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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Jun 11. 2024

딸아이 때문에 찾았던 도시 "센다이(仙台)"

Chapter 5. 미야기현 미술관(宮城県 美術館), 그 두 번째 이야기

# 첫째 마당: 들어가며



일본 동북부의 중심을 이루는 곳은 역시 미야기현인데, 센다이는 미야기현의 주도로서 일본 동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센다이가 갖는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미야기현 미술관은 센다이에 있는데, 미야기현 미술관은 20세기 전반의 독일 미술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미야기현 미술관은 클레(Paul Klee, 1879~1940)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가히 일본 최고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클레와 칸딘스키는 1911년 뮌헨에서 만난 이래 예술가집단 청기사(Blaue Reiter)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바우하우스에서 마이스터(Meister)로 함께 일하며 평생을 둘도 없는 지기로 살아갔다. 그런 점에서 미야기현 미술관이 이들 두 사람의 작품을 소장하여 함께  전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래 사진에서 보듯 미야기현 미술관측도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평소에 칸딘스키를 좋아했던 내가 센다이를 찾은 이상 미야기현 미술관을 들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하여 2023년 2월, 눈발을 헤치고 미야기현 미술관으로 달려갔다.

내가 미야기현 미술관을 찾았던 2023년 2월. 이곳 미야기현 미술관에서는 사토츄료(佐藤忠良)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미술관 입장권에도 이 특별전이 강조되어 있었다. 하여 입장권을 들고 인증샷을 남겼다.

미야기현 미술관의 입구.

안으로 들어와서 입구를 바라보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1층 로비에 사토츄료 특별전을 이렇게 크게 알리고 있다.

이 특별전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이야기한 바 있으니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 둘째 마당: 클레와 칸딘스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기현 미술관은 클레와 칸딘스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고, 그들 작품을 바꾸어가며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처럼 클레와 칸딘스키 작품을 위한 별도의 전시실을 갖고 있다.

클레와 칸딘스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여기서는 미야기현 박물관이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겠다: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클레는 스위스 근교에서 태어났지만 19살 되던 화가의 품을 품고, 1898년에 뮌헨으로 간다. 그리고 1911년 칸딘스키를 만나면서 예술가 그룹인 "청기사"를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1912년의 화가 드로네와의 만남, 1914년의 튀니지 여행을 계기로 화면에 선명한 색채를 도입하게 된다. 아,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색 중 하나로는 그림의 성립을 음악적으로 포착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역시 부모님이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것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클레는 미술교육에도 앞장서서 활동하며 1931년부터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는데, 1933년에 나치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고향인 베른으로 돌아간다. 나치... 참 곳곳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그림을 음악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클레는 음악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음악에 심취했던 칸딘스키와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클레와 칸딘스키가 평생 둘도 없는 지기로 살아갔던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칸딘스키에게 있어 음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하여는 내 이미 글을 써놓은 것이 있으니 관심 있으면 아래 사이트를 참조해 보기를...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칸딘스키는 잘 아는 것처럼 모스크바 태생으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30살이 되던 1896년에 화가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 뮌헨으로 가는데, 미술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이 표현상식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검은색 바탕에  불투명한 그림 재료로 채색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러시아의 풍토와 민속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칸딘스키는 (구체적인 것을 그리지 않고) 색과 형태의 울림에 의한 회화를 만들어 내어 추상화의 선구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형이론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기하학적 도형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게 되는데, 뒤에 소개할 판화집 "작은 세계"에 실린 작품들이 그런 경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칸딘스키는 말년에 이르러서도 새로운 조형을 계속 탐구하는데, 생물을 연상시키는 것을 모티브로 한 "활기있는 안정"은 그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

전시되어 있는 클레의 작품이 많았는데, 막상 내 사진첩에는 "중국풍의 그림(1923년작)"이란 제목의 작품 한 장이 남아 있을 뿐이야. 보다시피 화면상에 확실한 형상을 띠고 있는 것은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할아버지가 유일하다.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제목을 생각하면 이 분의 국적은 중국이겠지? 화면 속에 깃발, 산호, 모자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음, 이것들은 할아버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려고 한 듯하다.

중국 풍의 그림.  1923년작.  수채, 유재, 두꺼운 종이에 첩부  

이 작품에 관한 미술관의 설명인데, "할아버지와 이모지(繪文子, Emoji)"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클레의 경우와 달리 칸딘스키의 작품은 사진이 좀 있는데, 먼저 이것은 1922년에 간행된 판화집 "작은 세계"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작은 세계는 모두 12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목판과 동판 그리고 석판이 각 4점씩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앵글을 달리하여 두 장의 사진을 남겼다. 개개 작품을 들여다보면 워낙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정신 사나운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대각선을 구도의 축으로 하여 나름 질서 있는 작은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판화집 작은 세계에 관한 박물관측의 설명에 따르면 작품 제작은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에서 이루어졌는데, 불과 몇 주 만에 제작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작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작품 중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 두 점의 사진을 남겨 놓았는데,

위 작품에 대해서는 아래 사진으로 설명으로 대신한다. 작은 세계 중 여섯 번째 작품이라는 이야기겠지?

이런, 이 작품은 작품 설명을 사진으로 남겨 놓지 않았다.

칸딘스키의 여러 작품 중 다음의 두 개의 작품에 주목했는데, 아래 작품은 그중 하나인 "활기있는 안정"이다. 글쎄, "활기찬 안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나을 듯도 하다.

활기있는 안정.   1937년작.   캔버스에 혼합기법

이 작품에 대해 미술관측이 제시하는 관람 포인트는 우선 화면 맨 아래의 회색 삼각형이다. "이를 잘 꽂으면 균형이 잡혀 안정적일 것이지만, 양쪽 중 어느 하나가 무거우면 기울어지기 마련인데, 과연 네모와 동그라미 중 어느 것이 무거울까?"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무엇을 그렸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작품이다. 허긴 칸딘스키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기는 하지만 말이다. 제목은 작품 설명 참조.

E.R 캠벨을 위한 벽화 No.4의 습작.   1914년작.  두꺼운 종이에 유채

박물관측이 제시하는 관람 포인트는 "3걸음쯤 떨어져 보라"는 것. 그러면 오른쪽 아래에 돛을 단 배 같은 것이 보일 것이고, 그런 식으로 그림 전체를 바라보면 그 무엇인가가 보일 수도 있다고...



### 셋째 마당: 다른 작품들



미야기현 미술관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클레와 칸딘스키의 작품 이외에도 많은 걸작들을 소장ㆍ전시하고 있는데, 이하에서는 그들 작품 가운데 특히 내 마음이 이끌렸던 작품 몇 점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이것은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한 재일한인 미술가 조양규(1928~?)의 1958년작 "맨홀(B)"인데, 조양규는 1950년대 일본 화단에서 재일 한인들이 처한 궁핍한 삶과 민족적 현실을 표현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리얼리즘 작가이다.

Manhole(B).  1958년작.  캔버스에 유채

아, 조양규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이 작품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토고 세이지(東鄕靑兒, 1897~1978)의 "커피를 마시는 여자"이다.

커피를 마시는 여자. 1925년작. 캔버스에 유채

미술관측은 이렇게 작품 감상의 포인트를 짚어 주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여자가 들고 있는 커피잔에도 주목을 하라고 한다. 특히 커피잔 가장자리는 위에서 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손잡이는 옆에서 본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에 주목하라고. 그렇다면 토고 세이지가 큐비즘에 입각한 작품활동을 했다는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이 작품은 토고 세이지가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큐비즘과 미래파 등 전위적인 미술을 접한 후에 그려졌다고 한다.

아, 도쿄 신주쿠에 토고 세이지의 작품 컬렉션을 위주로 운영되는 미술관이 있다고 하는데, "솜포미술관(SOMPO美術館)"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각종 문헌에서 "토고 세이지 기념미술관"이란 것이 보여 검색을 해보았더니 토고 세이지 기념미술관은 안 뜨고 솜포미술관이 뜬다. 그런 것을 보면 양자가 동일한 미술관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쉽게도 둘 간의 정확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솜포미술관에 관하여는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밤눈(夜の雪)"이란 제목의 이 작품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사이토 초조(齊藤 長三, 1910~1994)라는 화가의 작품이다.

밤눈(夜の雪).  1939년작.  캔버스에 유채

사이토 초조는 야마가타현 사카타시에서 태어나 도쿄 고등공예학교 도안과(현 치바대학 공학부)에서 유화를 배웠으며, 재학 중에 독립 미술 협회 제1회전에서 입선한다. 그리고 제5회 독립전에서는 D상을 수상하고, 이후 동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는 이 작품 "밤눈"에서 보듯 특히 풍경화 장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작품활동과 동시에 무사시노(武藏野) 미술대학 교수, 일본 대학 강사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아, 사이토 초조는 199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족들이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는 유화 72점을 사카타시에 기증했고, 1997년에 사카타시로부터 특별 공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끝으로 이 작품은 마츠모토 준스케(松本 竣介, 1912~1948)라는 화가의 "교외(郊外)"라는 작품인데, 1937년작이니 그의 나이 불과 25세 때 그린 것이다.

교외(郊外).  1937년작. 캔버스에 유채

마츠모토 준스케라는 화가... 이와테(岩手)현 출신으로 중학교 재학 중에 유행성 뇌척수막염에 걸려 청각을 잃었음에도 17세 되던 해에 화가에의 꿈을 품고 도쿄로 올라가 그림 공부에 전념해서 화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지만, 안타깝게도 3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작품은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작품의 제목이 너무 어려워서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인데,  오노 코이치(小野皓一, 1946~)란 화가의 "멜란꼬리아(Melancholia) § I을 돌다. 隨想: 뒤러(Dürer)의 콤파스에 의한 세계의 분절화(分節化)"란 작품이다. 다시 써 보아도 이해 안 되는 제목...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있기는 한데, 읽어 볼수록 더 이해 안 되는 이야기로 가득해서 생략하는 것으로..

이것으로 미야기현 미술관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끝내도록 한다께. 아, 미야기현 미술관에 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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