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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May 21. 2024

딸아이 때문에 찾았던 도시 "센다이(仙台)"

Chapter 4. 미야기현미술관(宮城県美術館), 그  첫 번째 이야기

# 첫째 마당: 들어가며



미야기현(宮城県)의 현청 소재지인 센다이(仙台)에 있는 미야기현 미술관(宮城県 美術館)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966~1944)와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평소부터 두 화가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센다이에 머무는 동안 제일 먼저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내가 이곳 미야기현 미술관을 찾았던 2023년 2월에, 마침 이곳에서는 로댕의 영향을 받아 전후일본 조각을 견인한 조각가로 평가받고 있는 사토츄료(佐藤忠良, 1912~2011)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걸작 탄생・사토츄료(傑作誕生・ 佐藤忠良)"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야기현 미술관 입장권에도 이 특별전을 알리는 글이 가득했는데, 일단 인증샷을 한 장 남겼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더니, 예상대로 한쪽 벽에 이렇게 커다란 구조물을 만들어서 특별전을 알리고 있었다.



## 둘째 마당: 걸작 탄생・사토츄료(傑作誕生・ 佐藤忠良)"전



"걸작탄생・사토츄료"전은 사토 탄생 110주년을 계기로 그의 대표작을 통해 사토츄료 작품의 매력과 표현의 비밀을 파고 들려 시도한 전시회인데, 전시감수자인 미카미 미쓰라 미야기현 미술관 전 부관장이 사토의 「걸작」으로 선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3개의 작품인데, 이하에서 이들 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 다 음 -

(1)  두상(頭像)인「군마의 사람(群馬の人) 」(1952년)

(2) 그림책 원화인「커다란 무(おおきなかぶ)」(1962년)

(3) 「모자・여름(帽子・夏)」(1972년)


1.  군마의 사람


먼저 이것은 1952년, 사토츄료가 40세 되던 해에 발표한 "군마의 사람(群馬の人)"이다. 군마의 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홑꺼풀의 눈을 갖고 있고, 입을 일자로 굳게 닫고 있다. 솔직히 이런 작품 속 모습의 얼굴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검소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씩씩함이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부터 "일본인의 손으로 처음으로 일본인의 얼굴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같은 해 개관한 국립근대미술관(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조각장품번호 1번으로 소장됐다. 당시 미술평론가 혼마 마사요시는 이 작품을  "일본 조각사상의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라고 평했는데, 그 후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면 이 문구가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사토츄료가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은 그가 군마 현 사람들과 많은 만남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 작품은 실제로 군마 출신의 시인 오카모토 타카시를 모델로 하여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토의 대표작, 나아가 일본 조각사에 있어서의 중요작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군마의 사람"... 이런 작품이다.

군마의 사람(群馬の人)

1952년작

29.5 ×19 ×24cm

브론즈


한편 미야기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버튼(ボタン)도 같은 계열의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버튼(ボタン)

1967-1969년작

브론즈


2. 커다란 무(おおきなかぶ)


사토츄료는 전후 일본 조각계를 이끌었던 '조각가'이지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회화 작품들도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에는 적확한 묘사력과 장면 전개로 1962년에 간행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 그림책인「커다란 무」의 원화들도 있어. 커다란 무는 일본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게재될 정도로 유명한 그림책이라고 하는데, 아래 그림은 그 책 26-27쪽에 실려 있다.

おおきなかぶ 납본원화

1962년작

수채・잉크・콘테・연필


한편 그의 그림책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말하자면 1963년에 간행된 "ゆきむすめ(雪娘)"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책 18-19쪽에서 이런 원화를 찾아볼 수 있다. 아, ゆきむすめ는 눈의 정령이 흰 모습으로 둔갑했다는 전설 속의 여인을

ゆきむすめ 납본 원화

1963년작

수채・콘테・연필


3. 모자・여름(帽子・夏)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토츄료는 로댕을 대표로 하는 프랑스 근대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서서히 이탈리아의 근대 조각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자유로운 조형」을 의식한 작품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는 모자·여름은 그러한 작품의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젊은 여성이 몸에 착용한 의복 등과 모자를 활력 있는 포즈에 담은 모자·여름은 전후 구상(具象) 조각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모자·여름의 경우 몸은 약간 앞으로 구부리고 있지만, 이에 반해 발끝은 가볍게 세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 사토츄료는 작품의 발상을 당시 조수를 맡고 있던 사사도 치즈코(笹戸千津子)씨의 찌그러진 모자로부터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모자·여름은 "심메트리(좌우 대칭)를 의식하면서, 앞으로 기울어지는 몸, 처진 양 어깨, 발뒤꿈치를 든 발끝, 열린 양 무릎등이 긴장감을 가지면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인데, 이 작품을 통해 사토츄료가 드디어 독자적인 구상 표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행해지고 있다.

모자 · 여름(帽子・夏)

1972년작

105 × 59 × 42.5cm

브론즈



### 셋째 마당: 사토츄료에 대해서



말이 나온 김에 사토츄료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서술해 보기로 한다. 사토추료는 미야기현 오치아이무라(현재의 미야기현 야마토쵸)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홋카이도에서 보냈는데, 삿포로 제2중학교(현재의 삿포로 니시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미술학교(현재의 도쿄예술대학) 조각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나코시 야스타케(舟越保武) 등과 함께 신제작파 협회(현재의 신제작협회) 조각부 창설에 참여했고, 그 이후 이 협회를 무대로 작품 발표를 이어갔다. 1981년에는 프랑스 국립 로댕 미술관의 초청으로 동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전후 일본의 구상 조각계를 대표하는 조각가로 활약하며 전후 일본 조각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죽음은 도쿄도 스기나미구의 아틀리에 부지 내의 자기 방에서 98세로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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