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재료, 다른 맛 — 각색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풍미
요즘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영상화하는 경우가 참 많다. 원작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스토리에 대한 흥행을 보장한다는 의미도 있기에, 항상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드라마의 원작이 있다고 하면 나는 먼저 그 작품을 읽는다.
웹소설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를 기반으로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만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작은 며칠 밤을 새우며 읽을 정도로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보게 된 '폭군의 셰프'는 원작을 망친 드라마와 영화들로 시청자를 실망시키는 경우가 많은 요즘, 오랜만에 보게 된 나쁘지 않은 리메이크 작이었다.
전체적으로 해당 작품은 원작에서 아쉬웠던 점을 잘 극복한 드라마였다. 원작은 너무 요리 대결만 계속되어 약간 루즈한 감이 있었다. 아무리 연산군이 미식가라고 하지만 모든 국사를 요리 대결을 통해 해결하는 부분은 약간 억지에 가까웠고 주인공은 끊임없이 목숨을 걸고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중간중간 코믹적인 요소로 분위기를 환기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를 끌고 나가며, 수많은 음식이 나오는 원작에서 인상적인 음식들만 뽑아서 보여주었다. 더불어 원작은 음식을 주제로 한 소설인데도 맛 표현이 부족해 독자에게 해당 음식을 효과적으로 어필하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를 영상화하니 CG가 조금 웃기긴 했지만 콘텐츠의 특성을 살려 잘 보완했다고 느꼈다.
이러한 장점에 비해 단점도 명확했는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연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시대에 너무 맞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것을 받아들이는데 2화가 넘게 걸린 것도 당황스러웠는데, 이를 받아들인 후에도 현대적인 모습을 버리지 않아 혼자 붕 뜨는 느낌이었다.
음식 이름은 그렇다 쳐도 레츠고, 서포트, 썸 타다, 플랜비와 같이 충분히 한글로 쓸 수 있는 말도 계속해서 영어로 하며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니 해당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2025년인 현재에도 갑자기 '제가 사실 미래에서 왔는데요'라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텐데 자꾸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다니며 강조하니 시청자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왕에게 너무 막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를 같이 보던 동생의 말마따나 이름만 '전하'인 친구 같아, 연지영이 연희군에게 대하는 것이 아닌 소녀시대 윤아가 수영에게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캐릭터 외에 전개에 대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감정선에 대한 비약이 심하다고 느껴졌다. 앞에 서로 감정이 쌓이는 서사가 없이 뜬금없는 입맞춤으로 급발진하니 연지영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당황스러웠다. 적어도 연산군이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등은 설명되어야 했는데 전후 설명 없이 입맞춤부터 하니 연지영의 반감은 당연하게 느껴지고 시청자들은 물음표를 띄우게 된다.
원작의 경우, 지영과 연산군의 감정 서사는 전혀 연애의 감정 없이 서로를 신경 쓰는 형태로만 나타나다가 마지막에 폭발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연산군의 행태를 알면서도 그 감정에 몰입하게 되고 결말 즈음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의 파도가 크게 몰려온다.
입맞춤뿐만이 아니다. 연희군은 이후 밥을 굶는데 왜 굶고 있는지, 그 후에 왜 갑자기 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조선시대에 왕이 밥을 굶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일일진대, 수라간을 비롯한 궁중 사람들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왠지 16부작을 12부작으로 줄이느라 감정 서사 부분이 축약된 것은 아닐까 의심된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원작에서 연지영은 망운록 때문에 고조리서와 해당 시대의 역사를 공부해, 타임슬립 후 잘 적응하고 그 지식을 이용해 주변에서 인정받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드라마 속 연지영은 그냥 아버지가 부탁해 가져온 고서일 뿐이라 이 책이 사실 연지영이 해 준 요리에 대해 연희군이 쓴 것이라는 반전에 대한 감동이 덜했다. 또한 지영의 요리를 통해 연산군이 감화되어 폭군의 길을 걷지 않게 되고, 이후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원작의 스토리가 좋았는데 그 부분이 생략된 것도 아쉬웠다.
이렇게 장점도, 단점도 명확했던 드라마지만 오랜만에 원작의 인기에만 기대지 않은 영상화 작품을 보게 된 것이 반갑다. 충분한 고민 끝에,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려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고 그랬기에 드라마의 흥행도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재혼황후, 나 혼자만 레벨업 등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 원작을 읽은 독자로서 많이 기대하고 있다.
원작의 팬들은, 영상화 작품에 웹소설을 그대로 반영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의 상상이 현실이 될 수는 없듯, 소설을 영상화하면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법이다. 팬들이 기대하는 것은 제작자가 해당 작품이 왜 인기가 있었는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그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해치지 않으면서 각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좋은 각색이란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새로운 언어로 숨 쉬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