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주 Sep 11. 2024

아이고, 잘한다!



오늘 버린 물건 : 홀로 남은 풀 뚜껑


초등학생인 끼별곰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가 마술 보여줄게!" 하며 딱풀 뚜껑을 내밀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보던 나는 부모된 의무로 다소 심드렁하게 책을 접고 앉았다.


"자, 여기 풀 뚜껑이 있지? 분명히 있지? 내가 이걸 없애볼게. 하나, 둘, 셋! 어? 잠깐만... 이게 아닌데. 다시, 하나, 둘, 셋! 짠! 어디로 갔을까요?"  


풀 뚜껑을 온전히 숨기기에는 아직 작은 손. 통통한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노란 뚜껑을 못 본척 하며 "엥? 어디갔지? 뭐야! 너 뭐 한 거야?" 동그랗게 눈을 뜨고 대꾸하니 짜식, 씩 웃는다. "안 알려주지!" 의기양양 방문을 닫고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에 예전 끼별곰의 꼬꼬마 시절이 겹쳐졌다.


끼별곰이 네다섯 살 쯤 됐을 무렵, 눈치껏 이 말 저 말을 습득하던 시절이었다. 각종 어린이 TV 프로그램에 빠져있던 녀석은 정의로운 용사가 되어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 때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짧은 팔다리를 있는 힘껏 펼쳐 엄청나게 멋진 포즈를 취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꼼짝마! 너를 순순히 체포하겠다!"


한껏 진지한 녀석 앞에서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윽... 나를 순순히 체포하다니..." 마지막(?) 대사를 장렬히 읊으며 침대에 엎어져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착하게 살아라! 하하하하!" 악당을 물리치고 보무도 당당히 뒤돌아 나가던 끼별곰.


부모든 선생이든 선배든 한 걸음 먼저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자신의 길을 열심히 걷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어야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들의 서툶을 아무렇지 않게 응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보다 빠르거나 늦더라도, 옆길로 새더라도, 뒤돌아보느라 자꾸만 멈추더라도, 쓸데없이 칠렐레팔렐레 뛰어다녀도 "아이고, 잘한다!" 박수쳐주는 것. 우리도 그 으쌰으쌰를 받으며 이만큼 왔으니 다음 주자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싶다. 귀찮아도, 마음이 바빠도, 눈에 뻔히 보여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