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밥을 짓다
오늘의 필사
마르셀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는 마들렌 한 조각이 부드럽게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에 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몸속에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기 은 마치 사랑의 작용과
같이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고, 삶의 무상함에 무심하게
만들었으며,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작용은 내
몸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
초래하고 우연적이며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 내 삶도 한 조각의 마들렌 같다. 어느 날 문득, 작은 조각 하나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듯, 잊고 있던 기억이 퍼져나간다.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과 홍차 한 모금으로 과거의 감각을 불러오듯, 내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아침에 창밖을 보니 봄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새싹이 돋아나고 나뭇가지마다 작은 생명이 움트는 이 시절에, 느닷없이 내려앉은 눈. 겨울이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봄과 겨울이 뒤섞인 풍경이었다.
나의 어릴 적을 떠올려본다. 식구들이 일터로 나가면, 나는 집안일보다 요리가 더 좋았다. 가정 시간에 배운 대로 감자와 야채를 썰고, 기름에 살짝 볶아 쌀과 함께 솥에 넣었다. 뒤꼍 화덕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있으면, 야채와 쌀이 어우러져 풍기는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들에 나갔다 온 식구들이 돌아오면, 나는 갓 지은 밥을 퍼서 양념장과 함께 내놓았다. 모두가 그 밥을 한술 가득 떠 비벼 먹으며 “참 맛있다”라고 했던 그 순간, 나는 정말 행복했다.
처음 반찬 가게를 열었을 때도 그때의 감각이 떠올랐다. “사장님”이라는 말이 낯설고,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버거웠지만,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들의 미소를 보면 모든 걱정이 녹아내렸다. 어쩌면 인생도 지금 창밖 풍경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봄이 왔다고 해서 겨울이 곧장 사라지는 게 아니듯, 나 역시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결국 새싹은 돋고, 따뜻한 계절은 찾아오듯,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내 손이 들고 있는 것은 펜이다. 기억의 작은 조각이 홍차 속 마들렌처럼 스며들어 글이 된다. 어쩌면 내 글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마들렌 한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오래전 사라진 줄 알았던 감각과 기억을 불러오고,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만나게 해 줄지도.
오늘따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던 아침. 하지만 문득 떠오른 밥 짓던 순간, 그리고 창밖의 봄눈 덕분에 나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겨울이 끝나도 눈은 내릴 수 있고, 글이 막혀도 기억은 흐른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작은 조각 하나를 찾아, 다시 한 글자씩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