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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소녀의 밀가루 반죽

11살 칼국수 만들던 소녀는 요리사 할머니가 되었다

by 은빛지원


어릴 때 우리 집은 양잠 농사를 지었다. 봄, 가을 두 차례 누에를 키워 고치로 만들고 나면 수매를 했다. 누에고치를 팔고 나면 목돈이 생기고, 엄마는 맛있는 간식을 사 오셨다. 삼천리 자전거도 그때 생겼다. 버스가 다니지 않던 중학교까지 자전거로 통학해야 했기에 필수품이었다.

촌에 살다 보면 어린아이들도 어른 일을 돕는다. 각자 자기 몫의 역할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위인 막내 고모는 막냇동생을 안고 재운다고 방으로 들어가고, 동작 빠른 막내 고모는 누구도 못 당했다. 언니는 정리와 청소 담당이었다.

이른 새벽 뽕 따러 가는 일이 잦았다. 졸린 눈으로 엄마를 따라가면 투덜투덜, 투더리 투덜이 되었다. 아마도 울 엄마는 시누이보다 딸을 일시키는 게 더 편하셨을 것이다.

일이 싫으면 밥이라도 해야 했다. 밥 한다고 하면 다른 누군가가 끌려나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부엌이 좋았다. 요리를 좋아서였는지, 칭찬받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늘 부엌을 내 차지로 만들었다. 무언가 만들어 놓으면 할아버지가 맛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받고 관심받고 싶어서 밥순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누에가 자랄수록 뽕잎 따는 일은 더 바빠졌다. 나도 자주 뽕밭에 나가 뽕잎을 따고, 보랏빛이 될 때까지 오디를 따먹던 기억이 난다. 누에는 며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뽕잎을 먹는다. 그러다 잠자는 날이 있다. 완전한 고요. 그 날은 뽕잎 따는 일손도 잠시 멈춘다.

칼국수 만들던 날

더운 여름날, 식구들은 뽕밭인지 고추밭인지 일터로 가고, 집엔 아무도 없었다. 아마 방학 중이라 나는 집에 있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뭔가 색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엄마가 하시던 방식대로 칼국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상상만으로도 설레고 신이 났다.

엄마가 반죽할 때 곁에 있어봤으니 양도, 크기도 대충은 알았다. 엄마는 커다란 반죽통 두 개를 반죽하셨다. 마루에 밀가루 포대 종이를 깔고, 밀대로 밀고, 밀가루를 뿌려 돌돌 말아 칼질을 하셨다. 그 칼질이 나도 해보고 싶었다. 겁 없는 성격답게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큰 양재기에 밀가루를 퍼 담고, 물도 붓고 조물조물 반죽을 시작했다. 그때 외할머니가 오셨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내가 혼자 해보려 했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한다고 하고 있냐”고 하시며, 결국 할머니가 반죽하고 밀고 칼질을 하셨다.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점심 무렵, 밭에서 가족들이 돌아왔다. 감자, 호박 썰어 넣고 할머니가 칼국수를 끓이셨고, 모두 맛있게 드셨다. 만약 할머니가 안 오셨더라면 그날 칼국수의 운명은 어땠을까? 나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일하고 돌아와 보니 난장판이었으면 혼쭐 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날은 내 손으로 끝까지 하지 못한 아쉬운 날로 기억된다. 촌에선 아이들도 일터로 나가야 했지만, 나는 밭일보다 부엌에 있는 걸 즐겼다. 엄마가 만든 반찬도 맛있었지만, 나는 거기에 뭔가를 더해 색다른 반찬을 만들어 내곤 했다.

중고등학생 때도 들판보다 아궁이에 불 지피며 부엌일을 즐겼다. 아궁이 불구경도 좋았고, 요리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까지 해주면 또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싶어졌다. 동생들은 누나가 처음 해줬던 요리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결혼 후 아이들에게도 제과제빵은 물론, 피자, 치킨까지 손수 만들어 먹였다. 요리가 즐거웠기에 늘 그렇게 살아왔다.

이웃들과 나눠 먹다 보니, 나는 어느새 요리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특기를 살려 반찬가게 대표가 되었다.

엊그제는 오랜만에 아이들 어릴 때 해주던 초코칩 쿠키를 구웠다. 다 큰 딸들이 “예전에 먹던 그 맛!”이라며 맛있게 먹어줬다.

어떤 일이든, 내가 좋아하는 걸 할 때 행복하다. 밀가루 뒤집어쓰고 칼국수 만들던 11살 소녀는 어느새 63세 요리사 할머니가 되었다.

어릴 적으로 돌아가 보면, 농사일 끝내고 돌아온 가족들 앞에서 밥을 하겠다고 난장판을 벌였던 어린 계집아이가 생각난다. 언니와 엄마는 내 뒷수습 하느라 짜증도 많이 났을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밥도 하고 반찬도 했지만, 힘든 일은 남겨두고 식구들 나타나면 후다닥 도망쳤다. 설거지는 언니 몫이라 믿고… 구시렁거리든 말든 튀어나왔던 어린 꼴값 셰프.

요리 잘하는 것도, 손재주도 모두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엄마보다 더 맛있게 해보겠다고 용을 썼던 그 시절.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금, 엄마와의 추억이 다시 살아난다.

엄마와 참 안 맞았던 딸이었지만, 울 엄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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