니...
바하기념상 in: 아른슈타트
바하기념상 in: 뮐하우젠
바하가 출생한 아이제나하(Eisenach)에는 공식적으로 바하의 집(Bachhaus)이 운영되고 있고, 또 그가 숨을 거둔 라이프치히(Leipzig)에는 토마스교회(Thomaskirche) 옆에 바하가 살았던 집이라는 것이 밝혀져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런데 바하가 궁정악장으로 6년을 살았던 쾨텐의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바하가 살았던 곳이라고 분명하게 밝혀진 곳이 없다. 독일 사람들도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겨 이미 19세기 말부터 바하가 살았던 집을 찾아왔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모든 자료와 기록 등에 관해 대대적으로 연구가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다만 그들 조사를 통하여 바하는 쾨텐에서 다음과 같은 두곳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기는 하다. 그 하나는 바하가 1717년부터 1719년까지 살았다고 추정되는 샬라우니쉔 스트라세(Schalaunischen Straße) 44번지이고, 다른 하나는 1710년에 신축된 건물이 들어선 발스트라세(Wallstraße) 25/26번지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샬라우니쉔 스트라세 44번지에는 1968년에 백화점이 들어서버려 옛 건물은 아예 아무런 형체도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반해 발스트라세에 신축되었던 건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 엘리자베스 구호시설(Pflegeheim St. Elisabeth)"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하기념상은 성 엘리자베스 구호시설 앞에 세워져야 마땅하니, 위에서 보여준 바하 기념상 뒤로 보이는 건물이 성 엘리자베스 구호시설이고, 그 건물 어딘가에 바하가 살았다...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는건가? 해서 다시 독일 사이트에 가서 Pflegeheim St. Elisabeth를 검색해 봤더니, 이런 사진이 떠 있다. 그래, 내 추측이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