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즐거워졌다, 자전거 덕분에
판교에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업무가 아니라 지옥 같은 출퇴근이었다.
사무실이 판교 외곽에 있어,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야 했는데 늘 사람이 빽빽했다. 버스는 매달려야 겨우 탈 수 있을 정도였다.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까지 고작 2km 남짓한 거리지만, 팀원들은 “콩나물 버스에서 30분이나 걸렸다”며 하소연을 자주했다.
회사는 혼잡을 완화하려고 자율 출퇴근제를 운영했다. 나는 ‘아침 8시 출근, 저녁 5시 퇴근’을 선택했지만, 집에서 판교까지 40분, 판교역에서 사무실까지 도보 20분. 결국 왕복 2시간 넘게 이어지는 출퇴근길은 늘 긴 싸움 같았다.
한 달쯤 영혼까지 털리며 다니다가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면 어떨까?”
자전거는 사실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스무 살 무렵, 친구들과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 후로 자전거는 내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다 마흔 중반,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했고 무릎에 부담이 덜한 운동이 자전거라는 말을 듣고 다시 도전했다.
처음엔 바구니 자전거로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조금 익숙해지자 MTB로 갈아탔는데, 첫날은 안장에 앉는 연습만 두 시간이나 걸렸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다시 배우다 보니, 탄천을 달릴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붙었다.
그 순간,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출퇴근길’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집에서 회사까지 편도 17.5km, 왕복 35km. 내 실력으로는 왕복 3시간 정도가 예상되었다.
“과연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가다가 지쳐 쓰러지면 어떡하지?
업무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과 염려가 앞섰지만, ‘일단 해보고 판단하자’ 마음먹고 시험 삼아 달려 보았다.
결론은?
“이거 도전해볼 만하다. 해보자!”
다음 날 아침 6시, 평소보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헬멧, 장갑, 라이트, 간식… 가방은 온통 자전거 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이니까 천천히 가자. 힘들면 쉬고, 안 되면 끌고 가면 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페달을 밟았다.
아파트 앞 사거리를 지나 다섯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자, 드디어 탄천에 닿았다.
잘 정비된 자전거길.
나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고, 힘차게 페달을 돌렸다.
부드럽게 미끄러져 가는 자전거 위로 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지나갔다.
“아, 이 맛이구나.”
심장은 두근거리고 숨은 차올랐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사무실까지 1시간 20분이 걸린 출근길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퇴근길, 푸르른 탄천 위로 석양이 물들었다.
이런 자연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행복했다.
나는 어느새, 일하기 위해 출근하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기 위해 출퇴근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지 석 달쯤 되었을 때였다.
수석님이 다가와 물었다.
“책임님, 자전거로 출퇴근하시죠? 저 앞에 세워둔 거 봤어요. 저도 한번 구경해도 될까요?”
그날 우리는 자전거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며칠 뒤, 수석님은 당근에서 자전거를 장만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팀원도 합류했고, 그렇게 우리만의 ‘자전거 크루’가 생겼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점심시간에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공원으로 향했다.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다시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초록빛 길을 달렸다.
“와, 한바탕 달리고 오니 스트레스가 싹 풀리네요.”
“내일은 운중동 자전거도로 가봐요.”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괜히 뿌듯했다.
특히 숨쉬기 운동만 하던 팀원이 페달을 함께 밟을 때는 더없이 기뻤다.
퇴근길 탄천 위에서 나는 매일 한 쌍의 부부를 마주쳤다.
커플 라이딩복을 입고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처음엔 젊은 부부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헬멧을 벗는 순간, 하얀 머리칼이 반짝였다.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 나도 나이 들어 저렇게 살고 싶다.”
자전거 출퇴근을 하며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내 삶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자전거는 내게 아침을 일찍 열어주는 새로운 루틴이었고,
허벅지의 힘을 느끼게 하는 몸의 회복 시간이었으며,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의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전거는 내게
속도를 늦추는 법과 다시 힘차게 달려나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아주 간단하지만 가장 현명한 법도 가르쳐주었다.
자전거를 배우듯 삶도 배운다.
멈칫거려도 다시 페달을 밟는다.
삶은 멈추지 않는다. 페달처럼, 계속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