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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지원 Sep 26. 2024

열 살 소녀의 밀가루 반죽

11살 칼국수 만들던 소녀는 요리사 할머니가 되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양잠 농사를 하였다.

봄가을  두 번에 걸쳐 누에를 키워서 애벌레가 자라고 누에고치가 되고 나면 수매를 하였다. 누에고치를 팔고 나면 목돈도 생기고 엄마는 맛있는 간식도 사 오셨다. 삼천리 자전거도 그때 사 주셨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중학교까지 가려면 자전거 통학을 해야 해서 자전거는 필수였다.



촌에 살다 보면 어린아이들도 어른들을 도와 일을 해야 한다. 각자 자기 몫의 역할이 있다. 나보다 한 살 위인 막내 고모는 내 막냇동생 재운다고 방으로 들어가 끌어 앉고잔다. 동작 빠른 막내고모는 못 당한다. 언니는 정리와 청소 담당이다.



이른 새벽에 뽕 따러 가야 하는 일이 많아서 졸린 눈으로 엄마를 따라가다 보면 투덜투덜 투 더리가 된다. 아마도 울 엄마는 시누이 보다 딸을 일 시키는 게 더 편했으리라.



일하기 싫으면 밥이라도 해야지.

밥 한다고 하면 다른 누군가 끌려 나갔던 거 같다.




나는 부엌이 좋았다. 요리를 좋아서  한 건지 칭찬받고 싶어서 그랬는지 나는 늘 부엌을 차지로 만들었다. 무언가 만들어 놓으면 할 아버지가 맛있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칭찬받고 관심받고 싶어서 밥순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누에가 점점 커 갈수록 뽕잎 따는 일이 점점 더 바빠진다. 나도 자주 뽕밭에 나가 뽕잎 따고 보랏빛 잎술이 되도록 오디를 따먹던 기억이 난다. 누에는 밤낮없이 며칠 밤낮으로 뽕잎을 먹어댄다. 누에가 잠자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완전한 고요 속이다.  뽕잎 따는 일손이 잠시 멈추는 날이다.





칼국수 만들던 날


더운 여름날 식구들은 뽕 밭으로  갔는지 고추 밭으로 갔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마도 방학중이라 난 집에 있었나 보다.

점심때가 다가온다.


그날은 뭐 색다른 걸 해보고 싶어 엄마가 하던 방식대로 칼국수를 만들기로 했다. 그저  상상 만으로 신나고 설레는 일 아니던가.


늘 보아 왔고 엄마가 반죽할 때  함께 해봤으니 어느 정도의 양과 반죽의 크기는 알 수 있었다. 반죽을 하고 치대고 우리 가족이 먹을 양만큼 하려면 엄마는 머리 통만 한  반대기 두 개를 만들었다.



마루에 밀가루 포대 종이를 깔고 밀대로 밀어서  밀가루 톡톡 뿌려 가며 돌돌 말아  나무 도마에 놓고 칼질을 한다. 그 칼질이 나도 하고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겁 없이  질러 버리는 성격이 어디 간단 말인가.



엄마가 하던 대로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밀가루를 퍼다가 커다란 양재기에 반죽을 준비한다. 물도 붓고 조몰락 조믈락....

그때 외할머니가 오셨다. 

이 실망감~ 내가 혼자 해보려 했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한다고  하고 있냐고?



할머니가  반죽도 하시고 밀대로 밀고 돌돌 말아 칼질을 하셨다. 나도 엄마가 하던 대로  반대기 밀어서 착착 칼질하고 싶었는데 섭섭한 이 마음을 어찌할까나~~



점심이 되니 밭에서 일하던 가족들이 돌아왔다. 감자, 호박, 숭숭  썰어 넣어서  할머니가 칼국수를 만들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만든 칼국수를 맛나게 먹었다.



할머니가 안 오셨더라면 칼국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그때는 나도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아마도 힘든 일 하고 왔는데 일 벌여 놓았다고 혼줄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내 기억엔  모든 걸  내  손으로 다 하고 싶었는데 끝까지 하지 못한 아쉬웠던 날로 기억이 된다.


촌에 살다 보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일터로 나가야 한다. 나는 밭에 나가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부엌으로 들어가는 걸 즐겼다.

색다른 반찬을 만들고 엄마가 만든 반찬도 맛있었지만 또 뭔가를 가미해서 색다른  반찬들을 만들어 내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난 들판으로 나가는 것보다 부지깽이 두드리며 아궁이에 불 지피는 걸 좋아했다. 아궁이 불구경이 좋았고

요리하는 게 즐거 웠던거다.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고 맛있다고 칭찬해 주면  어린 나이에 또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냈던 기억이 난다. 동생들은 언니가, 누나가,  만들어 주었던 처음 먹어 봤던 음식들을 기억한다. 



결혼하고 아이들에게도 난 제과 제빵뿐 아니라  피자 치킨까지 모든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였다. 요리가 즐거우니 늘 그래 왔던 것이다.


이웃들과 함께 자주 나눠 먹고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요리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좋아하는 특기를 살려 반찬가게 대표가 되었다.




엊그제는 오랜만에 아이들 어릴 때 해먹이던

초코칩 쿠키를 만들어 보았다. 예전에 먹어본 맛이라고  어른이 된  딸들이 맛있게 먹어준다. 



어떤 일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한 것이다. 어릴 적 밀가루 범벅을 하고 칼국수를 만들던 11살짜리 소녀는 63세의 요리사 할머니가 되었다.


내  어릴 적으로 돌아가보면

농사일 마치고 집에 오면 어린 계집아이가 밥을 하겠다고 오방난장을 벌여 놨으니 언니와 엄마는 내 뒷수습하느라 짜증이 많이 났을 것이다.


 난  내 나름대로 밥도 하고 반찬도 하였지만

힘이 들었을 것이고 나머지 치우는 것은 나 몰라라~~ 식구들이 나타나면  후다닥 도망쳐 나왔던 기억이 많다.


 설거지는  언니가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튀어나왔으니 뒷감당하는 사람들은  짜증이 났을 테니 말이다. 구시렁 들리든 말든 튀어...

값하는 어린 셰프가 아니었나 싶다.


요리 잘하는 것도 손 재주도 엄마의  솜씨를 물려받은 나인데 엄마가 하는 것보다 더 맛있게 해 보겠다고 발광을  떨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엄마와의 추억이 또 살아난다.  엄마와 참 안 맞는 딸이었지만 울 엄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동안 감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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