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서 나에게 온 책과 쑥 버무리)
이 글은 25년이 어느새 삼일째 지난날 쓰였다. 그때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를 읽고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역시나 출중한 문체와 막힘없는 문장이라 그런지 글이 술술 잘 익혔다.
트랩 핸드의 주인인 다케시. 트랩핸드는 자신의 무대. 다케시의 전직은 마술사. 함정의 손이라니. 그에게 찾아오는 세 명의 손님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여기 이 부분을 끄적여 여기까지 적고 보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전에 읽었던 동일 작가의 소설이 연상되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도 세명이었다. 나미야, 쇼츠, 고헤이.
33년 전 과거의 상담 편지로 쓰인 인연. 고헤이는 잡화점 문틈으로 생선 가게 뮤지션이라 적힌 편지를 펼친다. 호기심에 펼치니
그 일이 32년 전 쓴 글. 편지는 계속해서 도착하고.
소설은 세 명이 주인공이 잡화점에 들러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이번 소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도 역시 다케시라는 미스터리 한 신분의 주인공이 사건을 맡아 해결사 역할을 하는 중이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된 미망인 그녀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혼자이고 재산이 있다.
이 점을 노려 진짜와 가짜를 만들었다. 마치 마술을 부리듯. 아버지와 오빠에게 재산이 돌아갈 것을 원하지ㅡ않은 그녀. 그런 그녀가 병으로 죽어갈 위기에 처하자 자신과 닮은 대역을 찾았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가 이 대역을 수락. 서로가 서로를 바꾼 뒤 미망인은 대역의 이름으로 자살해 죽다. 그러면 가짜가 진짜의. 재산을 가져가나?
이렇게 소설 속 여자들은 마치 환상과 현실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블랙 쇼맨에서 다케시가 마요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은 살아 있었을 때의 시점으로 들어가 사건을 풀어 나가고 있었다. 오늘 음악을 통한 과거로의 여행으로 자신의 내면을 치료하는 그림을 그려 보았다.
어떤 사건을 풀기 위해 과거의 시점에서 현재로의 이동은 글이나 그림, 음악 등 장치의 힘을 빌려 풀어 가면 매듭이 풀림을 글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과거로 시점이 옮겨져 사건의 단서를 짚는 내용을 보니 40대 여성 가즈미가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사건 의뢰 도중 찾아온 가즈미의 오빠는 사건을 더 복잡하게 하는 덧같기도 했다.
오빠도 아주 악한 오빠였다. 이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우에마쓰 가즈미를 도와주는 다케시는 마치 히가시노게이고가 나서서 진실을 밝히려는 또 다른 자아처럼 보였다.
소설의 두 번째 사건은 한 여자가 선을 보기 위해 남자를 데리고 왔다로 시작했다. 글의 설정이 참 그럴싸했다. 다케시는 점점 여자 형사처럼 손님들을 대했다.
이게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장치다. 소설 이야기 도중 다케시가 그 여자 손님을 도우려 애쓴다.
결혼 한 흔적이 있는 남자가 여자와 선을 보다니. 그런데 우리 주변에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여성분은 결혼해서 살아 보니 남편이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단다. 자신은 처녀였고 중매로 만난 그 남자가 자신을 속였단다.
이 일은 과거 70년 전 사건 중 하나다. 그런데 지금도 저처럼 불편한 결혼, 잘못된 결혼을 물리지 못하고 평생 동반자로 억눌린 채 여성 정체성을 상실하며 살아가는 분이 있다니 소설 같은 일이 있어 너무 놀랐다.
실화였지만 고인이 된 가슴 아픈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같은 여성으로 억장이 무너졌다. 여성이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긴 힘들다.
그러나 여성이 서로 연대하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는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슬픈 여성의 문제를 형사처럼 매듭을 풀어 주고 있었다.
조금은 의리가 있는 강인한 남성적 사고를 가진 여성 주인공을 등장해서 말이다.
그런데 더 슬픈 이야기는 그 유부남 남자의 아이를 처녀였던 그 여성이 기르며 살아야 했다니. 속은 결혼, 상처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이런 현실 속 소설 같은 일을 두고 기묘한 세상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세 번째 사건은 유치했다. 친구를 위해 이상한 거짓말을 꾸미는 장치였다. 아무튼 난 즐거운 마음으로 이 소설을 유유자적 눈으로 읽어 보았다.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갔다. 각시붓꽃과 양지꽃과 민들레가 한창이었다. 저수지 둘레를 도니 작년에 보았던 마을 텃밭이 눈에 들어왔다.
난 그 길로 들어서서 밭을 매는 아낙을 마주쳤다. 날이 따뜻하자 봄밭은 각자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감나무 가지치기, 강낭콩 심기, 취나물 텃밭 김매기 등 다들 열심히 손과 발을 놀렸다. 두릅이 올라오면 홀아비 촛대가 하얀 수염을 내비치며 저수지 주변을 반긴다
그 풀꽃을 등지고 꽃 사과길을 지나면 바로 저수지.
그 밭고랑에서 나고 자란 쑥으로 난 쑥버무리를 해 보았다.
어려서 할머니가 해 주던 맛. 그 맛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손수 기른 벌꿀과 흑현미쌀과 밀가루를 살짝 데쳐 믹서기에 갈았다.
반죽이 쫀득하게 찰진 것이 쑥물과 만나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마트에서 산 삼베 주머니를 깔고 삼발이에 쪄 내니 꼭 쑥빵 같다.
쪄서 접시에 담고 참기름 발라 깨를 뿌리니 남편이
맛있단다.
쑥이 지천인 계절에 이 음식을 만드니 옛날 살아생전 친할머니 생각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