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

내 이름은 은빛지원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이백 시, 「장진주」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바삐 바다로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높다란 마루에서 거울을 보고 백발에 슬퍼하는 것을

아침에는 푸른 실과 같던 머리가 저녁에 눈처럼 변한 것을


내 머리는 은발이다.

그래서 나는 ‘은빛지원’이라는 닉네임을 정했다. 예전에는 흰머리가 보일까 애써 염색을 하곤 했다.

젊어 보이기 위해, 나이 들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감추지 않는다. 나는 내 머리카락에 스며든 세월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고, 내가 지나온 증거니까. 어릴 땐 어른이 되고 싶었다. 빨리 자라서 자유롭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길 바랐다.


그러다 진짜 어른이 되고 나니,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자유는 그만큼의 책임을 요구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고, 고단한 하루하루가 속히 끝나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렇게 세월을 흘려보내다 보니, 어느새 내 삶도 훌쩍 지나가 있었다. 머뭇거리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비로소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깨달음을 통해,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걸.


나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잠에서 깨어난다. 벌써 3년이 넘게 그렇게 살아왔다. 흘러가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미라클 모닝’은 이제 내 일상이자, 나를 회복시키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조금 더 자볼까 했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스스로 작동하는 알람처럼 자연스럽게 눈을 떴고, 익숙한 아침 루틴을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했던 기도는 요즘엔 모닝페이지로 순서를 바꿨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은 시간』 줄리아 캐머런 작가 덕분이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또 하나의 실행을 하게 만든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써 내려가는 세 장의 글엔 내 안의 진짜 목소리가 솔직하게 담긴다. 글씨는 필사와는 달리 엉망이고, 그냥 맥락 없이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던진다. 하지만 그 글이 바로 지금의 나를 보여준다. 그리고 정신이 또렷해질 즈음,

필사를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오늘이 벌써 80일째다. 백 일을 채우고 나면, 또 다른 테마로 넘어가 볼까 생각 중이다.

오늘 새벽 다섯 시, 나는 모닝 노트에 작은 꿈을 적었다. 소박한 바람, 소소한 행복들.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내게는 그것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준다.

아침 루틴을 하고 글 쓰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이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고 있으니까

흘러가는 세월을 안아주고, 은빛 머리카락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살아가는 지금,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그리고 나를 듣는 시간 이것이야 말로 어른의 행복인 듯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 나에게 정직해지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