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가 별이 되기까지

함께 웃게 만든 우리의 작은 재능들

by 봉순이


빡빡한 일터.
늘 긴장감 도는 배포 일정, 주기적인 장애 대응,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긴급 수정 요청들.
IT라는 업종의 숙명 같은 일들을 감당하다 보면 지치고, 마음이 딱딱해질 때가 많다.


특히 IT는 집중이 필요한 고독한 노동이 많다.
각자의 영역에 파묻혀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다 보면,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IT만큼 협업이 필수적인 분야도 없다.

개발, 디자인, 기획, 운영이 맞물리지 않으면 그 어떤 성과도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바쁜 일터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딱딱한 마음을 풀어내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작은 재능기부였다.
우리는 그것을 시도했고,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낚시하는 남자, 낚시하는 마음


팀원 중 낚시를 사랑하는 김책임님이 있었다.
주말이면 먼 바다로 나가 팔뚝만 한 우럭과 광어, 갑오징어를 잡아와 사진을 공유했다.
직접 잡은 생선을 손질해 회를 뜨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제 소원은요… 여자친구랑 낚시 가는 거예요.”


우리는 웃었지만, 어쩐지 가슴이 짠했다.

소박하지만 쉽지 않은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김책임님이 제안했다.

“바다에서 잡아온 우럭을 손질해 올 테니, 점심에 회덮밥을 만들어 먹을까요?”


우리는 환호했고, 그의 정성에 보답하듯 점심 회덮밥 대잔치를 준비했다.
책임님의 큰 가방 안에는 일정한 두께와 크기로 곱게 손질된 우럭회가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그가 주말에 잡아 이틀간 숙성시킨 우럭은 살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올라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 한 그릇의 회덮밥에 팀원들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빛났다.


“낚시는 고기를 낚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낚는 일이다.”
그 말처럼 김책임님은 우리의 마음을 단번에 낚아버렸다.


그날 오후, 내 마음도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녹아내리는 우럭회 속에서 ‘나누면 즐겁다’는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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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 따라 피어난 팀워크


이사님은 한 번 꽂히면 깊이 파고드는 ‘덕후 중의 덕후’였다.
사진, 음향, 키보드, PPT는 물론 바리스타에까지 손을 뻗는, 맥가이버 같은 분이었다.


“바리스타에 관심 있으신 분 계신가요? 커피 원두 고르는 법부터 핸드드립까지 알려드릴게요.”


그 한마디로 시작된 ‘바리스타 프로젝트’.
나를 포함한 세 명은 한 달 동안, 아침 7시 텅 빈 사무실에 모여 핸드드립을 연습했다.


처음엔 낯설던 약배전·중배전 같은 용어들이 익숙해졌고, 한 달쯤 지나자 우리도 어느새 ‘아마추어 바리스타’가 되어 있었다.


커피는 참 오묘했다. 원두를 알고 마시니 풍미가 배가 되었고, 물줄기, 추출 시간, 물의 양과 비율, 분쇄도에 따라 맛이 180도 달라졌다.


“아침의 커피는 하루를 여는 열쇠다.” 라는 명언처럼

우리는 연습이 끝난 아침마다 먼저 출근한 동료들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했다.


카페인 수혈에 행복해하는 팀원들.
눈빛이 반짝이고, 자판 두드리는 속도마저 달라지는 듯했다.
사무실은 묵직한 강배전에서 상큼한 약배전으로 넘어간 듯, 훨씬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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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이어준 마음


나는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취미가 있다.
‘똥손탈출’ 소모임에서 연습하다가, 문득 팀원들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졌다.


서툴지만 정성껏 그린 그림을 건넸을 때, 동료들은 놀라울 만큼 즐거워했다.


특히 탁구에 진심인 수석님의 모습을 그려주었는데,

그는 그 그림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놓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 프로필을 본 예전 지인이 “아직도 탁구에 빠져 있냐?”며 연락을 해왔다.


끊겼던 인연도 이어주는 힘, 누군가의 하루를 환하게 밝히는 힘.

작은 그림 한 장이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그 순간, 서툰 손길도 누군가에겐 충분히 빛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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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그리고 재능기부


돌아보면, 이 작은 재능들이 없었다면

그 바쁜 프로젝트를 웃으며 버티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각자 맡은 일에 몰두하다 보면 동료가 아니라 ‘역할’로만 서로를 대하기 쉽다.
그러나 재능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된다.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가 아니라
낚시꾼, 바리스타, 그림 그리는 친구가 되어
서로의 고독을 조금씩 덜어내고, 함께 웃을 수 있게 된다.


재능은 혼자 하면 취미이지만,
나누면 선물이 된다.


재능은 혼자 간직하면 그저 빛나는 돌멩이지만,
나누면 비로소 별이 된다.


그 별빛은 서로를 비추며,

우리를 더 가깝게,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더 많이 얻는 이들이 아니라, 더 많이 주는 이들이다.”


우리는 그 말처럼,

참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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