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별장에서 야밤에 추억여행
가평 친구네 숲속 별장이다. 가을밤,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와 친구들의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고요한 숲속 별장에 퍼진다.
왜 이리 잠이 안 오는 걸까? 잠자는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문득, 아차! 낮에 마신 커피 때문이란 걸 깨닫는다.
예전엔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잠자는 데 문제없었는데, 이젠 커피 유혹을 못 이긴 벌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가평 오는 길, 종종 들르는 제빵소에서 서울 친구와 합류했다. 신갈과 수원 친구를 모시고 도착하자마자, 어찌 커피 유혹을 이기랴. 건강상 자제하던 커피를 홀짝이고 말았다.
친구들과 만나면 들뜬 마음에 기억의 회로가 풀린다. "오늘 커피 너무 맛있다!"를 외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마셨다.
평소 같으면 곯아떨어져야 할 시점. 하지만 지금, 친구들의 코 고는 소리와 가끔씩 들리는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저건 구리댁인가...?"
잠 못 드는 이유를 커피 탓으로 돌리며, 뿌연 안개 낀 듯한 눈을 달래려 앨범 속 영상들을 꺼내 보기로 한다.
나의 3학년 2반 사진이다. 삐쩍 마른 긴 얼굴. ^^
신갈 친구가 고등학교 앨범을 싸가지고 왔다. 몇십 년 만에 펼쳐보는 앨범을 보며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 앨범 속 선생님들 사진을 보며, "이렇게 젊으셨구나..." 감탄하고, 수학 선생님, 국사 선생님 연애사 이야기로 한바탕 수다를 떤다.
그 시절 못생김을 자랑하듯 지금 얼굴이 훨씬 낫다고 서로 디스하고 도마에 올려 두들겨도, 우리는 깔깔 웃는다.
우리 6명의 친구들. 그중 5명은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자라고 초중고를 함께한 친구들이다. 나는 중학교 때 이 친구들을 만나 어느새 그 동네 일원이 되었다.
행운이었다. 내가 이 좋은 친구들 틈에 있다는 건,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60이 넘고 나니, 나를 비롯해 아픈 친구들도 하나둘 늘어간다. 그래서 이제는 먼 거리 여행보단, 방바닥에 널브러져 먹고 자고 놀고 쉬고, 1박 2일만 보내도 그저 좋다.
서울 친구는 같은 이야기를 해도 만담처럼 풀어내며 친구들을 울리고 웃기고 배꼽 잡게 만든다. 타고난 재주다. 친구들과 함께하면 웃음보가 터진다.
50년, 60년을 함께한 친구들. 그 이야기를 하다 보면 떠오르는 유안진 님의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생각난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겐 그런 친구들이 있다. 기쁜 일엔 나보다 더 기뻐하고, 힘들 땐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친구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줄게. 그리고 내 친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남의 동네 미운 오리새끼처럼 끼어든 내가 어느새 그들 속에서 당당히 친구가 되었다.
누가 먼저 간다 하면, 가만 안 둘 거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자.
내 친구들아, 이 밤, 숲속 별장에서 주저리주저리.
– 잠 못 드는 가평의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