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중년 프리랜서,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
"책임님, 다시 만나서 일하니 정말 좋아요. 압구정 때보다 이번이 훨씬 좋았죠?"
"우리 언제 또 만나요? 아~ 다음 프로젝트에 바로 오시면 되겠네요!"
올해 6월 말, 뚝섬에서 함께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불과 몇 달이었지만 모두가 제 몫을 다해준 덕분에 단단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마지막 날, 팀원들과 한 사람씩 악수를 나눴다. 그 손을 잡을 때마다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모바일 디바이스 이슈로 무너진 PC 레이아웃을 복구했던 밤, 5월 연휴를 얻기 위해 괴력처럼 일하던 날, 점심마다 서울숲을 돌며 산책하던 기억까지.
짧지만 치열하고, 고맙고, 따뜻한 날들이었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단순한 동료애가 아니었다. 전우애였다.
내 나이 마흔아홉.
중년의 나이에 현장 실무자로서 직접 필드를 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능한 건,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인연은 벌써 3년째 이어지고 있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서로를 찾고, 회식도 하고, 새로운 일정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을 주고받는다.
전쟁터에서 함께 살아 돌아온 전우처럼, 나이 들어 느끼는 팀워크는 이렇게나 애틋하고 벅차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느끼기까지, 나는 꽤 먼 길을 돌아왔다.
이야기를 온전히 전하려면, 잠시 나의 지난 시간을 들려드려야 한다.
나는 서른여덟에 결혼했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조급해졌고, 마흔이 되자마자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세 번, 네 번… 3년을 반복했지만, 기다리던 아이는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찾아온 건 뜻밖의 손님, 유방암이었다.
43살, 아이 대신 암을 안고 수술대에 올랐다.
몸이 무너지자 일도 놓아야 했다.
어렵게 세운 IT 여성기업의 대표 자리에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고, '엄마', '대표',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평범한 꿈들은 손에 닿기도 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남은 건 체념뿐이었다.
"이젠 내 인생에 아이도, 커리어도 없겠구나."
유방암 치료로 망가진 몸, 떠나간 동료들, 폐업의 상처, 그리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 자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난임 시술’, ‘암 환자’, ‘폐업자’라는 단어로 채워진 나날들.
그건 더 이상 ‘경력 단절’이라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름도, 역할도 없는 마흔여섯.
나는 그렇게 무너진 현실 앞에 조용히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마음속 어딘가에서 미약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어. 폐물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야. 다시 한번 찾아보자."
그렇게 다시 이력서를 하나씩 써 내려갔고, 단기라도 일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 지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판교에 임시 자리가 있는데, 6개월 정도 가능하실까요?"
그 전화가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곧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쩌지? 나이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 혼자 밥 먹게 되면 어쩌지?’
수많은 걱정이 쏟아졌지만, "단 6개월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판교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6개월은 1년이 되었고, 그렇게 2년만에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끝인 줄 알았던 그 인연은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새 프로젝트가 생기면 나를 다시 불러주는 사람들.
함께 회식을 하고, 힘든 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동료들.
눈치 보고, 실수에 움츠리던 날들을 지나
나는 조금씩 ‘살아 있는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들과 함께했던 판교에서의 첫 현장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이 글은 단순한 프로젝트 후기가 아니다.
중년 여성으로서 다시 사회로 걸어 나오기까지, 협업 속에서 싹튼 전우애와 MG세대 친구들과의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 무너졌던 자존감을 되찾아간 시간.
그 모든 걸 담은 나의 진짜 이야기다.
혹시 지금, "나도 다시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 앞에 서 있는 당신이 있다면, 이 글이 그 물음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다정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짜 경단녀, 어떤 통계에도 담기지 않는 삶의 사각지대에서 다시 걸어 나오려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