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포터』, 저메이카 킨케이드
이십 대 초반, 결혼 생각은 없었지만 종종 아이에게 지어줄 이름을 고민하곤 했습니다. 일생을 동행해야 할 이름. 누군가 불러줄 때마다 그것은 주문이 되기도 하고 기도가 되기도 하며 그 사람을 만들어갑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가 마음 바른 사람, 줏대 있는 사람, 품 넉넉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인생 즐길 줄 알 만큼 여유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며 이름을 고민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됐고, 첫 아이가 생겼습니다. 진작부터 후보로 정해둔 이름 두어 개를 놓고 무엇이 나을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쓸데없는 일이었습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돌림자 없는 이름은 선택지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아이는 내 몸으로 품어 내가 낳는데 남편 쪽에서 아이 이름을 규정한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이름 석 자로 한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 중 한 자는 남편 쪽의 성이, 또 다른 한 자는 남편 쪽의 돌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했고 불공평했고 폭력적이었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 인근의 앤티가섬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본명은 일레인 포터 리처드슨입니다. 아버지의 성 포터와 어머니의 성 리처드슨이 그녀의 이름을 이룹니다. 『미스터 포터』는 그녀가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 쓴 소설입니다. 화자는 킨케이드의 본명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딸’ 일레인 신시아 포터, 주인공은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버지’ 로더릭 포터.
포터는 조상들이 살아온 땅에서 그들에게 물려받은 성姓 포터로 불리며 살아갑니다. 그의 아버지인 또 다른 포터는 여러 여자에게 여러 자녀를 두었고, 그 자녀들이 누구인지 알지 ‘않’았습니다. 포터의 존재에 관심이 없었고, 포터의 무엇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포터 또한 많은 여자들과 동침하며 많은 자녀를 두지만 그들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을 알지 ‘않’습니다.
포터의 출생증명서 부父 칸엔 아버지의 이름 없이 줄이 그어져 있고, 화자인 딸의 출생증명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합니다. 아버지의 칸에 이름은 없고 줄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는 부재하지만 줄로는 존재한다는 것이 됩니다. 딸의 인생에 없는 포터는 그림자처럼 딸의 인생 어디에나 있습니다.
딸은 이름을 바꿉니다. 포터라는 성을 가졌지만 포터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이 자란 그녀는 포터 없는 이름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령처럼 붙어 있는 포터를 끊어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비어 있는 아버지 칸, 그 빈 칸에 그어진 줄을 다음의 자신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요.
아버지와의 분리. 그녀의 결심으로 되는 일일까요.
그녀 스스로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기억엔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부모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게도 그녀에겐 포터의 것과 똑같이 생긴 코가 있습니다. 포터의 모든 아이들처럼 포터와 똑같이 생긴 코가 그녀의 얼굴 한가운데 있습니다. 그녀의 선택으로 없애지도, 바꾸어버리지도 못하는 기억과 코.
나의 아이에게 남편 쪽에서 규정한 글자들로 이름 지어주어야 하는 것에 그토록 화가 났던 건, 나의 무엇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에게서 태어나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를 보며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편협함이, 나의 매정함이, 나의 옹졸함이, 나의 비겁함이, 나의 조급함이 아이에게 스몄을 거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집니다. 물려지지 않았기를, 나와 다른 너로 살기를, 간절해집니다.
“그리고 그날, 해는 평소와 같은 자리, 하늘 높이 한가운데 떠 있었고, 평소처럼 가차 없이 환히, 그림자조차 창백해지도록, 그림자조차 쉴 곳을 찾도록 빛났다. 그날 해는 평소와 같은 자리, 하늘 높이 한가운데 떠 있었으나 포터 씨는 이에 주목하지 않았으니, 그는 해가 평소와 같은 자리, 하늘 높이 한가운데 떠 있는 데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 『미스터 포터』, 9쪽
킨케이드는 반복과 이어짐의 문체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밖에 쓰일 수 없는 이야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