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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제 Dec 19. 2020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서평

자살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문학으로 들여다보기 



책의 제목과 관련한 이해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라는 제목은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들을 관찰하는 데에 있어 어줍잖은 아는 척 보다 모름의 태도로 다가가려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담은 제목이다. 아직 죽지않은 우리가 타인의 자살을 대할 때, 알길없는 그들의 심리를 추측하거나 심지어 재단해버리기 까지 하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 마음을 돕기위해 기꺼이 해부해야하는 입장을 가진 임상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남의 자살이 가쉽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알아서, 그럴수록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한 사람인 것 같다.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이 당신이 아닌 '우리' 를 자처한 제목에는 이러한 존중을 담아 지은 제목이 아닐까 한다. 타인의 슬픔과 병증을 객관적인 사실로 정리하고 이해해보되, 그 사실들이 환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안다고 까지는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추천 대상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주변에 자살시도 혹은 자해 등을 하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두고있는 사람, 혹은 이미 자살로 떠난 사람에 대해 극심한 죄책감을 안고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당사자는 아니지만, 당사자도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정신질환의 파도를 조금이나마 함께 견디고 싶은 사람들은 저자와 같은 시선으로 책을 읽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합리화 기제가 아닌 조심스러운 손내밀기의 방식으로 말이다. 애초에, 후천적으로 정신질환을 안 가지리란 법도 없고. 






책의 특징 



심리학과 문학은 서로 다른 방법을 취해왔을 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고자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해왔다는 것을요. (20 페이지)  

이 책의 특징은 유명한 문학 속 자살한 인물 (혹은 작가) 들의 마음과 병증을 분석하면서 어떤 치료가 가능할지 암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환자의 사례를 다루는 사생활 침해 우려도 피하고, 너무 일반화된 케이스여서 이입하기 힘든 우려도 피한 현명한 경우라 생각한다. 재미도 있고! 


'자살 각본' 이라고도 불린다는 자살 사고의 흐름을 일반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에 이어 전문가로서 얘기하는 치료방법과 회복가능성의 암시도 굉장히 힘이 있다고 느꼈다. 적을 알면 두렵지 않다는 말은 적이 처들어와서 깨부수면 두려워질지도 모르는.. 허세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정신질환 측면에서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 실체를 다루다보면 언제 되돌아올지 모르는 무한한 저주 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재밌던 부분 



1 <인간실격> 의 요조에 대한 분석 


한 케이스 한 케이스 나름의 밀도를 갖고 대하다 보니 실제로 다루는 문학작품이 6개 정도로 많지 않은데, 그 중 <인간 실격> 을 다루는 부분이 재밌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르면 사춘기, 늦으면 성인 초기에 겪고 넘어가는 우울의 성장통 (...) 같은 작가라고 생각해서 솔직히 그 작품들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실 막상 읽을 때는 한번에 후루룩 읽었다. (지금 다시 읽으라면 어쩔 수 없이 비위가 상하겠죠...) 그렇지만 어느 통증이 다 그렇듯, 모두가 그것을 뛰어넘어 졸업하리란 법은 없고, 자기혐오가 짙게 깔린 데에서 오는 우울과 정신질환은 그렇게 낫는 일이 아니란 것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많이 투영된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 의 행동을 임상심리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글이 그 어떤 <인간실격> 리뷰보다 본질적으로 다가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인간실격>의  첫 문장이자 문단,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을 이렇게 분석한다.


 첫 문장이 단독으로 한 문단을 이루고 있으며 다음 문장은 문단을 나누어 시작되기 때문에 두 문장이 별개인 것처럼 보이고, 내용상으로도 직저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요조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버리고 마는, 자의식 높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두 문장이 사실은 의미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심리학자들은 자의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과 관련된 '공적 자의식'과 자신의 내적경험을 성찰하고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자 하는 '사적 자의식' 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조는 두 가지 자의식이 모두 다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누구고 무엇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자 하는 것은 대체로 건강할 시도일 가능성이 큽니다만, 불행히도 다양한 부정정서와 연관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신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는 수치심, 죄책감, 수줍음 등의 자의식적 부정정서들이 있습니다.) 
  (...) 자기 초점적 주의가 두드러지는 사람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상황에서도 상호작용 그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 쓰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불안을 경험할 수 밖에 없지요. (...) 그러니 요조의 높은 자의식과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특성은 어찌보면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겠으며,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아온 것과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역시 깊은 관련이 있다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54-56페이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반복해서 느낄 정도로 자의식이 높고, 그러다보니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긍긍하며 자기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니 타인(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한 줄로 정리되긴 하는데 이 책의 문체와 흐름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문단을 아예 가져왔다. 이렇게 임상심리학 용어들에 대한 간단한 풀이와 적용을 통해 개인사 였던 문제가 보편경험, 보편적 병증으로 치환되며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분석하는 개인사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문학이란 점은 정말이지 개인의 일을 이입하고 체험해서 마침내 공감하게 하는 문학의 기능을 너무 성실하게 이용하는 게 아닌가... . 그래서 어렵지 않게 교양서적처럼 읽을 수 있는 이 책이 자기만의 강점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2 실비아 플래스와 <벨 자>에 대한 분석


이 부분이 재밌던 이유는 도시에 살아가려는 사회초년생 여성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비아 플래스가 누구냐면...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그 작가다. 나도 솔직히 이걸 듣고 아! 하고 누군지 알았는데, 저자도 그녀의 삶의 이력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인 죽음을 두고 회자하는 것은 미안한 일, 이라며 서두를 떼기도 했다. 어차피 책은 그녀를 자살까지 몰고 간 삶을 조명하지만..) 





공부나 문학 말고도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의 조건은 너무나 많고, 이것을 허겁지겁 쫓아가며 어느 '수준' 을 갖춰놓으려다 보면 다들 인스타를 즐기는 것 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자기만의 우울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비단 나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너무나 안다. 이걸 알고싶어서 20대 초반에 계속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어온 거기도 하니까. 이 초라해지는 기분을 너무 잘 안다.   




그런 데에서부터 실비아 플래스를 갉아먹었을 우울은 여러 악연이 겹쳐 결국 먼 훗날 자살을 하게끔 하지만, 그럼에도 첫 번째 자살시도와 두 번째 자살시도 사이의 간격에 집중하자는 이 이야기가 좋았다. 그 시간 동안 분명히 의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어차피 죽음을 알고 살아가는 지금도 난 이 말로 내 끝이 아닌 지금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서 모든 종교를 사후세계에 공감하지 못하되 종교의 심리적 효과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전 천주교 냉담 이력 13년차인 유물론자 인 거겠죠..) 




3 인지행동치료의 효과 - 미드나잇 가스펠 마지막화의 메세지와 공통되는 이야기


인지행동치료는 행동치료의 한 종류로서, '우리의 반응은 어떤 외적인 사건 자체보다는 우리가 사건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는 가정하에서 출발한 치료다. 이때 반복적인 사건에서 일관적인 반응을 습득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패턴, 즉 '자동적 사고' 가 부정적인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다른 대안적인 생각으로 바꾸어가면서 기분과 행동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이 치료의 목적이자 방법인데, 이 지점이... 며칠 전 본 <미드나잇 가스펠> 의 인터뷰이인 어머니의 말과 똑같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인지행동치료법을 공부하셨었군요..! 싶어서 인상깊었다. 깊게 공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무기력에 잠겨있을 때, 가장 먼저 현재를 느끼고 그 현재에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관찰한 뒤, 인지하고 그 메커니즘을 끊으려하는 것. 실제로 집에서 내가 짜증을 제일 심각할 정도로 많이 내는 사람이었는데, 이걸 많이 고쳐가고 스스로 인지를 해가고 있다. 나의 경우 짜증을 받아주던 동생의 궐기로 객관화가 되었던 거기도 하지만, 정신질환 뿐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맺음 이라든지 하여튼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습관과 트라우마 전반에 있어 의미있는 치료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아쉬웠던 점


섬세하게 쓰인 책이면서도 깊이가 얕은듯 깊은듯 적당하다.  (지식의 깊이가 깊다기 보다는 자살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임상심리사가 일반인들에게 조금 더 지침을 알려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충실하다는 의미임) 또 분량도 짧아 가볍게 읽기도 좋다. 다만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목차별 챕터가 1장.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들 , 2장. 자살에 이르게 하는 마음의 질병들로 정리되어있고 실제로 후반에는 조현병, 양극성 장애, 우울증, 자해와 자살시도의 구분, 중독 등까지 다루고 있지만 …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 힘이 빠진다고 느꼈다. 특히 중독과 자살의 복잡한 관계는 앞선 1장처럼 명쾌하게 분석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중독과 우울과 자살은 관련이 있죠...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느낌으로만 읽혀서 아쉬웠다. 아마 의학계 내에서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영향도 있겠지만... . 







 책에서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마음에는 '무망감(희망이 없다는 절망감)', '심리통', '패배감' , '굴욕감' , '짐이 되는 느낌' 등이 있다고 한다. 이것들은 경쟁-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두 낯설지 않다. 이러한 마음의 항목을 알고, 자신의 추상적인 기분에 이름을 붙여 객관화하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절대적인 요소 중에 환경의 작용이 있단 걸 알아서 여전히 무력감이 들기도 하지만, 힘든 기분이 '지금' 에 있다면 그래도 이 책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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