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신혼일기’ 첫 장의 내용을 기억하시는지?
내가 이 글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 그녀는 가출해서 남편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그걸 ‘추격전-아내는 신출귀몰-’ 편을 찍고 있다고 표현했었고.
이제와 밝히지만, 가출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 그녀에게 대사건이 벌어졌다. 남편이 결혼 전에 진 빚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남편에게 크게 화가 난 상태였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 일본어를 잘해서 간 줄 알았더니, 수업은 영어로 들었고 일본어는 하나도 모른 채 비행기를 탔었단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현지에서 취업했다가 한국에 돌아온 지 10여 년 된다. 당연히 일본어도 수준급이다. 이력 좋고 머리도 좋으니 한국에서도 외국계 회사에 취업하여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빚을 '웬만한 사람들 일 년 치 연봉'이라고 표현했다. 듣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인 게 틀림없었다. 이쯤 되니 참을 수가 없어 물어보았다.
"어쩌다가 빚을 졌는데?"
코인을 하셨단다.
아이코야, 나는 머릿속으로 비트코인의 시세가 얼마였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비트코인은 사상 최대금액을 달성하고 곤두박질친 참이었다. 코인 초보자라면 많이 잃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원체 코인이라는 것이 변동폭이 크고 왔다 갔다 하니 큰돈을 넣어두고 마음 놓을 수 없는 투자처이기야 하다마는.
아니, 그가 비트코인을 했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녀는 코인에 대해 흥미가 없으니 그가 비트를 했는지 시바를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투자를 여윳돈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빌린 후, 돌려 막기로 돈을 끌어모아 버티기 급급했던 모양이었다.
"1금융권에서만 빌린 게 아니라 온갖 곳에서 다 빌린 거예요. 심지어 핸드폰 소액 대출까지 했더라고요. 전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언니는 알고 있었어요?"
경제관념 철저한 그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나는 그녀의 남편을 처음부터 미심쩍게 생각했다. 어플에서 만난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어플이 깐깐하게 사람들의 직업, 신상, 가치관 등을 검증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에는 허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공무원이라고? 이 자식, 뻥친 거 아니겠지?'
그녀에게 말하지는 못했으나, 만난 적도 없는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속으로 이놈 저 놈 하며 혼자 의심해 댔다.
그 의심이 해결된 것은 그녀가 TV 화면에서 남자친구를 보았다고 얘기했을 때였다. 공무원인 그가 일하는 모습이 뉴스 화면 끄트머리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걸 봤다고 했다.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내가 아는 사람이 나온다는 게. 물론 화면에 메인으로 나온 건 아니고 귀퉁이에 작게 나온 거지만 일부러 찾아본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 보는 뉴스에서 발견하니까 더 신기했어요."
그 심정, 알 것 같았다.
그 이후, 그에 대한 의심도 풀렸다. 공무원이라고 하니 철밥통이겠다, 그녀도 일을 할 테니 경제적으로 큰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가 워낙 알뜰한 성격이니 둘이서 힘을 합쳐 잘 살겠거니 싶었다.
그랬는데 이런 허점을 품고 있었다니. 아니, 이건 허점이 아니라 함정 같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까 갑자기 XX에 내려온 것도 사고 쳐서 3개월 정직 먹은 거래요."
"정직!?"
보통 시말서 정도로 끝나지 않던가? 심해봐야 일시적인 임금 삭감 정도. 정직이라니,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아무 말 못 하고 입만 벌리고 있는 동안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3개월이면 우리 결혼식 할 때도 일 안 하고 쉬고 있던 거예요. 그러면서 입 꾹 닫고 가만히 있었던 거죠.”
기가 막히다는 목소리였다. 그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결혼식 준비, 신혼여행, 집 계약, 혼수 등을 알아보러 돌아다닐 때 팔자 좋게 드러누워 있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지방에 내려와서까지.
“너 집 때문에 서울이랑 지방 왔다 갔다 했잖아. 네가 내려가 있을 때 아침에 출근한다고 나갔다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가서 공원이며 PC방이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대요, 퇴근시간까지.”
“아니, IMF 때 우리네 아버지들도 아니고…….”
심각한 상황이었건만 이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행히 그녀는 화내지 않고 웃었다. 웃는 걸 보니 일단락된 일인 듯 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수습했느냐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았고 고민도 깊었지만 결론은,
“다 갚았죠.”
였다. 물론 그녀가 모아 온 재산으로.
난 할 말을 잃었다. 결혼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저 사기 결혼 당한 거 같아요.”
그녀가 우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이렇게 푸념하듯 말하는 걸 보니, 이 결혼을 유지하고 사고뭉치 남편을 감당하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인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말한다고 결정한 일을 번복할 그녀도 아니거니와,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과히 참견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뭐라고 말을 보태야 할지 모르겠더라.
물론 똑순이 그녀는 그냥 돈을 내어주지 않았다. 남편에게 확실하게 못을 박아두었던 것이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그녀에게 숨기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라고.
“네 남편한테 돈 맡기면 절대 안 되겠다.”
“당연하죠, 언니. 제가 다 갖고 있어요. 결혼 전부터 합의된 사항이에요.”
남편은 알겠다고, 고맙다고 말했단다. 결과적으로 빚은 갚았고, 직장에는 복직했으며, 둘의 사이는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상심은 아직 달래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동안은 자다가도 ‘내 연봉!’ 하며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
마음 쓰림은 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것이 소소하게 시작하여 창대하게 끝난 부부싸움의 발단이었다. 결국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그녀는 가출했다.
‘그런 큰 일을 벌여놓고 내가 다 수습하게 했으면 적어도 두어 달은 내 눈치를 봐야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어떻게 벌써 이래!’ 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옳으신 말씀. 두어 달이 무어냐, 평생 고개 숙이고 다녀야지.
다행히도 가출의 끝은 화해와 용서였다. 남편이 크게 반성하며 그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양이 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가한 그녀와 마주친 덕분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났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여우짓은 가끔 실패하는 듯하고 그때마다 부부는 싸움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들의 결혼식은 시의적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무슨 일을 벌일지 도통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전히 부부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끈이 두 사람을 여전히 묶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그들의 사랑과 행복을 응원하며, 아주 먼 훗날 그녀가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남편의 놀림 버튼으로 두고두고 사용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