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년! 미친년아!”
율주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썩을! 이 썩어빠진 게……웅얼웅얼…….”
“푸핫!”
율주 옆에 있던 남자애가 낄낄 웃었다. 율주가 쳐다보자 제혁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야, 저 미친년 또 저런다.“
율주의 집 근처 빌라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한 명 살았다. 그녀는 매일 2층 방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볼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허공에 대고 욕을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욕을 했다. 지금 율주와 제혁에게 하는 것처럼.
”뭘봐! 저런 빌어먹을…….“
”야, 닥쳐!”
제혁은 큰소리로 외치더니 율주에게도 욕을 시켰다. 율주는 고개를 저었다.
“왜? 안 재밌냐?”
율주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난 좀 무서워, 오빠…….”
“무섭기는! 맨날 저기서 나오지도 못하는데.”
제혁은 시시하다는 듯 율주를 쳐다보더니 작별인사를 하고 제 집으로 뛰어가버렸다. 율주의 집은 바로 앞 빌라였다. 그 빌라의 앞마당에서 현관까지 가는 동안 뒤에서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율주는 등에 무언가가 떨어져 툭툭 부딪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네 아줌마들의 사랑방은 율주네 빌라 앞마당의 평상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나는 대로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대다가 각자 할 일 하러 가는 곳이었다.
율주는 오며 가며 동네 아줌마들의 면면을 다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할 일 없는 할머니들도 종종 끼어있었다. 아줌마들은 할머니들이 없을 때는 노인정이나 갈 것이지 여기로 온다며 투덜대다가도 막상 그녀들이 있으면 말도 잘 섞고 먹을 것도 나누어 먹었다.
오늘도 율주는 학교가 끝나 집에 가던 중에 앞집 아줌마가 주신 찐 고구마를 받아 들었다. 아까 저 앞 수호빌라 할머니한테도 줬는데 맛있다고 했노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다. 그러나 율주는 아줌마가 이해되지 않아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간식은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생의 배는 언제나 고팠다.
그러나 앞 빌라 2층 할머니가 등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상은 썰렁해졌다. 하나둘 밥 하러 간다며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율주가 억지로 숙제를 간신히 다 하고 놀려고 집밖으로 뛰쳐나왔더니 평상에는 2층 할머니와 한 아줌마만 앉아계셨다. 지나가며 들리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억셌다. 아줌마는 건성이었다.
한참 놀고 저녁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평상이 다시 만원이었다. 아줌마들이 죄다 2층 할머니 흉을 보고 있었다.
”자기 딸을 그렇게도 오래 가둬 가지고는.“
”그럼 원래는 멀쩡했단 말예요?“
”그렇다니까.“
”왜 가뒀대요?”
온갖 말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대던 아줌마들도 그때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린애인 율주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항상 별의별소리를 다 떠들어대더니, 이럴 때는 꼭 지나갈 때까지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율주는 아무것도 못 알아들은 척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율주네 집은 1층이다. 중간방에 들어가서 소리 없이 베란다 중문을 살짝 열려했으나 미닫이 문이 조금 덜컹거렸다. 율주는 베란다 중문 문틀에 선 채로 귀를 기울였다. 베란다 창문 밖은 평상 바로 앞이었다. 그러나 소곤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머, 어쩜.“
“집안 평판 깎아먹는다고 딸을 어찌나 잡던지.”
“잡을 일이긴 했지.”
“암만그래도 그렇게 오래 가둬놔?”
아까보다 작아진 목소리들이었다. 혀를 끌끌 차는 소리도 들렸다.
“저 딸만 안 됐지.”
한숨 소리와 함께 잠시의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 무겁지 않은 시간 뒤에 휴, 한숨이 한번 더 들려오더니 곧 남편 잔소리 하는듯한 말투가 들려왔다.
”그렇게 평판 신경 쓰는 양반이 그래 돈 자랑을 해?“
“그렇게 돈 자랑을 하는 양반이 뭐 하나 사서 주는 법이 없어요.”
”그래야 돈 모으는 거야~.“
”깔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