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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온도가 있다

기억 속에 오래 머무는 말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결정장애라는 말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무심코 ‘결정장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익숙한 표현이라서. 하지만 말이 가진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내 말투에는 여전히 그곳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옛날 시골 아줌마들이 쓰던 표현들이 습관처럼 튀어나오고, 말솜씨도 세련되지 않다. 화려한 표현은커녕, 가끔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 말투가 조금은 무뚝뚝하고 차갑게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런치뷔페를 운영하던 시절, 자주 오던 단골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단정한 차림으로 밝게 인사하며 들어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을 참 예쁘게 했다. "사장님, 어쩜 그리 피부가 좋으세요?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세요."

"오늘도 정성 가득한 음식,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항상 좋은 음식 준비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희는 여기 오면 참 행복해져요."

그들의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오시면 우리 가게가 더 환해져요." 바쁜 하루 속에서도 그 짧은 대화가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깨달아 갔다. 말의 온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그런데 정작 나는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손님들과 타인에게는 친절한 말을 건네려 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무뚝뚝하게 말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투박하게 말한 순간들을 떠올리면 반성을 하게 된다.


장사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좋은 점은 배우고, 좋지 않은 점은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배우고 깨닫게 된다. 때로는 까칠한 손님도 있었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예민하게 구는 사람도 있고, 별일 아닌 일로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그런 손님들을 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도 결국은 말 한마디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가게를 연 초창기,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가격을 비싸지 않게 책정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 드신 손님 한 분이 말했다. "반찬이 너무 비싸요."아마도 그 말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 같다.'이 걸 비싸다고 하면 안 되죠. 다른데 한번 가보세요.' 아마도 퉁명스럽게 답을 했던 거 같다, 겉으로는 화를 낼 수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러자 그 손님이 놀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손님을 야단치면 어떡해요?"나도 순간 놀랐다. 그리고 재빨리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그 후로 그 손님께 더 잘해드리고, 더 친절하게 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분은 내 가게의 12년 단골이 되었다. 말은 이렇게 사람을 바꾼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은 큰돈이 드는 일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수도 있다. 그때 그 부부 손님이 가게 문을 나설 때까지 환하게 웃으며 주고받았던 짧은 대화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분들의 예쁜 모습, 고운 말씀, 환한 미소, 그분들은 어디를 가든 누군가에게 또 따뜻한 기운을 남겨 주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말을 건네며 살아왔을까?

내 말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은 없을까?

말 한마디가 하루를 밝게 만들고, 때로는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어떤 말을 건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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