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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었다.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자신의 아픔은 자신에게 있어서 절대 값이다.

구명모 소설 <위저드베이커리>.


나는 매일 "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을 따라 필사를 하고 있다.

매일 느낌으로 그날의 생각들을, 때로는 의미 없이 한 단어에 꽂히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따라 유독 아픔, 상처, 치유에 대한 문장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런 감정들에 이끌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내 아픔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사연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를 공유하고, 공감하며, 위로받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치유된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나고 자란 순박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모두가 현모양처를 꿈꾸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맏며느리가 되어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온 친구들도 많다. 맏며느가 아니어도 자의 반 타의 반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온 마음이 약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각자의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나름의 애환들은 다 있다.

이제 우리도 60을 넘겨 시어머니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어떤 모습의 시어머니가 되어갈까?


과거를 거슬러가면 너무 힘들어 숨이 막힐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며 위안을 받았었. 그런데 듣다 보면 친구의 시집살이 보따리는 내 것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공감이었다.

"내 아픔이 더 크다" "네가 더 힘들었겠다" 끼어들 필요가 없다.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모처럼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어디에도 말 못 하고 속 앓이 하던 사연들이 쏟아져 나온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이 빨래터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며 하소연을 나누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 아픔이 커, 내 고통이 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래 나는 조금 양호한 거 같기도 하다고...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가끔 시부모를 모시지 않은 친구들이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어?" 하고 조언을 하게 되면 "네가 뭘 알아?" 하는 싸늘한 시선이 분위기를 싸 하게 만든다.

그런 순간들은 우리가 서로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지나고 보니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공감을 했어야 했다.


나도 며느리가 처음이었고, 시부모님도 시어머니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줄 몰랐다. 나와 다른 정서 때문에 견딜 수 없기에 내 안의 나는 나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밀어내고 있었다. 딸처럼 살가운 며느리를 기대했던 시어머니였지만 마음으로 늘

결국 늘 평행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부모님 세대가 모두 떠나고, 우리가 시어머니가 될 차례가 되었다.우리는 과거의 굴레를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시어머니가 될 것인가?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답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함께 웃고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우리가 더 나은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 이제는 공감의 방식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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