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483년 11월 10일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스레벤 사람들은 '아이스레벤의 아들' 루터를 기억하며 자랑스러워 해왔다. 그래서 이미 17세기부터 루터의 삶의 흔적을 찾아 다니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루터의 생가(Luthers Geburtshaus)를 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에게 공개해 왔다. 이렇게 보면 루터 생가는 독일어권에서 한 사람을 위한 박물관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비록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루터의 삶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키워왔다. 그래서 예전부터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었던 성교회(城敎會)가 있는 비텐베르크(Wittenberg), 그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시절을 보냈던 아이제나하(Eisenach)와 에어푸르트(Erfurt), 그리고 종교회의 등으로 모습을 나타내었던 보름스(Worms)와 아우그스부르크(Augsburg) 등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번 독일 여행에서 드디어 루터가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삶을 마감한 곳인 아이스레벤(Eisleben)을 찾았는데, 아이스레벤에서 내 첫번째 행선지는 볼 것도 없이 루터가 태어난 루터의 생가였다.
루터의 생가는 이렇게 두개의 길이 만나는 길모퉁이에 있다. 생가 앞으로 루터의 흉상이 보이고,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르면 아치형의 입구가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옅은 노란색 건물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인 "루터아르멘슐레(Lutherarmenschule)"이다. 아, Lutherarmenschule는 Luther + arm(가난한) + schule(학교)의 합성어이다.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교회는 루터가 세례를 받은 성 페트리-파울리교회(St. Petri-Pauli-Kirche)이고.
루터의 생가(Luthers Geburtshaus)
루터 생가에서 본 1830년 작품인데, 거의 지금의 루터 생가 주변 모습과 그대로인 듯하다. 이곳, 200년이란 세월을 비껴갔다.
루터 생가 앞을 지나는 두개의 길이 만나는 곳에 루터 흉상이 세워져 있다.
루터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아치형의 석문이 마치 자그마한 성에라도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입구 오른쪽에 "마틴 루터 생가(Martin Luthers Geburtshaus)라고 적힌 동판이 붙어 있는데, 개관시간이 게시되어 있다.
입구 안으로 들어와서 바깥쪽의 길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루터 생가가 있는데, 1층은 현재 공개를 안하고 있다.
입구 왼쪽으로 보이는 이 건물이 앞에서 이야기했던 '루터아르멘슐레'인데, 문 위쪽에 "루터를 마음 속에 품고 기억하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lll)"라고 쓰여 있다.
Lutherarmenschule
Lutherarmenschule에 대하여는 박물관에 자세한 설명을 해놓고 있는데, 프리드리히 빌헤름 3세가 1817년에 이 학교의 수업과 추후 건물의 확장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해 줄것을 보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819년에 신축을 했는데, 독일 신 고딕양식의 초기 건물로 간주되고 있다.
입구로 들어섰을 때 정면에 박물관이 있는데, 관람 동선은 이 박물관을 둘러 본 다음에 박물관안에서 루터의 생가와 통하는 통로를 통해 루터의 생가를 둘러보게 되어 있다.
박물관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에 자그마한 안내판이 세위져 있는데, 글씨가 작아 사진상으론 내용 파악이 힘들다. 다만,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곳의 전시물을 통해 루터(및 그의 가족)와 아이스레벤간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아 볼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던 것같다.
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치게 되는 공간인데, 입장권과 기념품을 팔기도 하고 관광객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Kasse + Informatoin + Gift Shop의 다기능을 수행하는 곳.
이 공간에 만스펠트(Mansfeld)에 있다 "루터 부모의 집(Luthers Elternhaus)"의 모형이 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하겠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루터가 한 말인 "나는 그곳 출신이다(Von daher bin ich )"가 벽에 크게 쓰여져 있어.
박물관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첫번째 전시실 중앙에는 아이스레벤 시(市)의 전체 모습을 일정 비율로 축소시켜 만든 시가지 모형이 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모형 부분만 따로 사진에 담아 보았다.
주요 건물들은 그 이름을 누르면 이렇게 불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모형 중앙에 초록색 불이 들어온 곳이 루터가 세례를 받은 성 페트리-파울리교회이다.
이 모형을 둘러싸고 아이스레벤과 만스펠트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담긴 전시물들이 그득하다. 그런데 솔직히 관심이 가는 것은 별로 없었다. 허긴 60년을 넘게 살아온 서울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 만난 아이스레벤에 대해 급작스레 관심이 생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여 사진 몇장을 찍는 것에 만족하고 이 공간은 skip했다. 아이스레벤 시 전체에 대한 개괄적 이야기가 있었고,
아이스레벤의 경제에 관한 것,
그리고 교회와 관련된 전시가 뒤를 이었다.
통치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 근처에 시의 성(Stadtschloss)이나 시청사의 유리창에 관한 전시물들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번째 전시실은 루터의 출생 내지 혈통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솔직히 그런 것까지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내가 루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개혁과 관련된 것에 국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공간에도 내가 주의깊게 본 전시물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루터의 가계도(家系圖)이다. 가계도를 가만히 들여보고 있는 동안에 한가지 의문이 샘솟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는 루터를 Luther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가계도를 보면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모든 가족들의 성이 "루더(Luder)"로 되어 있다. 이었다. 하여 궁금함을 못참고 박물관의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답인즉슨 원래 루터 집안의 성은 Luder가 맞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다만 루터처럼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라틴어에 영향을 받아 'd'를 'th'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루터 또한 그런 예에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라는 설명을 남겼고.
이 공간에서 또 하나 재미있던 전시물은 바로 루터 부모님의 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은 이것인데,
위의 것을 토대로 젊은 날의 당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루터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들 알고 있지만, 루터 부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나 또한 그러했는데, 일단 이곳에서 그녀의 이름이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였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박물관에는 루터의 삶의 편린을 추적해볼 수 있는 전시물도 있었는데, 우선 루터의 출생과 침례에 대해 루터 스스로 1520년에 "나는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나 성 페트리-파울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루터는 1512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데, 이때 루터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부모님은 당신들이 마틴 루터박사를 이 세상에 내어놓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이 말이 루터가 박사학위를 받을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줄 몰랐다는이야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루터가 처음에는 법학을 공부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후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일평생 믿음의 길을 걸어간 루터에게 침례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때문에 이 박물관에서는 루터의 침례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과 만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루터는 태어난 바로 다음날인 1483년 11월 11일에 침례를 받았네.
지금부터는 전시실 구분없이 이 박물관에서 내가 조금은 유심히 지켜본 전시물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먼저 이것은 루터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루터아르만슐레가 설립될 수 있도록 많은 지윈을 아끼지 않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초상화이다.
그리고 이것은 루터와 루터의 든든한 동반자였던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 이 두사람의 전신을 그린 그림.
루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백조인데, 어쩌면 백조는 루터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루터의 그림이나 동상 옆에는 으레 그의 발밑에 백조가 있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체코의 종교개혁가 였던 후스(Jan Huss, 1372?~1415)가 화형에 처해질 때 "너희들은 지금 한마리의 거위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내 뒤에 오는 백조는 결코 불태울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물론 이 말에서 거위는 후스를, 백조는 루터를 지칭하는 것이다. 후스의 이름인 Huss가 거위(Goose)를 뜻한다고 한다.
루터는 에어푸르트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배웠고, 그가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날 친구들 앞에서 현악기를 연주했다고도 한다. 박물관에는 이런 설명과 함께 이런 악기가 전시되어 있다.
보다시피 이 악기의 이름은 Zister 또는 Cittern이라고 불리는데, 네이버에 Zister를 치니 발트지터(Waldzither)라는 기사가 뜨네. 아, 그에 따르면 발트치터는 둥근 몸통과 편편한 뒤판, 8~10 개의 금속현으로 되어 있는 발현악기로 유럽 전역에서 연주되던 시턴이 독일 지역에서 토착화되어 생겨난 악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