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ierson Feb 09. 2023

우리가 한달살기를 해야 하는 이유 8

강릉에서 여덟 번째 날


아이처럼



해안 도로를 달리며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과 시원한 바닷바람, 갈매기 우는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삼척으로 향한다. 딸아이를 위해 삼척에 위치한 쏠비치 워터파크를 향해 가는 길, 고속도로를 통하면 금방 갈 수도 있지만 조금만 수고해 '헌화로'를 통하면 해안가 바로 옆을 따라 나있는 해안 도로를 운전할 수 있다. 급할 것이 없으니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이 아닌 한달살기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놀이 가기 전에 배를 든든히 하기 위해 들린 삼척해변에서 생선구이로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삼척해변에 잠시 나가 본다.

같은 동해라곤 하지만 각각의 해변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모습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파도가 암초에 부딪혀 멋지게 부서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경포 해변, 조용한 아침에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먼바다를 바라보며 사색하기 좋은 강문해변, 그리고 여기 삼척해변은 유달리 모래가 하얗고 고와서 가만히 서있으면 발이 부드럽게 빠지는 느낌이다. 나는 그래도 늘 강릉집 가까이서 언제든 원할 때 볼 수 있는 강문해변이 가장 좋다.



워터파크에 도착했다.

딸아이는 처음 와본 워터파크에 신이 나면서도 긴장한 표정이다. 함께 물에 들어가자 나를 꽉 끌어안는 딸아이의 조그마한 팔다리에서 딸아이의 두려움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이랑 친해지고, 자신감이 생겨 물속에서 제법 발길질도 하는 모습에 뿌듯하다. 이제 딸아이 얼굴은 아까의 두려움은 씻기고, 오로지 물놀이의 즐거움에 푹 빠진 듯 환하게 빛이 난다.

이렇게 또 딸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즐겁게 산다.

지금도 매트리스 위 생수병 4병을 늘어놓고 그 위를 걷다가 손뼉을 치며 웃는 내 딸아이에게 하루하루는 즐거움의 연속이다.


가만 보면 아이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은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는 일에 충실하기에 하루 중 그토록 많은 시간을 즐겁게 웃으며 보낸다.



나는 종종 재미없게 산다.

재테크, 가계부, 직장일, 연중행사 등 수많은 생각을 하며 하루 종일 복잡하게 보내다 보면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다.

물론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하루 종일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하루 중 몇 시간이라도 어른의 시간과 분리하여 아이처럼 사는 시간을 가질 수는 없을까.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에 집중하고 누리면서 재미있게 사는 것이 어떨까.




강릉집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위해 집 앞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는다.


가게 이름부터 재미있는 '거래처'라는 식당은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가게로 솥뚜껑 삼겹살을 메인으로 하고 있다.

이젠 제법 이 동네가 익숙해져서 스스로를 관광객들과는 구분하려 하는 나에게, 이곳에서 45년 평생을 살았다는 사장님이 말했다.


"강릉에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 없죠?"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그래,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는 게 중요한 거지.

아이처럼.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한달살기를 해야 하는 이유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