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뿐이었음에도 앨마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 『모든 것의 이름으로 1』 278쪽, 엘리자베스 길버트
수개월의 항해 끝에 낯선 땅에 도착한 앨마는 어디로 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침부터 취한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햇빛은 뜨거웠죠.
그 때 잘생긴 검정 수탉 한 마리가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앨마에게 다가갑니다. 금방이라도 서류를 내놓으라고 할 것처럼요. 어쩔 줄 몰라하던 앨마가 수탉을 쓰다듬습니다. 수탉은 가만히 있었고 앨마는 몇 번 더 쓰다듬습니다. 그러자 수탉은 앨마의 발 옆에 우아한 자세로 날개를 펼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수탉 덕에 앨마는 불안함을 조금 덜어냅니다. 앨마의 도착이 덩달아 불안했던 제 마음도 이야기를 읽으며 휴, 편해졌습니다. 수탉에게 고맙기까지 했다니까요.
다이소에서 2천원을 주고 하얀 토끼 인형을 샀습니다.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회사에 조금 더 다닐 수 있는 굳센 마음이 필요했습니다.
나이 마흔하나.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회사에 인형을 들고 다니는 게 조금 이상해 보일 것 같았지만 아침부터 취한 사람처럼 걸음을 걸었고, 머릿속 피는 햇빛만큼 뜨거웠으니까요.
두 팔 사이에 토끼를 두고 기획서를 썼습니다. 토끼의 작은 손을 잡고 다 쓴 기획서를 읽어보았습니다. 오케이. 울지 않고 해냈어.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무얼 해야 하는 건지 도통 알지 못할 때, 이제 그만 멈추고만 싶을 때 검은 수탉 한 마리가 가슴 열고 절도 있게 걸어와 눈 맞춰주면 좋겠습니다. 안심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것의 이름으로』 모처럼 홈빡 빠져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