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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도 희망도 , 책 속에 있었다

문장을 따라 나를 만나는 시간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크리스티앙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 필사와 함께>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람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려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오늘도 나는 필사를 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정리되지 않은 하루를 시작하며 나는 책 앞에 앉는다.

이번 달 독서 모임에서는 『아티스트 웨이』와 『데미안』을 함께 읽고 있다.

지난주까지는 『아티스트 웨이』를 읽었고, 지금은 『데미안』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중이다.

『데미안』은 여러 번 오디오북으로 들은 뒤 책을 펼쳤다. 고전은 늘 어렵지만, “책을 읽을 때, 주인공이 되어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라는 북코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직접 데미안이 되어보고,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을 겪는 싱클레어가 되어, 다시 데미안을 만나보기로 했다.


요즘 나는 책을 몇 권씩 쌓아두고 정신없이 이 책 저 책을 펼쳐보는 중이다.

마치 지금의 내 마음처럼, 정리가 되지 않고 뒤죽박죽이다. 이번 주에 직원 한 명이 그만두었다. 한 사람의 몫을 더 감당하다 보니 내 일이 너무 많아졌고, 이제는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예전처럼 일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방향을 정해야 한다.


오늘 필사한 보뱅의 문장은 조용한 방 안에서 들려오는 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닿았다. 조바심과 희망, 위로하지 않으면서도 황홀하게 감싸는 그 문장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 어떤 상황이 오든, 결국은 잘 헤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늘 그래 왔듯이 말이다. 삶이 아무 문제 없이 매끄럽게만 돌아간다면 오히려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 덕분에 단단해지고, 그로 인해 책 한 권, 문장 하나가 그 무엇보다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늘 나의 심란함조차도, 언젠가 지나고 나면 한 페이지의 문장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매일 새벽일어나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쓴다.

조바심도, 희망도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다행히도 책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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