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글
대통령 선거날을 맞이하여 한 편의 글을 읽었다. 아침 일찍 아파트 둘레길 산책 후 집에 오니 거의 열 시가 되었다. 매번 선거를 하는데 이번엔 감회가 남달랐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참으로 따사로웠다.
주민복지센터를 지나 선거를 마치고 돌아온 뒤 우린 오늘 역사에 새로운 도장을 찍은 기분이 들었다. 그 현장에 서서 잠시 투포를 마친 후 모처럼 시간이 나 잠시 짧은 글을 한 권 읽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책인 그림 동화다.
난 요즘 짧은 글을 자주 읽는다. 눈도 피로하거니와 긴 글이 주는 지루함이 불편한 나이기도 하다. 제목을 보니 허초희란 여성의 글이었다.
허초희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시대의 여성이었다. 여성으로서 그 시댕에 명인이었는데 사대주의 남성주의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점이 무척 안타까웠다. 요즘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책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본다.
그런 면에서 예전보다 아이들의 지능이 더 높아가는 것을 알게 된다. 짧은 글에는 허초희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마음이 글에 잘 드러나 있었다.
조선중기 허초희의 손엔 흰 종이가 팔락거렸지
"어이구, 우리 초희 숨넘어가겠네. 무슨 일이야?"
다정한 오누이의 모습을 보니 마치 나와 친정 오빠지간같이 보였다. 허초희는 하늘 위 신선들이 보석으로 근사한 궁전을 짓고는 나더러 어울리는 글을 지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얼마나 마음이 아름다운가?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은 이런 느낌인가 보다.
가끔 아이들에게 시를 지어 보라고 했을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접었지만 이젠 그 일을 어르신들을 상대로 하고 있다.
서초희의 글을 읽어 보니 솜씨가 아주 빼어났다.
엎드려 바라옵니다.
이 대들보를 올린 뒤에 계수나무 꽃은 시들지 않기를 아루다운 풀도 긴 봄을 누리기를. 땅과 바다의 색이 바뀌더라도 회오리 수례를 타고 오래오래 사시기를.
이 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중에 나타난 글이란다. 어린 나이에 이런 기특한 장문이 떠올랐다니 학문이 무척 빼어나고 글재주가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전에 아이들에게 시를 쓰라고 하면 아이들의 생각이 가끔 엉뚱한 점을 많이 발견했다. 만약 이런 글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아이들 일부는 그게 무슨 글이냐. 어떻게 계수나무가 시들지 않느냐. 나무는 때가 되면 시들잖아요. 등 감성이 메마른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초희는 땅과 바다의 색이 바뀌더라도 회오리 수레를 타고 신선들이 하늘나라 멋진 궁전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난 허초의 자신이 그런 곳을 마치 이상적인 세상을 향한 인간의 소망을 글로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어도 멋진데 그 시절 허초희의 오빠는 아주 믿기지 않을 만큼 감탄했단다. 예전에 내가 첨 글을 써서 책을 출간했을 때 오빠가 하는 말이 우리 동생도 허난설헌이 되고 싶은가 보다고 했다. 그 말이 이제야 나에게 적용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글이 허난설헌이 겨우 여덟 살이던 때 지었다니 세상이 놀랄 일이 아니고 뭐겠는가? 재주 많은 셰익스피어의 여동생도 그 당시 a girl in the house 로서 작문이 뛰어났지만 세상에서 인정을 못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허초희의 생도 역시 비운이었다.
어려서 허초희는 이야기책도 읽고 다른 사람들이 지은 시도 읽었단다. 그리고 오빠와 시에 대해 나누었단다. 이런 오빠가 있었으니 얼마나 축복인가? 열다섯 살에 시집을 갔다. 자신의 마음을 글로 잘 드러내는 허초희와 다르게 남편은 수줍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단다. 그래서 허초희는 남편에게 애틋한 마음을 글로 표현했단다.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이 구슬처럼 빛나네.
연꽃 덮인 깊숙한 곳에다가
목란배를 매어 두었네.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꽃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 봐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웠네
허초희의 연밥 따는 노래 중
글이 무척 서정적이어서 호수에 연꽃이 피어 물 위에 깊숙이 잠긴 모습이 그대로 마음에 그려졌다. 그리고 부끄러워했다는 그 말에 남편은 오히려 여성이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고 오히려 꾸짖었다고 한다.
함께 공부한 남편의 친구마저 허초희의 글에 해방을 놓았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시로 표현한다고 거침없다고 아주 대놓고 쓴소리를 하는 시대였단다.
설상가상으로 딸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이듬해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단다. 그리고 아들을 잃었다. 이 와중에 친정 오빠가 붓과 책을 보내왔단다. 참 고마운 분이다.
난 이 글을 읽으면서 늘 글이란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허초희가 만약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그리고 그런 빼어난 글재주가 있는 여성이라면 바로 달려가 반겨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허초희가 스물일곱의 나이에 짠 생을 마쳤지만 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그 시대 전쟁상과 가난한 여인들, 시집가던 날 입을 옷도 없는 사람이 남의 옷을 지어 좋다는 내용을 보면서 가슴이 무척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