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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히 나를 이해하는 시간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신영복 에세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불행은 대개 행복보다 오래 계속된다는 점에서 고통스러울 부분이다.

행복도 불행만큼 오래 계속된다면 그것 역시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오늘 아침, 이 문장을 필사하며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왜 우리는 불행에는 민감하고, 행복에는 쉽게 익숙해져 버리는 걸까.

문득, 내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그리고 떠오른 건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었다.

어릴 적 행복은 단순했다.

새 자전거 한 대, 좋아하던 반찬을 만들어 보는 일, 방과 후 친구들과 뛰놀던 시간.

그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행복이었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전거를 배웠다.

우리 시골 마을엔 버스가 다니지 않았기에 십 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해야 했다. 그때의 친구들은 거의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야 했다. 체인이 이탈하고, 자주 자전거가 멈췄다. 체인을 고정하고 나면 시커먼 기름이 손에 묻었다.등굣길에 그런 일이 종종 벌어졌다.

그러다 나는 누에고치가 팔려 목돈이 생긴 날, 마침내 새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 모든 순간이 기뻤다. 그건 분명 아이의 행복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길을 자동차로 달리며 종종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차 안에서 혼잣말을 자주 한다. 그때의 풍경, 진땀 흘려가며 자전거 체인을 고치던 일, 언덕을 힘들게 올라가고 나면 그다음엔 쌩쌩 달릴 수 있는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그때의 신나는 스릴, 기름 묻은 손까지 모두 되살아난다.

혼자 드라이브하며 독백을 하고, 추억을 소환하다 보면 어른의 행복은 기억을 되새기며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땐 그랬었다. 그렇게 혼자 떠들던 독백들은 메모장에 기록으로 남는다. 나의 글감이 생겨난다. 무언가를 가지는 기쁨이 아니라, 삶을 곱씹고 내 안의 나와 조용히 마주 앉을 수 있는 여유. 나에겐 그게 행복인 것이다. 아이들이 웃는 모습에서, 화초가 잘 자라는 모습에서, 햇살 드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스스로에게 “잘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순간에서 나는 어른의 행복을 느낀다.

어른의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이해다. 삶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그 과정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지금,

어른의 행복은 조용히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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