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필살기, 나의 무기는 웃음

썰렁개그 한 줄이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다

by 봉순이

사회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스펙? 성과? 인맥?


내 친구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의외의 필살기가 있었다. 바로 소맥 제조 스킬이다.

회식 자리에서 소맥을 타는 솜씨가 워낙 좋아서 줄까지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와, 멋지다. 나도 사회생활 필살기가 하나쯤 있으면 좋을 텐데…”



썰렁개그, 나의 무기


나 역시 내향적이라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건 영 서툴렀다.

회식 자리에서도 옆사람과 소곤대는 게 전부였고, 숟가락을 괜히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며 존재감을 찾곤 했다.


‘나도 사회생활 필살기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외로 답은 가까이 있었다.

바로 썰렁개그였다.


작은 농담 하나가 분위기를 녹이고, 지친 하루를 버티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Story 1. 연봉은 사랑입니다


어느 날, 선임님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책임님, 저 어떻하죠? 내일 대표님이랑 연봉 협상 면담이 있는데 너무 떨려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작은 종이에 한문장을 적어주었다.


“연봉은 사랑입니다.”


“대표님 뵐 때, 웃으면서 한번 꺼내보세요.”


다음 날, 선임은 실제로 그 종이를 꺼냈다고 한다.

분위기는 한순간에 부드러워졌고, 협상도 의외로 잘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회식 자리에서 대표님이 나를 보며 웃었다.


“황책임님, 제 책상 위에 아직도 그게 있어요. 연봉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우리 팀은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Story 2.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는 PM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다시 만난 수석님은 개발자에서 PM(Project Manager)으로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보고서와 PPT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낯설고 고단해 보였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짧은 글과 그림을 선물했다.



옆에서 PM 하시는 수석님은 진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려요.
도형만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시는데, 묘하게 멋있어요.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그분께 한 수 배워야겠어요.



수석님은 배꼽 빠지게 웃으셨고, 팀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짧은 유머 하나가 긴장된 현장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Story 3. 배포는 전쟁, 엔딩은 담배와 함께


IT 업계에서 배포 날은 늘 전쟁 같다.

나는 배포 장면을 스케치해 인스타툰에 올렸다. 내용은 이랬다.



PM님이 장수처럼 외쳤다.

“테스트 서버에 배포하겠습니다! 전군, 진격 앞으로!”


모두가 집중 모드로 전환했다.
마치 전투복을 입은 듯, 클릭 한 번에도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에러 메시지가 떴다.


“데이터 타입 문제 같습니다. 변환 후 다시 커밋했습니다.”

잠시 후 PM님이 선언했다.


“수정 확인 완료! 절차대로 대열 정비! 전군, 전진 앞으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전쟁이 따로 없네. 모두가 한몸이 되어 진격을 외치고 있구나.’


그리고 정말 한몸이 되어,
그들은 우르르 옥상으로 담배를 피우러 올라갔다.


이 글을 인스타에 올리자 팀원들이 폭소를 터뜨렸고, 공감과 좋아요로 화답해 주었다.



웃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중년


웃음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때로는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나의 웃음 철학은 사실 병원에서 시작됐다.

6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고 가슴 복원 수술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이 나와 상담 후 심각한 표정으로 차트에 무언가 적었다.

나는 불안감에 몸이 떨렸다.

'저렇게 심각한 것을 보니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나는 덜덜 떨면서 의사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조심스럽게 차트를 몰래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뱃살충분


순간 웃음이 터졌다. 가슴복원을 위한 수술 재료가 넉넉하다는 뜻이었다.

“아, 내 뱃살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긴장보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날 이후, 지독한 통증 속에서도 ‘뱃살충분’을 떠올리면 웃을 수 있었다.


인생이 버거울 때 꼭 진지한 말만 필요한 건 아니다.

가벼운 웃음 한 방이 무거운 어깨를 내려놓게 하고,
때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게도 한다.


“웃으며 보낸 시간은 신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다.” 라는 말이 있다.


오늘도 나는 작은 농담 하나로,

다시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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