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귀신을 지키는 자

『밤의 신이 내려온다』, 장자샹

by 이우주

대만 작가 천쓰홍의 『귀신들의 땅』을 읽으며 느꼈던 묘한 감정이 아직 생생합니다. 지명과 인물들의 이름이 낯설었지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적 상황과 인물들의 근간을 붙잡고 있는 오랜 사상 같은 것들이 익숙했습니다. 인물들이 왜 그런 고민을 하는지, 사건들이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대만 문학의 첫 독서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문학 체험이었습니다.


뭉근하게 남아있던 그 느낌 속으로 한 번 더 들어가 보고 싶어 장자샹의 『밤의 신이 내려온다』를 읽었습니다. 장자샹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대만의 토착 신앙에 얹어 귀신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이 소설의 원제는 ‘야관순장(夜官巡場)’입니다. 밤의 신인 야관이 갈 곳 없고 아무도 대우해 주지 않는 귀신들을 데리고 행차에 나선다는 뜻입니다. 야관은 누구일까요? 야관은 왜 귀신들을 데리고 다니는 걸까요?



집집마다 온갖 귀신을 모시는 대만이지만 살아생전 보잘것없어서, 더러운 냄새가 나서, 병에 걸려서, 남들 가진 것을 갖지 못해서 소외당했던 이들이 죽어 된 야신(野神)과 음신(陰神)에게는 냉랭합니다. 그 죽은 존재들은 산 자들에게 대접받지 못하고 가장 구석의 외지고 습한 곳에 슬픈 얼굴로 웅크려 있습니다. 버림받은 채 죽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버림받습니다.


야관(夜官)이들을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밤이 오면 외로워하는 그들을 데리고 다리를 건너 친척들을 만나게 해줍니다. 그들이 두려움에 떨면 손을 뻗어 그들의 귀를 막아 무서운 말을 듣지 못하게 해줍니다.


화자인 어린 ‘나’와 친구인 저우메이후이에게는 야관이 지켜주는 귀신들이 보입니다. 어둑한 음지에서, 한밤중의 들판에서, 서글픈 얼굴로 떠도는 귀신들을 봅니다. ‘나’는 그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어떤 부분이 아직 세상에 살아 남아있다 믿으며 그 존재들을 ‘기지’라 부르고 싶다 말합니다. 기억을 지키고 유지한다는 뜻으로요.


40년 가까이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박래군 선생은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6·10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같은 이야기들, 나라가 국민에게 가한 고문기술과 국가폭력 같은 것들, 몸에 장애가 있거나 저임금 노동을 하거나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는 사람들을 쓰고 있습니다. 분명 중요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십 년 지난 일,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계속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쓴 칼럼과 또 그 비슷한 글들을 한 편씩 읽을 때마다 그것은 누군가는 써야만 하는 글이고 우리에겐 그 글들을 찾아 읽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에 은폐되었던 사건들, 언론이 숨기고 왜곡했던 사건들에 희생된 이들 덕에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고,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자샹은 저우메이후이에게 한 귀신을 보냅니다. 중국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쳐들어온 장제스 세력이 수천 명의 원주민을 학살한 1947년의 2·28 사건으로 총살된 남자입니다. 죽기 직전 아내에게 쓴 작은 편지를 셔츠 앞주머니에 꽂은 채 가슴에 총을 맞고 죽은 남자는 저우메이후이에게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 청합니다.


인디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이기도 한 장자샹은 같은 제목―야관순장―의 앨범을 먼저 발표해 대만 최고의 음악상인 금곡장 최우수 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1년 후 이 소설을 써 역시 대만 최고라는 금전상을 수상했습니다. 1993년생 장자샹은 장제스 시절부터 금지되어 지금의 대만인들에겐 잊힌 타이완어를 익혀 노래를 만들고 소설을 썼습니다. 버림받은 채 죽은 사람들, 죽어서도 버림받은 존재들을 음악과 문학으로 기억하려 애쓴 그가 어쩌면 야관이 아닐는지.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 그것으로 야관이 되어 슬픈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작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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