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물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나의 삶
매주 월요일은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이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숙제를 내주신다.
이번 주는 마침 연휴 덕분에 시간이 많아 숙제를 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한 부분에 너무 몰입해 전체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비례가 어긋나고, 색의 무게중심이 틀어지고, 시선의 흐름이 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한 발 물러나 사물을 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멀리서 바라보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적정선의 거리감. ‘자기 객관화.’
‘나를 줌 아웃(zoom out)’ 하는 것이 핵심인데, 알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일상에서도 자기 객관화는 필요하다. 멀리서 사건을 바라 보는것은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을 때 해결책을 찾아내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줌 아웃시킬 수 있을까?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는 나만의 두 가지 방법을 찾았다.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 방법은 ‘왜’가 아니라 ‘무엇’을 묻는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실패의 아이콘이었다. 사업을 하다 망해 폐업을 한 적도 있고, 몸이 아파 투병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한동안은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왜 그랬을까”를 되뇌였다. 그 상황에 대한 반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키워내다가 늘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럼 그렇지. 뭘 하겠다고... 그때 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왜 나는 하는일이 맨날 그 모양일까..."
이렇게 스스로를 비난하다가, 결국 자기 연민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고 한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보다는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를 고민해 보는것이다.
어떤 상황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 무엇이 내 감정을 자극했는지, 그때의 나는 어떤 상태였는지, 왜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타인의 시선으로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려 한다. 판단이나 욕망없이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감정에 몰입되어 괴로워 하다가도 "아 내가 그때 한 생각에만 몰입되어서 다른것들을 보지 못했구나" 하고 정신이 조금 차려진다.
두번째 방법은 줌 아웃한 아픈부분을 드러내 보는것이다.
이것은 병을 고치는 과정과 닮았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무엇이 나를 병나게 만들었는지' 병의 원인을 찾는것이 먼저이다. 원인을 알게되면 그에 맞는 치료가 시작된다.
치료의 첫걸음은 드러냄이다. 아픈 부위를 드러내 놓지 않으면 수술도, 약물치료도 시작할 수 없다.
아픈 부위를 드러내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나는 읽고 쓰기 그리고 그리기를 통해 그 과정을 시작했다.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은밀하고 까탈스러운 이야기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들, 나와 너무도 비슷한 감성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나의 아픈 부위를 글로 풀어내며 또 다른 치유의 과정을 느끼고 있다.
‘실패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는 나의 모습에도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오늘도 나는 다시 글을 써본다. 때로는 줌인으로, 때로는 줌아웃으로.
그렇게 쓰고 그리고 바라보는 일은, 아마 오래도록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기 객관화의 힘. 치유의 힘.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