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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두 마음

관계 속에서 발견한 두 개의 감정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박완서 에세이,<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수녀원의 언덕방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6년이 된다. 내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1988년 가을이었으니까. 나는 그때 나만

당하는 고통이 억울해서도 미칠 것 같았지만 남들이 나를 동정하고

잘해주려고 애쓰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다. 남들은 물론 자식들까지

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신경 쓰며 위해만 주는 게 내가 마치

고약한 부스럼 딱지라도 된 것처럼 비참했다. 그렇다고 안 위해주고

평상시처럼 대해주었더라도 야속했을 것이다. 요컨대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가 자신의 아픔 속에서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렸다’



고통 속에서 드러나는 나의 두 마음,

3년 전,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내 몸에 찾아든 불청객으로 인해, 강한척은 했지만 마음은 속에서는 불안함과 나약한 두 마음이 교차된다. 암환자가 된다는 것은 몸의 병 뿐만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내 아이들은 불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고,내가 나약해지면 안돼라는 마음으로 나는 담담함을 가장 했지만 마음속에는 두 개의 감정이 교차했다.하나는 ‘왜 하필 나이인가’라는 억울함,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이 더 크기에 나를 일으켜 세웠다.


병을 앓아보니 내 주변이 달라 보였다. 언제나 나를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가깝다 생각했던 친척 과 친구들 중 일부는 형식적인 말들과 행동에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그것은 내 안의 두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 뿐이 아닌 무언가 진심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의 무뚝뚝함에 분노하기도 하고 딸의 작은 배려에도 미안했다 섭섭했다는 내 안에서 마음의 변덕을 일으켰다.


나는 누구에게 기대거나 바라기보다,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그렇게 살아왔다. 몸이 아플때는 지나친 관심도 무관심도 예민하게 느껴진다. 기대했던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없으면 서운했다. 그러다 연락이 오면 그 말투 하나에 상처받고, 내 안의 감정이 들쑥날쑥 요동쳤다. 박완서 작가가 말했듯,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서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픔을 성장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이상 사람들에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를 억지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많이 깨닫게 된다.


이런 생각이 나를 냉정하게 만든 걸까?

아니, 나는 단단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나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나를 더 소중히 여기고, 나에게 더 집중하는 법을.


고통 속에서 발견한 내 안의 두 마음.

그 둘이 한때는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내 삶은 이전과는 다르다. 그리고 나는, 관계에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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