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엔 장에서 사온 호떡을 오봉에 받쳐와 아기 먹이듯 조그맣게 잘라 포크에 찍어주었다.
할머니한테 내 나이를 고백해야 하나 싶기도 하였는데 이상하게 입이 작게, 딱 호떡 조각만큼만 작게 벌어져 야곰야곰 할머니가 잘라준 호떡을 찍어먹은 날도 있었다.
할머니가 죽고 나는 서른이 되었다. 어른으로 살다가 어느 날 보니 슬픈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하려 힘을 들인 만큼씩 마음이 구멍나있었다. 술이 고파 아침 일찍 일어나고 사람 사이를 걷는 것이 소름끼쳐 바닥만 보며 토악질을 참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미친 사람이 되는 건 어쩐지 나를 키워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인 것 같아 미치지는 않아보려고 계절마다 길을 걸었다. 그때서야 나는 나비가 한 계절만을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내가 봄볕에 어리둥절할 때마다 머리 위에서 팔랑거렸고 가을 솔잎을 피해 걸을 때면 오른발 왼발 옆에서 나폴거렸다. 내가 미칠까봐 내가 죽을까봐 할머니는 세 계절씩 십년을 넘게 살아 나를 찾아온다.
아버지 머리를 깎아주던 날은 다시 서른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날이었다. 이미 며칠 전 돌아선 것 같았는데 어쩐지 내가 키워야할 사람들에게 미안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끌어안고 있는 날이었다. 보도블럭을 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할머니가 흰나비가 하얀나비가 날아왔다. 내가 사십 살이나 되었는데도 돌봐주는게 고마워 피식울음을 터뜨리며 웃었다.
그래도 할머니. 어떤 날은 할머니가 와도 내 마음이 힘든 날이 있어. 살려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가, 심장이 그어지는 날이 있어. 할머니는 그런 것도 다 알고 있겠지. 내 똥강아지 누가 그랬느냐고 호들갑 떨진 않겠지만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 냉면사발에 설탕 잔뜩 넣고 미숫가루 타다 주겠지. 오봉에 받쳐오겠지. 그래서 할머니, 나 미치지는 말까봐. 다음 봄에도 그 다음 봄에도, 나 오십 살 먹은 봄에도 팔십 살 된 봄에도 나한테 와, 할머니. 팔랑팔랑 날아와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