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준비, 얼마나 되어 있나요?

사랑의 시작과 끝은 계획되지 않는다_ From Scratch

by Hannah Chang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내게 넷플릭스는 종종 유사한 장르의 작품을 추천해준다.


최근에 본 시리즈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는 아주 늦은 밤 마치 사랑이 불쑥하고 마음을 차지해버리듯 만난 작품이다. 남,녀 주인공 모두 빅샷은 아니었지만, 스토리의 시작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로스쿨 재학 중에 꿈을 이루려 이탈리아 아트스쿨로 그림공부를 하러 떠난 에이미(조 샐다냐 분)가 피렌체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시칠리아 출신의 셰프 리노(에우제니오 마스트란드레아 분)를 만난다. 두 사람 사이에 강렬한 화학적 반응은 일어나고.


이탈리아 남자답게(?) 리노의 구애는 적극적이다. 에이미는 먼저 마음이 이끌렸던 번드르한 이탈리아인 남친과 리노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계산기 두들기는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에이미가 피렌체에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기 직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사랑하는 여자 에이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리노는 과감하게 피렌체를 버리고 LA로 향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이야기 전개를 갑자기 벼랑으로 떨어뜨리자면, 에이미의 꿈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었던 리노는 결혼 후 암이란 적을 만나게 되고, 결국 에이미와 어린 딸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 로코팬이 로코보다 더 한 편 한 편 ‘아껴가며’(실제로 그랬다. 마음이 너무 촉촉해져서 한번에 정주행하기 싫었다) 음미하며 본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은 조 샐디나의 쩌는 연기력이다. 여리여리 발레리나 같은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단단함. 저것이 대사일까, 진심일까 헷갈리게 만드는 연기력에 반해버렸다. 그녀는 너무나 러블리한 미소와 그간 전작들에서 보여준 지구를 삼켜버릴 것 같은 폭발력을 동시에 장착한 팔색조같다.


두 번째는 제목이 함축하고 있듯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기치 않은 일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고찰이다.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한 번의 만남으로 사랑이 시작됐고, 살의 터전을 옮기고 가족을 이루고…느닷없이 죽음이란 불청객이 찾아오는 예사롭지 않은 듯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삶의 이야기. 반대와 반대를 거듭해 결국은 진짜 ‘가족’이 되고야 마는 두 주인공의 가족들도 지지고 뽂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고, 순간순간 벌어지는 갈등과 양보, 포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 번째는 작가가 에피소드 구석구석에 심어놓은 ‘포용’에 대한 질문이다. 미국인 며느리는 안 된다는 리노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변호사 지망생이 아트는 웬말이며, 셰프 사위는 말도 안 된다고 반대하는, 그 역시 변호사로 자수성가한 에이미의 흑인 아버지. 백인인 리노의 아내는 당연히 백인일 거라 생각하는 병원 의료진들. 작가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선입견을 꼬집으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한 인간을 그 자체로 포용하고 있는지 조용히 묻고 있다.


네 번째는 리노의 죽음을 대하는 가족들의 배려와 자세다. 한창 때인 건강한 남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느닷없는 죽음은 그 자체로도 가족을 붕괴시킬 수 있는 이슈지만, 가족들은 그가 떠나기 직전까지 행복한 웃음을 보여준다. 결국 상처와 아픔은 남은 자들의 몫이니까. 사랑 그 이상의 성숙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었다.


피렌체는 물론이거니와 리노의 고향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즐거움 또한 솔찮다. 예술에 가까운 이탈리아 퀴진과 에이미의 다채로운 헤어와 패션을 보는 재미도 플러스. J이면서도 무계획적인 우연성을 즐기는 내게, 우연히 찾아온 따뜻한 스토리다. 나의 '리노'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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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Netf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