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해 헌신하다 꽃잎처럼 서러운 삶을 살다 간 여성
박지숙 작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다. 중편 동화 [김홍도, 무등을 그리다]로 제1회 푸른 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다. [이순신, 거북선으로 나라를 구하다] [김구, 통일 조국을 소원하다] 등을 발표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열하일기] [4월의 소년] [얼굴나라 전쟁][격쟁을 울려라!] 등 청소년을 위한 글을 많이 집필했다.
나 역시 [동이의 시간여행]이라는 동화에 동이가 꿈에서 이순신이 되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왼쪽 다리를 다친 이야기도 다루었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은 일본에서 아주 무서워하는 존재이며 우리나라에선 왜구를 무찌른 장수로 아이들에게 이름을 널리 펼친 훌륭한 분이시다.
강빈이라는 여성 경영인을 소개한다. 그녀는 1611~1646년에 생을 마감했다. 35세의 생을 살다 가셨다. 청나라에 무릎 꿇은 슬픔을 이겨 낼 새도 벗이 낯선 땅 선양으로 끌려간 조선의 세자빈, 하지만 강빈은 평범한 세자빈으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여인이라는 이유로 세자빈이라는 이유로 절망하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볼모로 주저앉는 대신 청나라와 무역하고 농장을 운영했던 주체적인 경영인, 재물을 모아 조선 포로들을 구하고 눈물 흘리는 백성들을 챙겼던 당찬 세자빈.
실리에 밟고 지혜로웠던 여성, 조선 최초의 여성이라니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읽어 보았다.
강빈은 1611년 3월 강석기와 신예옥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627년 1월 정묘호란이 일어났다. 1627년 12월에 인종의 아들 소현세자와 혼인했다. 1636년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1637년 1월에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을 하였다.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1637년 2월 소현세자와 함께 선양에 볼모로 잡혀갔다. 상업, 무역, 농장 경영, 포로 속환에 힘썼다. 1645년에 2월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1645년 4월에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났다. 1718년 4월 숙종이 강빈과 그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강빈의 지위를 회복시켜 민회빈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열해 보면 이렇다. 정묘호란(1627년 후금이 조선에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했다 강화 조약을 맺고 두 나라는 형제의 나라가 됨) 이 끝난 지 두 달. 한양까지 후금의 오랑캐가 내려오 던 날 백성들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단다. 그 당시 1월에 후금이 조선을 쳐들어왔다. 만주 벌판엣 세력을 키운 후금이 기세는 거침없었다.
“조선은 왜 명나라만 받드느냐? 당장 우리에게 무릎을 꿇어라”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했다. 그런 임금을 받들고 있었다니. 지금이나 그때나 왕들은 다 나라를 등지고 백성이 나라를 지키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 대신 소현세자가 전주로 내려가 조정을 이끌었다. 이때 백성들 이름에 오르내리는 소현세자에게 강 소저(아가씨)는 마음이 이끌렸다. 열여섯 살 소년의 마음에 가마 행렬을 타고 나타난 왕비와 공주가 탄 가마였으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을까?
강 소저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왕실 가마에서 내려 소현 세자가 안 보이자 나무 위에 올라가 봄빛 싱그러운 5월에 첫 만남을 이루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굉장히 당찬 여성임을 알 수 있다.
그 순간 봄바람이 불면서 강 소저의 치맛자락이 팔락였다. 그렇게 나라에 간택령(조선 시대 임금, 왕자, 왕녀의 배우자를 고른다는 명령) 이 내려지던 날 소현세자의 눈에 들어왔다.
양반 가문의 혼인이 금지되고 소현세자의 짝 찾는 간택이 시작됐다. 강 소저는 세자빈 후보가 되어 궁궐에 들어갔다. 간택 절차에 따라 왕실 어른들에게 예를 올린 뒤 점심상이 나왔다. 유력한 세자빈 후보였던 아가씨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손으로 음식을 게걸스럽게 집어 먹었다. 귀신을 보는 양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버지 강석기는 성품이 대나무처럼 꼿꼿했다. 인조 조정이 불안정한 상태라 강빈은 세자빈이 되기 싫었을까? 그런데 간택되었다. 그날부터 혼롓날 강 소저는 별궁(왕이나 왕세자의 혼례 때 왕비나 세자빈을 맞아들이던 궁전)인 태평관에서 왕실 예법을 익혔다.
이렇게 훌륭한 세자빈이라니 지혜롭기가 하늘의 별보다 우주의 무성한 별들보다 더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10년이 흐른 뒤 나라에 병자호란이 터졌다. 역시 운명이 기구한 여성임에 틀림없다. 이제야 그녀가 단명한 이유를 알겠다.
원손(아직 왕세손으로 책봉되지 않은 왕세자의 맏아들, 상왕의 맏손자)과 몸을 피하는 강빈. 그 무렵, 후금은 홍타이지가 새 임금이 되었다. 홍타이지는 황제라 칭하며 조선에 으름장을 놓았다.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라고 얕잡았다. 지난 1월 말에 대만을 다녀왔는데 그곳 사람들의 얼굴 형상은 주로 동글동글하고 살집이 풍부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몸집이나 생김새가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얼어붙은 압록강을 단숨에 건너 항양까지 치달은 홍타이지의 10만 대군이라니. 강빈은 원손과 왕실 가족, 신하와 함께 강화도롤 향했다. 강화도는 큰 섬인 데다가 방어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바다를 건너오는 적고 맞서기에 알맞았다.
이때 도원수(고려, 조선 시대에 전쟁이 났을 때 군사를 총괄하던 임시 무관) 김자점이 오랑캐가 침입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적과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 역시나 나라는 백성들이 지키고 왕실과 고위 간부는 줄행랑이구나. 지금이나 과거나 조선의 역사는 변함이 없으니 참으로 실망스럽고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이 나서서 용감히 싸울 수밖에. 강빈이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서 김경징 검찰사(나라에 중대한 사건이나 군사상 문제가 생기면 검사하며 살피던 임시 관직)가 배를 모조리 가져갔단다.
책을 읽을수록 위정자들의 간악함과 간사함에 분개가 치솟는다. 이때 강빈은 역시 여장부답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바닷바람을 휘감고 강을 건널 기세를 펼친다. 여성의 힘이 가끔 보면 남성보다 배가 됨을 알 수 있다. 이때 새앙각시( 두 갈래로 머리를 딴 어린 궁녀)가 배를 간신히 가져와 가까스로 피란 행렬이 시작된다.
용기 있는 향니의 모습과 강빈의 다부짐을 보니 나라에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라도 힘을 합치면 한 사람이 열사람이 되고 그 열사람이 백사람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도 이 어려운 시국을 잘 넘기기를 바라본다.
소현세자와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했다. 청나라 장수 마부대가 수백 명의 기마병을 이 끌로 강화도 길목을 막았다. 군사는 고작 1만 3 천명, 식량도 50일분, 전쟁이 막 시작된 상황에 이를 어쩌나?
이때 성경에선 군사의 수에 초점을 맞추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윗과 블레셋 장수, 그리고 골리앗의 크기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한 명의 용감한 사람이 백 명과 맞서 싸우는 장명을 볼 수 있다. 그러니 물러나지 않는 용기 있는 자가 전쟁에서 승리함을 알 수 있다.
이때 청나라 군사가 홍이포 (대포)를 쏘며 달려들었으니. 전세가 위급함을 알 수 있다. 첫돌도 안 된 자식을 안고 피란길을 올랐다니. 가슴이 미워지는 기분이다.
죽어야 하나? 살아야 하나? 강빈은 적에게 잡혀 갈 신세 수모를 당할 신세를 생각하면서 은장도를 꺼낸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에 게 붙잡히는 강빈. 그녀가 끌려간 곳은 삼전도. 군대가 진 치고 있는 곳. 조선인 포로가 수만명인 곳.
호복[만주인의 옷]을 입고 변발[만주인의 풍습을 한 길게 땋은 머리] 한 사람들이 청나라인. 이때 같이 끌려간 옥련이와 향니는 스파이 역할을 하는 조선의 염탐군들.
전쟁은 강화도의 함락으로 남한산성에 47일 만에 나온 인조와 소현세자.
인조는 홍타이지에 무릎을 꿇고 명나라와 가까이 지내지 않을 것을 서약하고 엄청난 조공을 바쳐야 했다.
슬픈 이 나라의 역사다. 청나라로 끌려가는 포로 신세가 된 강빈과 소현세자. 그리고 조정 대신들, 궁녀와 하인 2백 명.
조선의 하늘이 울고 땅이 우는 날이었을 것이다. 불로 집을 태우고 식령을 가져가고 여인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간 세월. 잡혀간 여인들을 비싼 값에 중국인의 노예로 팔았다니.
압록강을 지나 적의 땅으로 들어간 포로들은 삶을 체념한 듯했다. 강빈은 4월 초에 청나라 수도 요동에 도착. 요즘 같으면 비행기로 갈 땅인데 그 당시는 물 건너 산 넘고 바다 건너 말 타고 몇 날 며칠을 갔을 것이다.
패전국의 왕세자가 강빈이 선양에서 겪는 서러움은 청나라는 뚝하면 소현세자를 다그쳤단다. 조선 포로의 설움이 선양 곳곳에 있었다. 청나라에 온 지 2년이 흘렀다. 청나라 최고의 왕족인 아지거가 편지를 보냈다. 청나라는 유목 민족을 이루면서 살아 농사를 짓는데 서툴렸다. 그래서 강빈이 조선 물품을 구하는 책임자로 옥련이를 앉혔다.
이제부터 강빈이 여성 경영인이 되어 빛을 발하는 시기가 온다. 첫 거래는 대성공 아지 거는 조선 물품에 흡족했다. 강빈은 큰 이익을 남겼다. 장사해서 번 돈으로 세자와 하녀들을 먹여 살렸다.
선양관 경제를 담당하고 정치와 외교에 힘쓰며 여윳돈이 생기면 속환금을 마련하여 살아간 여성 경영인 강빈. 조선에서 면포, 모피, 괴화 (회화나무의 꽃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등을 가져와 청나라 시장에 팔았다.
조선 홍시와 배는 인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홍시는 옛적 원어민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귀한 음식이었다. 서양인들이나 이방인들은 홍시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니 그 맛에 반할 수밖에.
청나라 인들이 만주땅에서 나지 않은 과일을 좋아했다. 나 역시 대만에서 난 묘하게 생긴 부처님 머리 형상의 석가라는 과일에 이끌리기도 했다. 그 맛은 무척 달았다.
조선 특산품이 최고다.
강빈은 조선인이 모여 있는 노예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신이 번 돈으로 그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굶주림과 상처 투성이었던 조선인들을 구한 용감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라는 어떤가? 백성의 세금이 해외로 빠져나가 묘하게 사라지는 세상이 아닌가? 아마 강빈이 이 세상에 돌아와 살아난다면 이 나라의 정국을 보고 개탄할 것 같다.
선양관 근처의 광활한 대농장을 산 강빈. 그곳을 보여 주며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여성 경영인. 그 땅에 청나라인들이 좋아할 만한 조선 채소를 심고 재배한 여인. 한인 농사꾼으로 대체한 여인.
그러나 그 세월도 잠시. 청나라는 뚝하면 소현세자를 윽박질렀다. 조선에서 속임수를 쓰네. 명나라를 아직도 떠 받드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끼어 죽이 되었다가 죽사발이 되었다가 뼈가루가 될 번한 일이 많았다니.
약소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들으니 분개가 차오른다.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의 연속인 청나라와의 싸움에서 소현세자와 강빈은 그들의 조건부에 늘 몸을 사려야 했다.
그 후 몇 년 만에 돌아온 조선에서 인조는 소현세자 부부를 반기지 않았단다. 강빈을 아버지 묘에도 못 가게 했단다. 1644년 봄. 봄은 역시 누군가에겐 끔찍한 역사다. 청나라 군사들이 철옹성을 뚫고 산하이관을 뚫고 만리장성을 넘어 그 심장부로 달렸다. 권력 투쟁의 연속인 역사. 청나라는 수도를 선양에서 북경으로 옮겼다.
그곳은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이루어진 국제도시였다. 상업이 번창했다. 그 당시 조선의 학문은 성리학, 천주학.
천구의, 천리경, 산학, 이역을 배웠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가는 길에 긴 병으로 학질(고열, 구토, 설사라는 전염병, 말라리아) 이 걸렸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세자빈이 죽자 후궁 조 씨가 강빈의 목숨을 노렸다.
“전하, 세자빈이 저를 저주합니다.”
역모가 일어났다며 그다음 날 궁녀들이 처소에 들이닥쳤다. 그 뒤 강빈은 궁밖으로 쫓겨난다. 그러나 백성들이 강빈의 서글픈 탄식에 눈물로 동참했다. 그리고 저희를 살렸다며 희망을 주었다며 합창을 했단다.
역사를 돌아보고 강빈이라는 훌륭한 여성의 삶을 보니 내가 너무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난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다시 한번 반성하는 자리가 되었다.
비록 강빈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라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겠음을 다짐한다.
드디어 대통령 탄핵심판이 확정됐다. 아주 쾌거다. 신문은 이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위헌, 위법으로 이루어진 비상계엄. 그 계엄으로 여야대표, 전직 대법원장, 대법관을 체포 시도했다.
난 가끔 중학년 시절 김대중 대통령 유세를 보기 위해 대학 캠퍼스에 달려가다 인파에 밀려 다리를 다친 친구를 보았다.
그 뒤 5.18 연극 중 고 이한열 열사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사건을 무명의 배우들은 제법 잘 표현했다.
그 뒤 난 어른이 되어 5.18 위령소에 가서 고 이한열 열사의 무덤 앞에서 엄숙한 예를 드렸다.
우린 이 역사의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돼 새기는 발걸음이 되었을 줄 안다.
조정래 작가님, 한강 작가님의 책에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우리 청소년들이 꼭 한번 읽어 보길 바란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