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족보 그 뿌리를 찾아~

by 김용석

명절 고단한 노동을 마친 에일리와 사투리 얘기를 하다, 강원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비슷한 게 많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제사 음식 중 하나인 '꼬지'가 '꼬치'의 경상도/강원도 방언이란 얘기에서 출발했죠. '왜 그럴까?' 묻는 에일리에게 얘기했습니다.


나 : 먹고 살 게 없었던 경상도에서 근대사(해방 전후, 6.25 전후)에 강원도로 많이 넘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에일리 : 경상도 잘 살았잖아?

나 : 소수 지주들만 잘 살았고. 나머지는 소작이나, 화전민이 많았지. 우리 집도 할아버지까지는 경상북도 춘양 골짜기 화전민이었잖아.

에일리 :그랬구나.


나 : 아버지는 맨날 우리가 양반에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라고 하셨지만, 난 안 믿었지! 무슨 양반이 전라도 광주에서 임진왜란 직후에 경상도로 오나? 백퍼 족보를 산 것이지!


이 얘기를 하다, 갑자기 머리를 빵! 때리는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에일리와 저의 상견례 자리였습니다. 경상도 집안에 시집가는 전라도 출신 딸이 고생할까 장모님이 향후 시아버지가 될 제 아버지께 하신 말씀이었죠.


장모님 : 사실 우리도 경상도에 살았습니다.

아버님 : 언제요?

장모님 : 경상도에 계속 살다가 임진왜란 때 피란 가서 전라도에 살았습니다.


이 말씀 이후 아버님은 완전 뒤집어지셔서 웃음을 참다가 결국 화장실로 가셔서 엄청 웃다 오셨습니다. 저는 그냥 딸을 멀리 보내는 장모님의 깊은 사랑과 우려 그런 생각만 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머리를 빵! 팡! 때리며 진실을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또 당시에는 에일리에게 콩깍지가 씌어서 에일리가 양반이든 아니든 다 받아들일 각오도 하고 있었으니~ㅎㅎ)


저희 집안은 전라도 광주에서 족보를 사서 임란 직후 경상북도 봉화로 튀었고, 에일리 집안은 경상북도 경주에 살다 족보를 사서 전라도로 튄 것이지요! 임란 직후 민족 대이동(민족대이동이라 쓰고 족보 대이동으로 읽습니다.ㅎㅎ)을 보면 족보를 사서 멀리 떠나는 집안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족보를 산 사람이 감히 바로 한양으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분석은 과학에 가깝습니다.


족보를 산 시기가 조금 달랐다면 어쩌면 에일리의 조상과 제 조상이(족보를 사서 온, 족보를 사러 갈) 한 마을에 사셨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서로 깊은 상의를 하셨을 수도... ㅎㅎ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혀 준 에일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왜냐고요?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나 : 나는 100% 족보 산 게 맞고, 그래도 자기네 집은 양반일 거야. 무죄 추정 원칙처럼 밝혀지지 않으면 족보를 인정해야지.


에일리 : 기억 안 나? 우리 상견례 때 엄마가 하신 말씀? 원래 경상도에 살다가 임진왜란 때 전라도로 왔다고. 나 경주 최 씨야!


ㅎㅎ


전라도 광산 김 씨 족보를 산 저와

경상도 경주 최 씨 족보를 산 에일리는


한양에서 만났습니다! 부라보~~ 드디어 우리 둘은 조상의 평생 꿈이었던 'in 한양'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지금 일산에 살고 있으니 'in 경기'로 급 정정합니다. 하지만 일산은 거의 한양 끕이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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