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World! 그리고 협업

마흔여섯, 판교에서 다시 시작한 나

by 봉순이


판교에서 일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고, 들리는 말은 모두 외계어 같았다.


“핫픽스로 프로덕션 서버에 긴급 패치했어요.”
“도커 컨테이너 재기동 후에도 이슈 지속되면 쿠버네티스 로그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마이그레이션 파일 충돌 나서 롤백하고 다시 적용 중입니다.”


메신저에 이런 말들이 쏟아질 때마다 나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받아 적었다. 그러나 속은 막막했다.
‘핫픽스? 도커? 마이그레이션?’
이 사람들은 어느 별에서 온 걸까. 나만 홀로 엉뚱한 행성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나자 그 외계어들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도 모르게 그 행성의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데브에 올려놨는데 깃 충돌 나서 리베이스하고 다시 커밋 푸시했어요.”
“로컬에서 브랜치 따서 작업한 뒤 PR 올려주세요. 리뷰 끝나면 머지할게요.”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웠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화면에 처음 찍혔던 그 짧은 문장.

"Hello, World!"


당시엔 단지 문자열 하나였지만, 낯선 세계에서 말문을 트는 신호였다.
이제는 이곳에서도 언어의 장벽이 사라지며, 대화의 맥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로소 ‘협업’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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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면 빠르고, 함께 하면 멀리 간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일해왔다.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며 기획, 디자인, 퍼블리싱, 고객 응대까지 도맡았다. 속도는 빨랐고, 일도 단순했다. 그게 내 능력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안다. 혼자는 빠를지 몰라도, 멀리 가기는 어렵다는 걸.


협업의 세계는 느렸다. 문서를 작성하고, 회의를 하고, 테스트를 반복하고, 리뷰를 기다리는 과정은 때로 답답했다. 한 사람이라도 늦으면 전체 일정이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 느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혼자서는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함께 찾아내고, 작은 실수가 큰 사고가 되기 전에 막아내며, 한 사람의 역량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품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절한 속도로 손발을 맞추고, 두세 단계 앞을 내다보는 신속한 대응력을 키우는 것. 그것이 협업의 핵심이었다.


로그인 버튼이 사라졌다


그날도 그랬다. 로그인 화면 수정 작업을 마치고 스테이징 서버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실제 서비스에 배포될 예정이었다. 배포 이후엔 수많은 사용자가 접속하게 되기 때문에, 작은 오류도 치명적일 수 있다.

나는 PC와 모바일을 오가며 꼼꼼히 확인했다. 로그인 화면이라 유독 긴장감이 컸다.
다행히 내가 확인한 기기에서는 오류 없이 잘 작동했다.
“휴, 이 정도면 됐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옆자리에서 동료가 다급하게 말했다.


“책임님, 아이폰에서는 버튼이 안 보이는데요?”

“네? 설마요? 저도 확인했는데…”


다른 팀원들도 재빨리 다양한 기기에서 테스트를 시작했다.

“아이폰 SE에서도 안 보여요!”


문제는 iOS였다. iOS에서는 종종 CSS·레이아웃 오류가 발생한다. 보통보다 몇 배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인데, 나는 그걸 놓치고 말았다. 급히 아이폰 SE로 확인해 보니, 정말 버튼이 아래로 밀려 있었다.


“CSS에서 미디어쿼리 설정 다시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폰을 담당하던 김책임님이 조심스레 조언을 건넸다.
바로 코드를 열어 미디어쿼리 설정을 확인했다. 역시, 뷰포트 계산에서 오류가 있었다.
신속하게 수정하고 다시 테스트한 결과, 어그러졌던 레이아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쫄깃했던 심장이 다시 펴지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팀원들의 매서운 눈은 이런 순간에 빛을 발한다.

혼자였다면 이 단순한 실수를 놓치고 그대로 배포했을지도 모른다.
자칫 큰 사고로 번졌을 일을, 협업의 힘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각자의 자리, 각자의 전문성


협업의 세계는 각기 다른 분야의 언어와 리듬이 섞여 있다.

프런트엔드는 사용자가 보는 모든 화면을 담당했고, 백엔드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관리하며 시스템의 심장을 움직였다. 보안팀은 철저히 우리의 코드를 검토하는 방패였고, 프로젝트 관리자는 이 모든 과정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각기 다른 박자였지만, 결국 우리는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나아가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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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대신 전우애를 배우다


예전에는 혼자 일하는 자유가 좋았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게 편했다.
하지만 그 자유 뒤에는 늘 외로움과 고단함이 따라왔다.

밤새 작업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문제가 생기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이상하다. 갑자기 왜 안 되지?”

혼잣말을 하면, 어느새 동료가 다가와 말한다.

“혹시 포트 충돌 아닐까요? 제가 한 번 볼게요.”

작은 실수에도 함께 웃어주는 동료들이 있다.
속도는 줄었지만, 그만큼 함께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마흔여섯, 협업이 나를 바꿨다


마흔여섯에 처음 들어간 판교의 SM팀.
이십, 삼십 대 팀원들 사이에서 ‘내가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움츠러들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 그들과 보폭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협업은 단순히 일을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속도에 맞추고, 실수를 함께 기다려주는 태도였다.

무엇보다 협업은 내 급한 성격을 바꿔놓았다.

예전의 나는 서두르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했지만,
이젠 동료들과 함께 두세 번씩 확인하며 신중하게 일하는 습관이 생겼다.


“책임님, 천천히 하셔도 돼요. 이 작업만 끝나면 저희가 크로스체크할게요.”


옆에서 조용히 지원해 주는 팀원이 있었다.
천천히, 함께 가는 법.

그걸 배운 건 마흔여섯, 판교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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