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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지원 Sep 27. 2024

나를 버리고 가족을 택한 나

 나는 처녀 농군이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면서 나는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창의적이지도 못한 내가 글을 쓰려면  나를  까발리고 세상 밖으로  속속들이 나를  내 던져 보는것이다.


아직은 작가라는 말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조금은 낯설고 얻어 입은 옷이 내 몸에 맞지 않아  남의 눈의 가십 거리가 되지 않을까 조심조심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그래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이 나이 먹어서  다  까발려도 쪽팔림도  부끄러움 없이 뻔뻔해질  나이 아니던가?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은빛지원은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면 되는 거야. 까이꺼 허물 벗어버리듯 슬슬 하나씩 끄집어 내놓아 봐.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  "내가 말이지 시집살이하며 고생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트럭으로 한대는 나올 거야" 대화가 시작되면 너도 나도 소싯적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여인들의 빨래터의 한 맺힌 푸념의 소리 아니었던가.



한 맺힌 적도 남의 탓할 것도  내 살아온 삶에 있어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선택은 내가 택한 길이지 누구의 선택에 의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쓴다면 한트럭은 아니어도  책 몇권은 만들어 질듯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맥도 없는 나는  큰고모가  사는 쌍문동 근처 번동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엄마는 고모에게 내가 쓰는  용돈은 몰아서 한 번에 주기로 했던 거 같다.



고모 지인 소개로 지금 생각하면 꽤나 괜찮은 회사 같은 곳 톰보이에 면접을 보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옷을 한아름씩 고 다니고 왠지 한마디로 막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출근 하기로 한날 시골 촌뜨기는  겁이 나서 출근을 안 했다.



누군가 공무원 시험공부를 해보라고 권했다.  꼴에 귀가 솔깃했다. 종로 행정고시 학원 40일 반에 등록을 했다.  참말로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던 내가 무슨 공무원 시험을 본다는 말인가?


내 머리를 믿어보자. 고3 때 선생님이 너 이렇게 머리가 좋은데 공부 왜 안 하냐?  내 아이 큐가 좋은걸 그제야 알았다.  자존감도  별로 없고 공부도 별볼일 없는나...아... 나는 수포자였다. 공무원 시험엔 과락이있다.



 할머니는  잔잔한  밭일을 주로 하셨고  엄마와 할아버지를 도와 언니가 엄마 곁에 있었는데   언니가  공무원인 형부 한테시집을 갔다. 공무원 시험을 얼결에 치고  났는데 자신도 없고  시골에 신 엄마 걱정이 되었다. 시험 결과는  뻔하디 뻔했다.




학원을 더 나니자니 엄마에게 손을 벌릴 용기도 없고 고모집에 얹혀 있는 것도 불편한데 자꾸만 집 생각이 다.  지금 생각하니 집에갈 핑게를 궁리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할아버지와 들일을 둘이 해야 하는데  얼마나  불편할까? 거기에 꽂혔다. 내가 시골로 내려가  엄마 옆에 있어야겠다고 책 보따리를 들고 내려갔다.   공부는 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독학하면 되지 않을까? 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결정하면  행동 개시다. 내 선택에 대해  나 스스로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들어온다더니 옛말 틀릴 거 없다고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시다. 아마도 일손이 하나 늘어나니  어른들은  좋아했을 것이다. 공부고 뭐고 난 처녀 농군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은  농사일은 많은데 일군들이 잘 오지 않는다. 비슷한 연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드신 할아버지와 40대 젊은 엄마가 있으니 품앗이는 안 되고 할머닌 젊어서부터 허리가 꼬부라지셔서 잔잔한 밭일만 하셨다.  

그러니 일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고 엄마옆에 있어줄 조력자가 하나 더 있어야 했다.



 


나의 미래고 꿈이고 뭐고  우리 가족을 위해 농사꾼이 되었다. 드라마를 많이 보았나? 난 드라마 주인공이 되려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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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다음날 고추를 심어야 하는데 고추밭에 비닐을 덮지 못해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달밤에  텃밭에 나가서 고추 심을 밭에 비닐을 덮었다. 두루마리 비닐을 잡고 난 밭고랑을 맨발로 달린다. 달밤이라 누구 보는  사람도 없고 텃밭한떼기 비닐을 다 덮었다. 엄마와 나는 그때 정말 신이 났었다.



모내기할 때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다.

난 집에서 시골반찬이 아닌 색다른 반찬으로 관심을 끈다.  밥을 해놓으면 엄마가 일하다 들어와  광주리를 이고 나가면  시골 아주머니들이 맛있다고 칭찬해주었다. 집집이 돌아가며 내기를 하는데 난 우리 집밥이 제일 맛있어 이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하시고  정말 부지런하신 분이시다. 귀한 아들 일찍 보내고 손주들 뒷바라지하시고 농작물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최고로  길러내신다.



어딘가에 수박 농사 잘하는 사람 있으면  먼 곳이라도 찾아가  끝까지 배워 오신다. 난 할아버지가 배워 오신 대로 엄마와 수박 접목에  모종을 하고 밭에 나가 수박 사를 지었다. 우리 수박이 외사면 에서 최고야!!

정말 최고의 큰  수박을 만들었다.



수박을 따는 날은 큰 트럭이 와서 싣고 엄마는 가락동 새벽시장으로 가신다.  가위를 들도 익은 수박을 통통 쳐가며  골라낸다. 수박 익은 거 골라내는 것은 내 몫이다.

무겁고 힘들어 들지 못하니  밭고랑으로 떼구르 굴려 놓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농사 욕심이 많으셨다. 천평이 넘는 수박밭이  포도밭으로 변했다. 포도나무가 자라면서 포도나무를 받쳐줄 시멘트 기둥이 필요하다.  개천에  나가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틀에 넣고  굳히는 작업을 한다. 몸 사릴 내가 아니니 따라 한다.



수박 농사 보다 포도 농사가  돈은 더 많이 되는데 손이 많이 간다. 포도송이 솎아 주어야 하고 하나하나 봉지를 씌워야 한다. 비만 오면 탄저병 때문에 농약 방제 작업을 해야 한다. 재미와 힘듦의 과수원 농사는  몇 년 후 동생이 맡아하면서 고추 밭으로 변했다. 참 잘한 일이라 생각이 든다.






언니와 내가 세 살 터울이듯  세 살 터울 남동생이 있다. 인물도 좋고 똑똑한데

나이 드신 할아버지 혼자된 엄마 처녀 농군이 된 누나가  농사일하고 있으니  동생 또한 엄청난 아픔과 갈등이 있었으리라.



 내 동생 또한 꿈을 내려놓았다. 일단 군대를 지원하고 동생 군대 갔다 올 때까지 결혼 안 한다 선포하고 처녀 농군은 포도과수원 처녀가 되었다.




할아버지 연세가 있으시니 기계 다루는 일이 점점 힘겨워하신다.  경운기를 힘껏 돌려야 시동이 걸린다. 시동 걸 때마다 나를 부르신다. 내가 합세해 돌리고 돌려야 후다닥.. 시동이 걸리게 된다.  

젊은 사람 있으면 서너 번만 돌리면 팡팡 하고 터지는데...  둘이 매달려도 몇 번을  실패하면   내색은  못했지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경운이 운전하는 처녀농군

할아버지  경운기 운전이 점점 힘들어 보인다. 경운기 운전하는 처녀 농군이 되었다.


..... 처녀 농군이야기 너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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